부모 능력과 아이의 미래는 과연 정비례할까?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부모 능력과 아이의 미래는 과연 정비례할까?

글 : 박재원 / 행복한 공부연구소 소장 2020-10-27

사회 양극화가 심해지고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부모의 경제력과 정보력이 대물림되는 사회라고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부모의 능력이 오히려 아이를 위축시켜 집안이 엉망이 된 경우를 드물지 않게 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고학력 중산층 부모들은 자녀의 학업능력이 부모의 노력 여하에 따라 만들어지며, 투자하고 주입하는 정도에 좌우된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왜 잘 사는 집 아이들이 공부를 더 잘 하나? 한울출판사) 그리고 그러한 경향을 뒷받침하는 근거도 충분하다.


부모의 교육 수준이 상승할수록 자녀가 주요 대학에 입학할 확률이 올라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입시전형별로는 논술-수능-내신 순으로 부모의 교육·소득 수준이 미치는 영향이 컸다. 하지만 입시전형을 어떻게 조정하더라도 모든 경우에서 상위계층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분석 결과 부모의 교육 수준을 10분위로 나눴을 때, 수준이 1분위씩 상승할수록 자녀의 엘리트 대학 진학률은 1.5%포인트씩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즉 상위 2분위의 진학률이 하위 2분위보다 9%포인트 높다는 뜻이다.(경향신문 2020.9.24) 부모의 소득 수준과 자녀의 진학률도 전형별로 다소 차이를 보이기는 하지만 일관되게 상위계층이 유리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부모 찬스'에 동반되는 부작용이다. 부모의 능력이 아이의 자발성과 만나 상승작용을 일으킨 경우와는 달리 부모가 제공한 기회에 편승하여 오히려 손쉽게 입시에 성공한 경우는 분명히 구분된다.


서울공대 교수가 최근 5년간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느낀 바를 솔직하게 고백했다.


특목고와 일반고의 모든 학생들에게 나타나는 성향으로 '실패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이다. 본인이 성장과정에서 단 한 번의 실패도, 단 한 번의 어려움도 겪어 보지 못했다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으며, 그 실패나 어려움에 대해서 과도한 두려움을 갖고 있어 기성세대들이 쉽사리 이해하지 못하는 행동을 많이 한다. 예를 들면, 수업에서 B학점을 처음 받은 후부터 1년간 방에서 한 번도 나오지 않은 학생이라던가, 여자 친구가 집안에 어려운 일이 생겨서 힘들어하게 되니, "나는 어려운 일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해서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도 힘들어"라고 결별을 선언하는 학생, '열심히'해야 하는 일은 실패할 수도 있다는 뜻이니 그런 일을 잘 피해서 해야 한다고 인생철학을 당당히 이야기하는 학생 등이다. 


이러한 성향은 아직 모르는 일들, 또는 본인은 해보고 싶지만 주변에서 불안한 의견을 내는 일들에 대해 도전하지 않게 하고, 더 나아가 '노답'인 문제에 도전하는 것 자체가 멍청하다는 인식, '하면 된다'는 기성세대가 열정페이를 하도록 '노오력'을 강요하기 위해 만든 말이라는 인식을 또래 학생들과 함께 다양한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공유한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이러한 경향은 아이러니하게도 성적이 우수할수록 더 두드러진다.(2015 개정 교육과정과 연계한 입학전형 발전 방안 연구. 서울대학교 입학본부. 2018.2)


공부만 하면 되는 학생 신분과는 달리 사회에 나와 고생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을 언제까지 회피할 수 있단 말인가? 돈 있고 정보력으로 무장한 부모의 요구, 그러니까 나머지는 부모가 알아서 할 테니 공부만 열심히 하라는 요구에 성실하게 응한 결과 공부 말고는 해본 일이 없는 기형적인 엘리트들이 늘고 있다. 입시에는 성공했지만 인생에는 실패하기 십상인 존재들을 볼 때마다, 그 부모까지 생각하면 정말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더 이상 공부만 가지고는 버티기 어려운 상황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살펴보자. 한 '공시족'이 말한다.


"사실 부모님 생각하면 제가 뭐라도 해서 돈을 벌어야지 계속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 거 잘 알아요. 편의점 알바를 해봤는데 도망가고 싶은 마음뿐이었어요. 그냥 카운터에 앉아 있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짐도 나르고 청소도 해야 하는데 정말 하기 싫더라고요. 몇 번 떨어져 자신은 없지만 공무원 시험 준비를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을 거 같아요."


"대학병원 수간호사입니다. 신규 간호사가 오면 적응할 수 있도록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힘들다고 따라오지 못하는 신규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결국 3개월 뒤에 독립하여 환자를 볼 때가 되면 적성에 안 맞는다고 퇴사하는 게 다반사입니다. 특히 나이트 근무 힘들어서 그만두는 경우도 많습니다."


일본에서 크게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성인' 히키코모리는 이제 남의 얘기가 아니다.




명문사립대인 H대 공대를 졸업한 김 모씨(32)는 벌써 2년째 방 안에 틀어박혀서 바깥으로 나오지 않고 있다. 나름 열심히 취업 준비를 했지만 서른 번이 넘도록 서류, 면접에서 떨어지고 간신히 지방의 한 중소기업에 취직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두 달도 못 돼 퇴사했다. 그리고 문을 걸어 잠그고 친구들과도 부모와도 대화를 단절한 채 오로지 게임에만 몰두했다. 결국 그는 1년 전쯤 정신과 의사로부터 '은둔형 외톨이'라는 진단을 받았다.(매일경제. 2009. 3. 10)


오로지 공부에만 매달리는 대치동의 숨은 이야기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오랜 기간 대학 하나만을 목표로 전력 질주해온 아이들은 실패를 받아들이기 힘들어 한다. 대치동의 고1 학부모 정유진(49 가명)씨는 "대치동에서는 3수까지 했는데도 안 돼서 아무것도 안 하는 애들, 혼자 나와서 사는 애들이 주변에 많다"라고 말했다.(한국일보 2020. 1. 3)

1명의 성공사례가 나오면 금방 10명, 100명처럼 보이고 100명이 실패해도 모두 숨어버려 보이지 않기에 유지되는 대치동 신화는 언제까지 학부모들을 혼란에 빠뜨릴까? 과연 능력 있는 부모, 부유한 가정환경은 과연 아이들에게 약일까, 독일까? 먹고 살기 바빠 아이 교육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저소득층 부모들에 비해 부자 부모들이 정말 부모역할을 잘 하고 있을까?

오랫동안 특권층 아이들은 넉넉한 자원과 기회를 누리며 가족의 보호를 받는다고 여겨져 왔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아이들이 우울증, 불안 장애, 심신증, 약물 남용으로 고생할 가능성은 사회경제적으로 궁핍한 가정의 아이들보다 훨씬 크다. 정부에서 진행한 주요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미국 아동과 10대 청소년 다섯 명 중 한 명은 정신장애 증상을 보이며, 열 명 중 한 명은 심각한 기능 손상으로 고생한다. 이 수치는 앞으로 10년 안에 50퍼센트 정도 증가할 것이다.(내 아이를 위한 심리코칭. 문학동네)

부잣집 아이들이 오히려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에서도 입증되었다.

서울에서 제일 잘산다는 강남구 초·중·고 학생들이 전구의 또래들 가운데 정신질환을 겪는 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강남구 학생 비율이 100명당 3.85명으로 전국에 가장 높았다. 다음은 성남 분당구(3.74명), 수원 영통구(3.31명), 서울 서초구(3.24명), 서울 송파구(3.15명), 서울 노원구(3.04명), 고양 일산구(2.9명), 서울 강동구(2.81명), 경기 과천시(2.76명) 순이었다. 수도권의 부유층 밀집 지역으로 타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교육열이 높은 곳이 `톱10`을 차지한 셈.(메트로 뉴스 2008. 10. 16)

모두 내가 사교육 일선에 있을 때 학원설명회를 하기 위해 다녔던 곳이다. 아이가 공부를 못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성공과 실패, 편안함과 고생스러움, 행복과 불행 등이 조화와 균형을 이룰 때 사람은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부모의 능력이 아이의 경험을 왜곡하여 한 쪽으로 치우치면 사회에 나가 적응할 수 있는 힘을 기르지 못한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부자는 삼대(三代)를 넘지 못 한다는 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부모들끼리 벌이는 입시 대리전쟁의 와중에 자생력을 잃은 아이들은 과연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까?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자립심을 기르지 못한 아이들을 평생 먹여 살려야 하는 부모들의 삶은 또 어떻게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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