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우 대한치매학회 이사장 "당신의 뇌를 쓸모 있게 해라"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박건우 대한치매학회 이사장 "당신의 뇌를 쓸모 있게 해라"

글 : 이필재 / 인물 스토리텔러 2020-07-29

"치매는 병(명)이 아니라 일종의 증상입니다. 인간답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지 기능이, 나이가 들면서 망가져 일상생활을 제대로 못 하게 되는 상태를 말하죠."


치매 권위자인 박건우 대한치매학회 이사장(고려대안암병원 신경과 교수)은 "어르신이 '바보'가 되는 치매의 원인 질병은 70여 개에 달하며 이 중 치료가 가장 안 되는 병이 알츠하이머이다 보니 치매를 알츠하이머라고들 한다"고 말했다.




"치매 증상으로 더 이상 과거의 그 똑똑했던 어른은 아닌 거죠. 치매를 치료하려면 원인 질병을 알아야 하고, 그래서 해당 병원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노인이 치매 증상을 보이면 요양원부터 떠올립니다. 치료가 되는 치매 원인 질병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 돼요. 이렇게 해서 치료가 되면 더 이상 그 병이 치매의 원인이 아니죠."


-우리나라가 정책적으로 치매라는 사회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고 있나요?


"우리나라는 전국 256개 시군구에 치매안심센터라는 치매 환자를 위한 국가 인프라를 까는 데 성공한 나라입니다. 말하자면 전국적으로 도로망은 갖춰진 셈이죠. 인력을 양성하지는 못해 전문성이 떨어지는 한계는 있습니다. 관 주도로는 한국이 가장 잘하는 나라라고 할 수 있어요. 점수를 준다면 100점 만점에 90점은 되죠. 치매 국가책임제를 넘어 가족과 이웃이, 국민 전체가 치매를 책임지는 국민책임제를 실현해야 합니다."


-90점이면, 구체적으로 어디서 10점이 깎였나요?


"다양성이 부족합니다. 우리나라는 전직 대통령도 치매에 걸릴 경우 마지막 터미널은 같아요. 다른 치매 환자와 똑같이 요양원에서 같은 밥을 먹고 여러 사람과 한 방에서 지내다 때 되면 떠나는 거죠. 전국적으로 전 요양원이 장기요양보험이라는 단일한 보험 체계에 묶여 있기 때문이에요. 이런 일률적인 시스템에서 벗어나 민간의 다양성이 발휘될 수 있어야 합니다. 치매 환자 입장에서 선택지가 많아져야 한다는 거죠. 민관 협력 시스템이죠. 치매라는 우울한 상황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더라도 다양한 서비스를 받게 할 수는 있어요. 가령 문화예술 서비스를 제공하는 보험이 나올 수도 있죠. 이렇게 다양한 보험이 만들어져야 마지막 터미널이 달라집니다. 장기요양보험의 기본 서비스를 유지하는 한편 본인이 더 내면 더 다양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죠."

치매 환자도 선택지가 많아야

그는 자본주의라는 생태계에서 다양한 서비스가 제공돼야 노인 요양이 산업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요양원 서비스가 다양해져야 사람들이 지갑을 열고 그래야 돈이 돌아요. 세금을 투입하자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있는 돈을 노년에 정당하게 쓸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겁니다. '치매에 걸리면 저 요양원에 가고 싶어' 할 만한 요양원이 있으면 적금을 붓는다든가 치매 보험에 드는 등 은퇴 설계도 좀 달라질지 모르죠. 마지막 가는 모습도 더 다양해져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2026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초고령사회란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사회다. 노인이 늘수록 치매 환자도 늘어난다. 현재 65세 이상 인구의 9%가량이 치매 환자다. 70대는 10명 중 한 명, 80대는 네 명 중 한 명꼴이다. 그러나 100세를 넘긴 고령자는 70대처럼 10명 중 한 명꼴이라고 한다. 뇌 질환으로 떠날 사람은 떠나고 건강한 노인만 남기 때문이다. 연령대별 치매 환자 비율은 90대초가 정점이다. 박 이사장은 "건강한 노령 생활을 지속하면 치매에 걸리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치매는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 생활습관병에서 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단적으로 비만 관리만 잘해도 치매를 줄일 수 있어요. 결국 혈관이 씩씩해져야 돼요. 피의 20%가 뇌와 연결된 혈관을 통해 뇌로 갑니다."


그는 뇌를 상하지 않게 하고 평소 뇌를 사용하는 활동으로 쓸모 있는 뇌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뇌 활동으로는 새로운 취미 생활, 새 레저 활동, 외국어 배우기, 어느 서클이든 들어가 새로운 사람들과 접촉하기 등을 권했다.
"치매 환자들이 코로나19 탓에 세상과의 접촉이 끊겨 그래서 지금 상황이 암울한 겁니다."


박 이사장은 무엇보다 치매 환자도 운동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주일에 세 번, 그때마다 30분~1시간, 약간 땀이 날 만큼 걷기를 권했다.

치매 환자도 운동해야 뇌 재생돼


"사람도 엄연한 동물입니다. 동물은 몸의 움직임을 판단하기 위해 뇌를 작동시켜요.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뇌 기능이 떨어지게 마련이죠. 성인병 등 모든 병이, 이겨내려면 운동을 해야 하지만 뇌 재생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도 꾸준히 운동을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인지 기능이 급격히 퇴화합니다."


-치매 보험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요?


"지난 2~3년 새 좋아졌습니다. 과거엔 사람을 못 알아볼 만큼 증세가 심해야 보험금을 탈 수 있었어요. 이렇다 보니 내 돈 내고 보험을 들었지만 정작 필요로 하는 혜택을 못 받았습니다. 치매는 진단받고 치료받을 때 돈이 많이 들지 정작 요양원에 들어가면 많이 안 들어요. 사람을 못 알아볼 때쯤 돈이 생기면 뭐합니까? 오죽하면 치매 환자 측에서 보험을 탈 수 있도록 점수를 나쁘게 달라고 했겠어요?"


그는 치매에 대한 가족력이 있다면 치매 보험에 가입하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치매안심센터·주간보호센터 폐쇄, 요양보호사 방문 중지 등으로 지금 치매 환자들이 이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요?


"지금처럼 인류가 바이러스 질환과 싸우는 시기엔 방역이 우선인 게 맞습니다. 치매 학회로서는 요양원 안에서나마 사람 간의 접촉이 더 다양하게 이뤄지도록 시리즈로 권고문을 내려 합니다. 일례로 언택트(비대면) 채널이지만 환자와 보호자 간의 영상 통화 같은 거죠. 또 내부에서나마 환자에게 지속적으로 운동을 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이때도 일률적인 장기요양보험 체계가 사실상 장애물로 작용합니다. 요양원 측으로선 경제적 인센티브가 없다 보니 동기가 잘 안 생기는 거죠."


박 이사장은 은퇴 후 일을 그만두더라도 사회적인 접촉을 끊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은퇴는 인생의 끝이 아닙니다. 오히려 일을 떠나 새로운 만남을 시도할 시기죠. 그래야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됩니다. 저처럼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특히 일을 그만둘 때 허탈감이 커요. 새로운 만남의 자리에서 아는 척, 잘난 척 좀 하려면 새로 공부도 하고 경험도 해야 합니다. 이런 니즈와 동기로 시작하는 나름의 활동에서 재미를 느낄 때 치매를 막을 수 있어요. 삶의 의미와 살아가는 재미가 취미든 지식 습득이든 활동을 지속하게 만들죠. 은퇴는 물론 치매도 인생의 끝이 아닙니다."


-가족 중 치매 환자가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조언을 주시겠습니까?


"막상 가족이 치매 증상을 보이면 애증이 교차하게 마련입니다. 다리를 못 쓰는 사람이 휠체어를 타는 게 자연스럽듯이 치매도 증상으로 바라봐야 돼요. 알츠하이머는 기억이 잘려나가는 병입니다. 기억이 지워졌으니 자꾸 물어보는 건 당연해요. 내가 미워서, 나를 귀찮게 하려 하는 행동이 아니라는 거죠. 나와의 관계성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니라 그 가족이 환자로서 보이는 증상이라는 겁니다. 한 마디로 치매라는 증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객관화시켜야 합니다."


-치매를 앓는 가족을 요양원으로 모실 적기는 언제인가요?


"가족으로서 사랑으로 보살피는 게 한계에 이르렀을 때, 사랑의 표현조차 제대로 전달이 안 될 때입니다. 이렇게 판단력도 없고 사람을 못 알아볼 땐 전문적으로 요양을 하는 곳에 맡겨야죠. 일례로 판단을 못 하면 아파도 움직이려 들지 않아 욕창이 생깁니다."


그는 과거 자식을 키울 때처럼 치매 환자인 배우자에게 투사하지 말 것을 권했다.


"내 문제를 해결하려 자식에게 공부하라고 푸시하던 시절처럼 배우자가 엉뚱한 실수를 한다고 미워하고, 밉다고 요양원에 보내려 들지 말라는 거예요. 요양원 행은 의사와 상의해 결정해야 합니다."


-인생 2막에 치매 예방에 좋을, 해 볼 만한 도전으로 뭘 꼽으시나요?


"버킷 리스트를 만든다면 조금 설렐 테고 실행에 옮긴다면 좋은 도전이 되겠죠."


설립된 지 18년 된 대한치매학회는 그동안 숱한 전문가를 길러냈다. 직역이 넓어져 의사, 간호사 외에 임상심리사, 기초의학자도 참여한다. 요즘은 정책 컨설팅도 한다.




"치매 학회가 치매에 대해 같이 얘기하고 필요한 정보를 얻는 장터가 됐으면 합니다. 치매도 일종의 사회적 이슈입니다. 의사와 환자 두 집단만의 노력으로는 안 풀려요. 여러 집단이 참여해야 이 문제를 제대로 풀 수 있습니다."


박 이사장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정신과와 신경과 양쪽 전문의 시험에 패스했다. 모교 교수가 된 후엔 미 국립보건원에서 기초의학을 공부했다. 의약분업으로 의사가 부족해 임상에 남았지만, 임상의학에 대응하는 기초의학 분야 사람들과도 교류한다.


-지적 호기심이 많은 편인가요?


"의학 교육, 병원 경영, 의료기기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지금은 의사가 진료로만 버는 시대가 아니에요. 병원이 의료기기로 많이 벌어들이면 환자 진료는 무료로 해 줄 수도 있어요."


그는 의료기기 개발과 관련해 기업과 산학협동을 하면서 계약서를 작성했다. 계약서에 따라 서로 역할을 분담하고 수익을 셰어했다.


"의사가 계약서를 들이미니 처음엔 의아해했지만 사실 기업은 늘 거래 당사자와 계약서를 씁니다. 병원이 그렇게 안 했을 뿐이죠. 이제 임상시험을 할 때도 계약서를 작성합니다."


그는 연명 의료 여부에 대해서는 당사자 및 보호자가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의사들에게 형사적 책임을 물으면서 결정권이 의사에게 넘어갔지만 과거로 돌아가 정상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느 틈에 우리 사회에 생겨난 장수는 재앙이라는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은 이미 75세 이상 노인이 가장 적게 사망하는 나라입니다. 인류 역사상 장수의 꿈을 온전히 이룬 유일한 나라예요. 저출산 문제는 그것대로 대처해야 하지만, 오래 사는 것 자체를 불행으로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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