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이 된 히키코모리, 일본 ‘8050 문제’에 당혹
글 : 김웅철 / 지방자치TV 대표이사, 매일경제 전 도쿄특파원 2019-07-22
‘중년 히키코모리, 61만 명. (2018년 현재)’
지난 3월 일본 정부가 발표한 조사 결과에 열도가 적잖게 당혹해 하고 있습니다. 최근 중년 히키코모리와 관련한 ‘사건’들이 잇따르고 있는 상황 속에 이번 조사를 통해 밝혀진 중년 은둔형 외톨이의 수에 일본 사회가 다시 한 번 놀라고 있습니다.
‘히키코모리’는 방에 틀어박혀 외부와의 관계를 차단한 채 지내는 은둔형 외톨이를 일컫는 일본말로, 지난 90년대 중반 이후 일본 경제가 장기 불황에 빠지면서 주로 젊은이들 사이에 나타난 사회현상을 말합니다. 그로부터 약 20년이 지난 지금, 당시의 젊은 히키코모리들은 어느덧 40, 50대의 중년(中年)이 됐습니다. 일본 내각부(우리나라 총리실에 해당)의 조사에 따르면 중년 히키코모리가 15~39세의 ‘젊은 히키코모리’(54만 명. 2015년 조사)의 수를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히키코모리의 중년화는 ‘중년 은둔형 외톨이’의 증가는 단순히 수의 문제에 머물지 않습니다. 고령화 사회의 복잡한 사회 현상과 맞물리면서 여러 가지 심각한 사회 문제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요즘 일본 매스컴에서는 ‘8050 문제’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8050 문제’란 80대의 고령 부모가 50대 은둔형 외톨이 자녀를 부양하면서 겪어야 하는 힘든 현실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중년의 은둔형 외톨이 자녀들은 경제적 자립능력이 없어 고령의 부모에게 얹혀살고 있습니다. 부모가 건강하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는 그런대로 버틸 수 있지만, 오로지 연금에만 생계를 의지하며 살아야 하는 80대 고령의 경우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부모가 사망했는데도 연금이 끊기는 것이 두려워 사체를 집안에 계속 방치하는 비참한 사건이 잇따를 정도로 이들의 사정은 절박합니다. 최근 일본 서점에는 ‘부모의 시체와 함께 사는 젊은이들’이라는 책이 나와 ‘8050 문제’의 심각성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지난 6월에는 도쿄에서 전 농림수산성 차관(76세)이 자신의 장남(44세)을 칼로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은둔형 외톨이였던 장남은 가족이나 이웃에 대해 폭력과 분노를 자주 표출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비슷한 시기 가와사키 시(市)에서는 한 중년의 남성이 스쿨버스를 기다리던 초등학생 등에게 칼을 휘둘러 2명이 사망하고 18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용의자는 평소 히키코모리 경향이 강했고, 관련해 가족들이 시 담당자에게 상담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두 건의 충격적인 사건으로 일본 사회는 ‘중년 히키코모리’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졌고 심지어 자신의 히키코모리 아들을 살해한 전 농림성 차관을 옹호하는 의견이 SNS를 달구기도 했습니다. 상황이 심상치 않자 매스컴에서는 ‘중년 은둔형 외톨이=잠재적 범죄자’라는 편파적 여론의 폭력성을 경고하고 나섰지만 중년 히키코모리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중년 히키코모리’ 현상은 고도성장기에 ‘번듯한 직장’에서 일하며 축적한 부모의 연금에 버블붕괴의 파고에 휩쓸린 ‘무직(無職) 자녀’들이 기대 살다 집안에 틀어박혀 버린 현상으로, 80년대 후반 이후 30년에 걸쳐 일본을 덮친 장기불황을 상징하는 사회문제라고 일본 전문가들은 분석합니다. 실제로 내각부의 이번 조사를 보면 이들의 장기간에 걸친 사회적 단절은 ‘일자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습니다. 실제 중년 은둔형 외톨이 가운데 취업 빙하기 세대인 40대가 가장 많았습니다. (40대 38.3%, 50대 36.2%, 60~64세 25.5%)

이에 대해 내각부는 한창 취업활동이 활발한 20대에 경기불황으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던 이른바 ‘취업 빙하기’가 젊은이들을 사회와 단절시킨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60대의 은둔형 외톨이도 정년퇴직 후 일자리와 단절되면서 집안에 틀어박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중년 은둔형 외톨이의 성별은 남성(76.6%, 여성 23.4%)이 다수였습니다. 단절 기간도 5년 이상 장기 은둔자가 절반을 넘었고, 20년 이상 ‘초장기 은둔자’도 20%에 달했습니다.

중년 히키코모리 문제는 개인적 성향과 사회적 환경이 복잡하게 얽힌 데다 장기간에 걸쳐 굳어진 사회적 현상인 만큼 해결이 간단치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 사회가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2017년에 설립된 사단법인 ‘OSD 밀찰 네트워크’는 히키코모리의 고령화 문제를 상담하는 단체입니다. ‘OSD’는 ‘오(O)야가 신(S)다라 도(D)시오’의 머리말 즉, ‘부모가 죽으면 어떡하나’는 의미로 생존이 걸린 8050 세대의 절절함이 단체이름에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지난해 2월 히키포스(HIKIPOS)라는 잡지가 창간돼 주목을 끌었습니다. “히키코모리 본인과 경험자가 필자가 되어, 경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생생한 현실을 알리고 싶다”는 것이 창간 취지입니다. 잡지에는 히키코모리의 일상을 비롯해 그들의 ‘연애’. ‘일’, ‘행복’ 등을 테마로 다양한 이야기들이 실리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히키코모리들을 밖으로 끌어내는 데 집중하지 말고, 방안에 은둔한 채로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방안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합니다. 현재 일본의 히키코모리는 100만 명이 훨씬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심각한 노동력 부족 상황에서 100만 명의 잠재노동자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까지도 고민하는 모습입니다.
김웅철 지방자치TV 대표이사, 매일경제 전 도쿄특파원
서강대 경영학과 졸업, 同대학 대학원에서 사회학 석사를 받고 상명대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게이오 대학 연구원, 매일경제신문 도쿄특파원과 국제부장, 매경비즈 대표, 매일경제TV 국장, 경제tv EBC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초고령사회, 일본에서 길을 찾다》, 《초고령사회 일본이 사는법》의 저자로, ‘노인대국 일본’을 주제로 다양한 칼럼과 책을 쓰면서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초고령사회의 모습과 해법에 대해 연구했다. 《복잡계 경제학》, 《대공황 2.0》, 《2014년 일본파산》, 《똑똑하게 화내는 기술》 《아직도 상사인줄 아는 남편, 그런 꼴 못보는 아내》등 다수의 일본 서적을 번역했고, 《연금밖에 없다던 김부장은 어떻게 노후 걱정이 없어졌을까》, 《일본어 회화 무작정 따라하기》를 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