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렇게 늙지 않는다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우리는 그렇게 늙지 않는다

글 : 표정훈 / 출판평론가, 칼럼니스트 2018-05-03

연장자(年長者)와 노인(老人)은 같은 말일까? 연장자는 나이가 많은 사람이다. 노인(老人)은 나이가 들어 늙은 사람이다. 예컨대 어떤 집단에서 한 사람이 30대이고 다른 사람들은 20대라면, 30대 사람이 연장자다. 그 집단에 노인은 없다. 연장자라는 말에는 나이 들어 원숙해졌다는 느낌이 약간이라도 들어 있지만, 노인이라는 말에는 그저 늙었다는 느낌만 있다. 요컨대 긍정적인 뉘앙스가 거의 없다.




미국의 심리치료사이자 교육자 마이클 거리언은 <우리는 그렇게 늙지 않는다>(윤미연 옮김, 위고)에서, 늙음을 감추고 지연해야 할 수치로 여기는 풍토, 젊음과 동안(童顔)을 최고로 치는 풍조를 비판한다. 그렇게 늙음을 부인하는 문화 속에서 연장자들은 사라지고 노인들만 남게 된다는 것. 거리언은 그런 세상을 “마른나무처럼 완전히 고갈되고 패배하고 쓸모없으며 끝장 난 늙은이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라고 반어적(反語的)으로 비판한다.


노년, 다른 종류의 새로운 호흡이 필요하다

저자 거리언은 시인 릴케의 이런 말을 인용한다. “그대의 노래가 끝나기 전에 그대의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낼 것인가? 완전한 삶은 청춘의 사랑 속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당신의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는 다른 종류의 호흡, 거대한 빈 공간 속에서의 호흡이 필요하다.” 거리언은 이를 두고 50대 이후 인생에서 새로운 호흡이 필요하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적에 대항해 검을 휘두르거나 왕자나 공주를 만나 결혼하는 것처럼 청춘의 가치를 추구하는 영웅이 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는 이미 그 시절을 지나왔다. 현재의 우리는 그만큼이나 중요한 것을 추구하고 있다.” 그 중요한 것이란 무엇인가? 뜻밖에도 그것은 ‘허물어지는 것’이다. 노화라는 거부할 수 없는 변화를 거부하지 말라는 뜻. 젊음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현재를 거부하기보다는, 현재를 자신의 몫으로 받아들여 당당하게 겪으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의 유명한 구절을 떠올려 봄직하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이 구절을 장년에서 노년으로 이행하는 시기에도 적용해볼 수 있다. 젊음이라는 알은 깨뜨리려 하지 않아도 깨뜨려진다. 그 알에 언제까지라도 머무르려는 욕망은 헛되다.


새로운 사랑의 단계, ‘친밀한 독립성’

가리언이 심리치료사로서 많은 이들을 상담한 경험에 따르면, 남녀는 연인 관계든 부부 관계든 무의식적으로 서로 경쟁한다. 상대에게서 결함을 찾으려 들기도 한다. 상대를 내 뜻에 맞게 변화시키려 애쓴다. 상대에게 나 자신의 존재감을 끊임없이 입증하려고도 애쓴다. 상대에게 나를 알아줄 것, 나에게 반응해줄 것을 요구한다. 서로에 대한 관심과 관여가 때로는 오해를 낳고 상처를 입힌다.


그렇다면 50세 이후 직면하게 되는 사랑의 새로운 현실은 무엇일까? 뜨거운 열정, 상대에 대한 깊은 관여, 자기 존재감의 입증, 이런 것들과는 거리가 멀다. 대신에 ‘관대한 유형의 사랑’으로 변화해야 한다. 저자 가리언은 이를 가리켜 ‘친밀한 독립성’(Intimate separateness)이라고 말한다. 무슨 뜻일까? ‘친밀한 독립성’은 배우자와의 유대감, 친밀함을 유지하면서도 서로 얽매이거나 휘둘리지 않는다. 서로의 개인적이고 자유로운 정체성이 각자의 궤도 안에서 발전해갈 수 있도록 한다.




다른 말로 하면 ‘따로 또 같이’나 화이부동(和而不同)이다. 상대를 나와 ‘같은(同) 사람’으로 자꾸 동일화시키려하지 않고, 상대를 나와 ‘다른(不同) 사람’으로 인정하면서 친밀하게 어울리는(和) 관계다. 서로 다른 점은 그대로 인정하고 놓아두면서 공통점을 찾고 협력하는 관계, 존이구동(存異求同)의 관계다. 이러한 다름의 인정, 차이의 인정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성숙의 징표가 된다.


50세 이후 삶의 단계, 변화·관록·완성

젊음이라는 알을 깨뜨리고 난 뒤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우리는 보통 유년기,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라는 4분법으로 인생 단계를 말한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중년 후반인 50세부터 삶이 30~40년 계속되는 데도 그 전 50년과 달리 ‘노년기’ 하나로 뭉뚱그린다. 가리언은 이 점을 지적한다. “인생 전반기는 충분한 관심을 기울여 다양하게 정의하면서 인생 후반기는 늙은 채로 그저 살아가는 시기”로 여긴다는 것.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가리언은 후반기 생을 3단계로 나눈 ‘노화 단계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40대 후반부터 약 65세까지는 ‘변화의 시기’다. 두려움, 특히 자신의 무능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시기이자, 나이 듦의 경이로움을 받아들이는 기회다. 65세부터 70대 후반까지는 ‘관록의 시기’다.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만들어냈는가’를 본격적으로 탐구하는 시기다. 이를 통해 자신만의 고유한 것을 인식하고, 더 이상 경쟁하지 않으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 시기다.


쇠퇴로 여길 것인가? 완성으로 인식할 것인가? 

70대 후반 이후 삶의 여정의 마지막 단계는 ‘완성의 시기’다. 이 시기를 가리언은 이렇게 말한다. “탄생, 성장, 관계의 기적들과 함께, 모든 생물은 죽음의 여정을 공유한다. 그 여정은 부자건 가난한 사람이건, 젊었건 늙었건 간에 우리 모두에게 지극히 공평하다. 인생에서의 마지막 도전이자 집중이고, 인간 정신을 더할 수 없이 높고 깊은 차원으로 이끌고 간다. 그 여정은 우리의 참 모습이 무엇이든 저마다 유일한 방식으로 우리를 완성시킨다.”




역사철학에는 역사의 진행을 ‘완성을 향한 진보’로 보는 관점이 있는가 하면, 옛날의 좋았던 상태에서 ‘점차 쇠퇴해가는 과정’으로 보는 관점이 있다. 개인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삶의 끝으로 가는 과정을 쇠퇴해가는 과정으로 보느냐, 아니면 완성으로 향하는 길로 보느냐. 우리들 각자는 이렇게 개인 차원의 역사철학, 일종의 ‘인생 역사관(歷史觀)’을 갖고 있다. 어떤 ‘인생 역사관’을 갖느냐에 따라 노년의 삶이 좌우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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