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이프 오브 워터] 나이들어서도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쉐이프 오브 워터] 나이들어서도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

글 : 김봉석 / 작가 2018-03-26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셰이프 오브 워터>가 작품과 감독상 그리고 미술상, 음악상을 받았다. 영화에 대한 비평은 물론 관객 반응도 좋아 작품상 수상이 유력하다고는 했지만, 발표 전까지는 반신반의했다. 아카데미상에서 지금까지 장르영화가 수상한 적은 드물기 때문이다. 코미디영화 우디 알렌의 <애니 홀>, 공포 스릴러 조나단 드미의 <양들의 침묵> 그리고 판타지인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왕의 귀환> 정도가 작품상을 받은 장르영화다.


출처: 네이버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최근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은 <문라이트> <스포트라이트> <버드맨> <노예12년> <아르고> <아티스트> <킹스 스피치> <허트 로커> <슬럼독 밀리어네어>였다. 아카데미가 좋아하는 영화는 감동적인 휴먼 드라마, 장대한 스케일의 서사극 같은 것이다. 흥행성보다 작품성을 중시하는 것은 대부분의 영화상이 비슷한데, 아카데미는 고전적이면서도 대중적 취향이었다. 영화계에 종사했던 아카데미 회원들이 심사를 하고, 그들의 나이가 많아지면서 보수적이 되었다는 말도 있다. 그동안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을 보면 할리우드 황금기를 연상시키는 작품들이 많았다.


<셰이프 오브 워터>의 수상에 대해서는 별다른 비판이 나오지 않는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물에 사는 생명체와 인간 여성의 사랑을 그린 영화다. 넓게 보면 <미녀와 야수>의 주제와도 비슷하다. 이생물체와 인간의 사랑, 교감을 다룬 주제는 그동안 환상문학과 영화 등에서 종종 다뤄진 소재이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미지에 대한 호기심과 타자에 대한 차별이라는 인간의 이중적 감정을 유려하게 그려낸 영화다. 



출처: 네이버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너무 전형적이라는 비판도 있기는 하지만 그런 점도 아카데미의 성향과 어울린다. 아카데미는 너무 급진적이거나 도발적인 영화는 좋아하지 않는다. 사회적인 변화를 어느 정도 수용하지만 찬사를 보내지는 않는다. 이번에도 흑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공포영화의 스타일로 표현한 <겟 아웃>은 각본상을 주는 것으로 그쳤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판타지인 동시에 보편적인 사랑의 감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아카데미의 선택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출처: 네이버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아카데미가 좋아하는 이유와 개인적인 선호도가 조금 다를지라도, <셰이프 오브 워터>의 수상은 대단히 기뻤다. 일단 <셰이프 오브 워터>는 판타지 장르의 영화이고, 감독인 길예르모 델 토로의 쾌거이기 때문이다. 아카데미를 휩쓸었던 <반지의 제왕:왕의 귀환>은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원작이 있었고 사회문화적으로 큰 화제를 일으킨 영화였다. 그에 비하면 <셰이프 오브 워터>는 작품 자체로 인정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꾸준하게 환상적인 영화를 만들어왔던 길예르모 델 토로에 대한 인정이기도 하고.


멕시코 출신인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1992년 <크로노스>로 데뷔한 후 <미믹>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하여 <악마의 등뼈> <블레이드2> <헬보이> <헬보이2>, <판의 미로>, <퍼시픽 림> <크림슨 피크> 등을 연출했다. 오로지 호러와 판타지, 액션 등 장르영화만을 고집했고 확실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하여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출처: 네이버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길예르모 델 토로가 만들었던 영화들은 대중문화 요소가 강하다. 뛰어난 예술 작품을 만들겠다는 생각보다는 자신이 좋아했던 대중문화의 장르와 스타일을 활용하여 독창적인 작품을 만든다. <크로노스>는 멕시코시티를 배경으로 한 고딕 스타일의 뱀파이어 영화이고, <미믹>과 <블레이드2>로 성공을 거둔 후에는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헬보이>에 도전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다. 마블, DC의 슈퍼히어로와는 결이 다른, 반사회적이면서도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헬보이의 캐릭터는 길예르모 델 토로 고유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네이버 영화 '헬보이'


<판의 미로>는 길예르모 델 토로의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스페인 내전이 치열하게 벌어진 후의 1940년대 스페인. 어머니가 비달 대위와 결혼하면서, 오필리아는 지방의 군대 캠프로 가게 된다. 엄격하고 잔인한 비달에게 두려움을 느끼던 오필리아는 요정을 만나고, 자신이 지하세계 공주의 환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세 개의 마법 열쇠를 찾으면 돌아갈 수 있다는 것. <판의 미로>는 정부군과 게릴라의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는 현장에서, 한 소녀의 판타지를 그린다. ‘어른이 되면 이해될 것’이라는 어머니의 말은 의미가 없다. 소녀에게 판타지는 곧 현실이다. 어쩌면 이 세계 자체가 거대한 판타지일 지도 모른다. 



출처: 네이버 영화 '판의 미로'


전쟁으로 폐허가 된 고아원에 아이의 귀신이 나타나는 <악마의 등뼈>에서 길예르모 델 토로는, 진정 두려워해야 하는 존재는 죽은 이가 아니라 살아 있는 자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귀신을 보고, 환상 속에서 모험을 하지만 결국은 현실에서 살아남아야만 한다. 진실을 찾아서 용기 있게 나아갈 때 그들은 비로소 구원받을 수 있다.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도 이런 주제는 반복된다. 길예르모 델 토로는 일관되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왔다.


출처: 네이버 영화 '악마의 등뼈'


21세기 대중문화의 경향 하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 보고 싶은 것을 작가가 되어 직접 만들어내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킬 빌>의 쿠엔틴 타란티노와 <매트릭스>의 워쇼스키 자매가 유명하다. 홍콩 무술영화,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 할리우드 장르 영화들을 좋아했던 그들은 자신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영화들을 꾸준히 만들어왔다. <반지의 제왕>의 피터 잭슨과 <어벤져스>의 죠스 웨던도 비슷한 유형이다.


이런 경향이 지금 시작된 것은 아니다. 거장이 된 지 오래인 스티븐 스필버그도 같은 길을 걸어왔다. SF, 판타지, 호러 등의 장르가 싸구려 취급을 받던 1970년대에 <죠스> <환상특급> <빽 투 더 퓨처> <구니스> <폴터가이스트> <그렘린> 등을 제작, 감독하면서 할리우드를 바꾸어놓았다. 어릴 때 좋아했던 작품들을 직접 만들고 싶다는 욕망은 마니아를 넘어서 대중문화의 지평을 바꾸는 가장 중요한 동인이 되었다.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티븐 스필버그' 필모그래피


20세기에는 일과 취미가 분리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회사에서 일을 하고, 여가 시간에는 취미 활동을 하는 것. 지금은 단순 노동이 점점 없어지고, 젊었을 때 했던 일과 50대 이후에 하는 일이 연결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젊었을 때에는 사회적 관계와 중심을 만들기 위해 일에만 열중하는 것이 때로 필요하지만 50이 넘어서도 오로지 일에만 매진한다면 편향된 인생이 될 수 있다. 고정된 하나가 아니라 서로 연결된 2~3개의 일과 직업을 가져는 것이 인생을 풍요롭게 살아가는 기반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취미와 취향은 40대 이후에 더욱 중요해진다. 문화적인 영역만이 아니라 IT와 운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취미와 취향에 기초하여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중년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도 그런 현상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인생을 밀고 나간다. 그러면 즐겁고 신나는 일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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