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유 먹는 일본 할머니들, “부족한 영양소 보충하죠”
글 : 김웅철 / 지방자치TV 대표이사, 매일경제 전 도쿄특파원 2018-05-10
‘분유(粉乳)’하면 이내 귀여운 아기 얼굴이 떠오를지 모르겠습니만 초고령사회 일본에서는 얘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유아의 전유물일 것 같은 분유가 50대 이상 시니어, 특히 고령의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 상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겁니다. 온라인 쇼핑몰에는 물론 도쿄 도심의 일반 매장에서도 '할머니 고객'을 겨냥한 ‘어른용 분유’를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다 큰 어른 아니, 시니어들이 왜 아기들이 먹는 분유에 ‘눈독’을 들이는 걸까요?
건강 때문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분유에 함유되어 있는 다양한 영양소에 눈독을 들이는 거지요. 모유의 대체식품인 분유는 유아의 성장에 필요한 모든 영양성분이 들어 있습니다. 과거 분유로 아이를 키웠던 ‘엄마’들이 나이가 들면서 이렇게 완전한 식품이 자신의 노후 건강에도 좋은 역할을 하지 않을까 생각하기에 이른 것이죠. 그중에서도 특히 ‘한 끼 식사만으로는 충분한 영양소를 섭취하기 어렵지 않을까’ 건강 염려증이 심한 여성 고령자들이 분유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겁니다. 종합적인 영양소 섭취에 분유만큼 좋은 것이 없는데다 안전하기까지 하니 말이지요. 실제 분유 구입 고객의 80%가 여성이고, 여성 고객 10명 중 9명이 50대 이상 시니어라고 합니다. 게다가 분유는 우유를 못먹는 사람이나 싫어하는 사람도 쉽게 복용할 수 있고 유통기한이 18개월 가량으로 길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분유나 유아용식품을 제조 판매하는 유키지루시(雪印) 빈스타크는 지난해 9월 성인용 분유 신상품 ‘플래티나 밀크’를 선보였습니다. (*일반적으로 고령자를 실버라 하지만 일본에서는 고령자가 골드(금)보다 더 멋지게 빛나는 플래티넘(백금)이라는 의미에서 ‘플래티나’라는 용어를 사용하곤 합니다)
이 회사가 성인용 분유제품을 개발하게 된 배경을 들여다보면 이렇습니다(일본 매스컴 보도 종합). 근래 몇 년 전부터 고객 상담센터에 ‘분유를 어른이 먹어도 되느냐’는 문의가 끊이질 않아 그 내막을 조사해보니 분유를 건강보조제 삼아 먹고 있는 이들이 의외로 많아 놀랐다고 합니다. 특히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건강보조제를 신뢰하지 않은 고령의 여성들이 남모르게 건강보조제 대신 분유를 복용하고 있었던 겁니다.
고령자의 분유 수요가 많다는 것을 파악한 업체들은 일제히 성인용 분유 제품을 내놓았고, 초기에 통신판매나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서만 판매가 이루어지다 최근 일반 점포에서도 판매하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분유를 찾는 성인들이 늘어났고 점차 시니어의 분유 섭취가 대중화되고 있다는 이야기인 셈이죠.
업체들이 내놓고 있는 성인용 분유는 성분에서 유아용 분유와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유아에게 분유는 ‘완전식’이지만 식사를 하는 성인에게는 성분이 다를 필요가 있었던 거죠. 단백질 함유량을 더 늘리는 대신 지질(脂質·단백질, 당질과 함께 생체를 구성하는 주요 유기물질군) 함량을 억제하거나 하는 식입니다. 또 허약해진 뼈나 면역 기능의 저하가 걱정되는 고령자 고객을 위해 칼슘, 비타민, 면역강화 영양소 등이 강화된 것이 ‘어른 분유’의 특징입니다.
성인들의 분유 섭취가 대중화되자 벌써 분유 제조업체 간 경쟁에 불이 붙은 모양입니다. ‘플래티나 밀크’(한 통 2592엔)를 판매하고 있는 유키지루시 빈스타크는 3가지 유형의 제품으로 고객을 공략하고 있습니다.
기억력 등 종합적인 건강을 서포트해주는 ‘포 밸런스’(for balance. 보통의 분유 맛), 근육이나 뼈의 재생을 돕는 성분을 강화한 ‘포 파워’(for power. 녹차 맛), 콜라겐이나 세라미드 등 미용효과가 있는 ‘포 뷰티’(for beauty. 프랑스식 수프 맛)가 그것입니다. 유키지루시가 남녀 고령자(600명)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남녀 모두 ‘기억력’을 가장 중요한 건강요소로 꼽았고, 그 다음으로 남성은 ‘근력’, 여성은 ‘피부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하는 것으로 조사됐는데, 이 결과를 제품에 반영한 것입니다. 이 제품들은 판매실적이 예상을 뛰어넘어 당초 계획보다 2배 넘게 팔려나가면서 생산라인 가동시간을 늘려 대응했다고 합니다.
유키지루시에 앞서 일본의 대표적인 우유 제조업체인 ‘모리나가(森永) 유업’도 2016년 10월부터 ‘밀크 생활’(한 통 3670엔)을 통신판매용 한정으로 판매하다 지난해 4월부터 일반 매장에서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밀크 생활은 독자적인 기능성 성분 함유를 차별화 전략으로 내세웠는데, 산(酸)에 저항력이 강해 살아있는 상태로 대장에 도달하는 ‘비피더스균 BB 536’이나 초유(初乳)에 많이 포함되어 있는 감염 보호물질 ‘락토페린’(lactoferrin), 면역력을 올려주는 ‘코팅 유산균’ 등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다는 점이 그것입니다. 또 우유를 싫어하는 사람도 먹기 좋게 담백하고 은은한 단맛을 냈다고 강조합니다. 제품에 대한 반응이 좋아 지난해 11월에는 판매 초기 대비 5배가 팔려 부랴부랴 증산에 나섰다고 합니다.
심장기능 강화제 ‘구심’(救心)으로 유명한 ‘구심 제약’도 2014년 4월부터 ‘어른들의 분유’(7포 1728엔, 30포 5940엔)를 제조 판매하고 있습니다. 이 제품은 구심의 주요 고객층인 60대 이상을 대상으로 한 우유보다 먹기 쉬운 요구르트 형 제품입니다. 위의 두 회사와 달리 유아용 분유를 제조하고 있지 않아서 애초에 어른용 분유를 기초부터 연구해 도전했습니다.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건강 수명’을 늘리고자 하는 ‘젊은 고령자’들이 늘어날 것이고, 이와 관련한 새로운 비즈니스도 갈수록 많이 생길 것으로 보입니다.
김웅철 지방자치TV 대표이사, 매일경제 전 도쿄특파원
서강대 경영학과 졸업, 同대학 대학원에서 사회학 석사를 받고 상명대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게이오 대학 연구원, 매일경제신문 도쿄특파원과 국제부장, 매경비즈 대표, 매일경제TV 국장, 경제tv EBC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초고령사회, 일본에서 길을 찾다》, 《초고령사회 일본이 사는법》의 저자로, ‘노인대국 일본’을 주제로 다양한 칼럼과 책을 쓰면서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초고령사회의 모습과 해법에 대해 연구했다. 《복잡계 경제학》, 《대공황 2.0》, 《2014년 일본파산》, 《똑똑하게 화내는 기술》 《아직도 상사인줄 아는 남편, 그런 꼴 못보는 아내》등 다수의 일본 서적을 번역했고, 《연금밖에 없다던 김부장은 어떻게 노후 걱정이 없어졌을까》, 《일본어 회화 무작정 따라하기》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