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을 할 때엔 자녀와의 갈등이 존재하는지 조차도 인지하지 못했다.
흑자 가계재정을 유지하는 것으로 아버지 역할을 잘 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했다.
진정한 의사소통이 무엇인지도 고민해보지 못했다.
자녀보다 더 많은 인생을 살았기에 부모의 판단이 늘 옳다고 믿었다.
이런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자녀는 늘 부모의 말을 따라야 한다는 식의 가부장(家父長)적인 사고 틀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31년 동안의 직장 생활을 마치고 실업자가 되면서
자녀와의 갈등이 표면화됐다.
없었던 갈등이 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갈등을 이제서야 알아차렸던 것이다.
가부장이 아닌데 가부장이라고 착각한 것이 갈등의 원인이었다.
여전히 가부장인 줄 알고 잔소리를 했기에 갈등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집(家)에서는 아버지(父)가 우두머리(長)라는 의식이 얼마나 우둔하고 미련한지를
실업자가 되고 나서야 깨우쳤다.
실업자가 된 이후 나에게 주어진 가장 값진 선물은
내가 가부장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때서야 비로소 갈등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었고,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었다.
갈등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 자체가 해결책이었다.
갈등은 없앨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갈등의 존재를 인식하는 게 어떻게 갈등의 해결책일까.
우선 갈등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해 보자.
갈등(葛藤)이란 단어는 칡(葛)과 등나무(藤)의 특성에서 연유했는데,
칡은 오른쪽으로 덩굴을 감으며 올라가고, 등나무는 왼쪽으로 덩굴을 감으며
성장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
한쪽은 오른쪽으로 다른 한쪽은 왼쪽으로 올라가니 어떻게 되겠는가.
얽히고 설킬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들 나무가 죽지 않고 성장한다는 것은 곧 얽히고 설킴의 연속이다.
성장 방식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게 갈등 치유의 핵심이지 않을까.
가정에 갈등이 있는 게 당연하고, 갈등이 없다면 가족 자체가 존재할 수 없음을 인식하는 게 가정 행복의 출발점임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