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리스 게임] 지하 포커 세계의 여왕은 어떻게 전설이 되었나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몰리스 게임] 지하 포커 세계의 여왕은 어떻게 전설이 되었나

글 : 김봉석 / 작가 2018-09-13

지난 9월 6일 개봉한 <몰리스 게임>의 감독은 아론 소킨이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은 하겠지만 확 떠올리지 않을 수 있다. <몰리스 게임>은 첫 영화 연출작이다. 하지만 시나리오로 가면 이미 거장이다. 데이빗 핀처의 <소셜 네트워크>, 베넷 밀러의 <머니볼>, 대니 보일의 <스티브 잡스> 시나리오를 썼다. 당대 최고의 감독들과 작업한 것은 물론이고 다룬 소재가 범상치 않다. <소녈 네트워크>는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주커버그의 스토리다.


<머니볼>은 메이저리그의 약체팀이었던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를 엄청난 강팀으로 바꿔놓은 빌리 빈 단장의 이야기. <스티브 잡스>는 바로 그 애플의 스티브 잡스다. 아론 소킨은 실제 인물을 다루면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그들이 어떤 의미인지를 포착한다. 그만의 시선으로 인물의 내면을 파고들어 강렬하고 예리한 드라마를 창조해낸다.



출처: 네이버 영화 '몰리스 게임'


아론 소킨은 탁월한 영화 시나리오를 쓰다가 마침내 연출을 하게 된 인물은 아니다. <어 퓨 굿 맨> <맬리스> 등의 시나리오를 쓴 아론 소킨은 1999년 드라마 <웨스트 윙>의 크리에이터로 이름을 날린다. HBO에서 방영된 <웨스트 윙>은 민주당 출신의 조쉬 바틀렛 대통령이 임무를 수행하는 모습을 그린 드라마다. 미국의 대통령은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혼자 모든 것을 할 수 없다. 독재가 아니라면 정치는 타협이고, 협상이다.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때로는 권력을 휘두르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서로 이익을 주고받는다. 정치는 적을 죽이는 전쟁이 아니라 함께 국가를 운영하는 공적인 일이니까.


<웨스트 윙>은 정치 드라마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정치가로서,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공적인 임무를 어떻게 수행하는지 보여주면서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정치가라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전범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웨스트 윙>은 찬사를 받았고, 인기를 얻었다. 물론 현실의 대통령이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다. 음모도 있고, 사적인 비리도 있고, 그릇된 감정이나 이기적인 판단으로 사태를 악화시키기도 한다. 드라마 속의 조쉬 바틀렛도 그렇다. 아론 소킨은 조쉬를 영웅화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이면서도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이상적인 정치가로서 그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상이 없으면 현실의 전진도 없다. 현실이 더럽다고 악행을 일삼을 수는 없다. 누군가 모범과 이상을 제시하고 따라가야만 한다. 그것이 정치의, 언론의 역할이다.


아론 소킨은 2012년 드라마 <뉴스 룸>을 만들었다. 뉴스 앵커인 윌 맥어보이가 주인공이다. 이번에는 민주당이 아니라 공화당 지지자인 윌 맥어보이를 내세운 <뉴스 룸>은 언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방송사와 신문사에서 일하는 언론인들은 누구보다 먼저 정보를 얻고, 깊숙한 내막까지도 파악할 수 있다. 그것을 대중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결정하고, 뉴스와 정보의 가치를 가장 먼저 판단하여 이슈를 제기해야 한다. 하지만 요즘의 언론은 그저 클릭수를 높이고, 대중을 호도하여 열광적인 지지자를 만들어내는 것에만 열중하고 있다. 아론 소킨은 윌 맥어보이를 통해서 바람직한 언론인이란 대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보여준다.


아론 소킨은 영화에서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조명했다. 드라마에서는 가상의 인물을 내세워, 우리들이 이 시대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그려냈다. <몰리스 게임>도 실존 인물이 주인공인 영화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썼던 전작들과는 사뭇 다르다. 마크 주커버그와 스티브 잡스, 빌리 빈은 자신의 영역에서 거대한 업적인 이룬 영웅들이다. 그에 비해 <몰리스 게임>의 몰리는 도박장을 운영했던 여인이며, 법정에 서게 된 범죄자이다.



출처: 네이버 영화 '몰리스 게임'


몰리 블룸은 스키 선수였다. 하지만 2002년 미국 올림픽 스키 대표 선발전 도중 사고를 당해 더 이상 선수 활동을 할 수 없게 된다. 몰리는 로스쿨에 진학하기 위해 LA에 왔고, 클럽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부동산업자인 딘의 비서가 된다. 딘의 부업은 배우와 스포츠 선수, 기업가 등이 모이는 도박장이었다. 도박장의 노하우를 알게 된 몰리는 폭력적인 딘의 그늘에서 벗어나 직접 판을 짠다. 실제 인물인 몰리는 2014년 <몰리의 게임:할리우드 엘리트 및 월가의 억만장자들>이란 회고록을 썼다.


올림픽에 출전하려던 운동선수가 도박장의 슈퍼스타가 된다. 이런 것이 아메리칸 드림일까? 마약과 도박 등으로 이룩한 부와 명성은 화려해 보이지만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몰리는 불법 도박장을 운영한 혐의로 FBI에 긴급 체포되고, 재판에 회부된다. FBI가 원하는 것은 명단이다. 도박에 참가한 거물들의 명단. 하지만 몰리는 회고록에서도 그들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이미 다른 사람이 폭로한 이름들만 거론했다.


몰리는 어떤 인물일까. 강압적인 아버지의 품에서 벗어나 자수성가한 인물? 하지만 범죄자? 영화를 보면 그리 간단하지는 않다. 몰리는 도박장을 운영하면서 자신의 룰을 철저하게 지킨다. 도박장을 운영해도 자릿세를 받지 않으면 불법이 되지 않는다. 마약이나 매춘도 절대 개입시키지 않는다. 지나치게 돈을 많이 잃거나 공황상태에 빠지면 돌려보낸다. 자신이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철저하게 규칙을 지킨다.



출처: 네이버 영화 '몰리스 게임'


그러나 위기에 빠진다. 규칙을 무시하고, 자신의 감정이나 욕망으로 판을 뒤흔드는 사람들 때문이다. 몰리는 욕망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명단을 공개하는 것도 자신이 세운 규칙에 위배되기 때문에 하지 않는다. 그들은 몰리를 신뢰하기 때문에 도박장에 왔다. 그러니까 몰리도 지켜야만 한다. 주고받는 것. 혼자 독식하려 하면 규칙이 깨지고, 결국은 모든 것이 망가진다. 그런 점에서 몰리는 이상적인 미국인, 개인이라고 할 수 있다.


아론 소킨은 <웨스트 윙>과 <뉴스 룸>에서 이상적인 정치인과 언론인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그려냈다. 시나리오를 쓴 영화 <소셜 네트워크>, <머니 볼>, <스티브 잡스>에서는 당대의 영웅들이 우리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지 보여줬다. 그렇다면 <몰리스 게임>은 세상을 바꾸고, 거대한 역사를 만든 영웅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인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몰리는 자신이 세운 서로가 신뢰하는 세계를 만들기 위한 규칙을 지킨다. 선의의 규칙을 모두가 지키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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