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차이 나는 사람과도 어울릴 결심...!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스무살 차이 나는 사람과도 어울릴 결심...!

글 : 한혜경 / 작가, 前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2022-08-31

현역일 때는 일로 얽힌 관계가 노동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고, 그래서 이런저런 관계에서 벗어나서 조용히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많았다. 소설이나 드라마에나 나올 것 같은 이상한 사람들과 좋은 척하며 지내는 게 고역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지도 않는 연대감이나 공동체 같은 단어에 질리는 느낌이 들었던 적도 여러 번이다. 마침 팬더믹으로 ‘거리 두기’가 권장되던 사회 분위기여서 이참에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조용히 살고 싶다는 마음은 오래 가지 않았다. 세상으로부터 잊혀진 존재가 되고 싶지도 않았지만,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혼자서도 잘 노는 편이지만, 누군가와 같이 놀면 더 재미있을 것 같았다.


말하자면 좋은 사람들, 만나면 재미있는 사람들,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합리적이면서도 따뜻하고, 적당히 느슨하면서도 때로는 끈끈한 연대감이 느껴지는 그런 관계를 갖고 싶었다.


그래서 이런저런 루트를 통해 같이 놀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은퇴 후에 인간관계가 더 넓어졌다(이 이야기는 전에도 쓴 적이 있다). 즉 주로 같은 직장, 같은 전공의 사람들, 일과 관련된 사람들을 만났던 현역 때에 비해 더 다양한 배경과 다양한 경력을 가진 친구, 선배, 후배, 지인을 만나게 되고, 다양한 모임에 참여하다 보니 만나는 사람의 스펙트럼이 훨씬 넓어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희망했던 ‘합리적이면서도 따뜻하고, 느슨하면서도 끈끈한’ 연대감을 느끼는 일도 훨씬 많아졌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같은 연령대의 친구 모임과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이 어울리는 모임에는 각각 장단점이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동년배 모임이 편하고 좋을 때도 많다.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도 비슷해서 편안하고, 나이 드니까 서글프다는 이야기, 여기저기 아프다는 이야기도 솔직히 털어놓으면서 위로를 받기도 한다. 무엇보다 연령차별 받을 일이 없어서 좋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너무 편한 사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활기나 도전 같은 걸 기대하기가 힘들다고나 할까. 시간이 지날수록 기운 없고 우울한 만남이 될 위험성도 크다. 따뜻하긴 한데 합리성은 조금 부족하거나, 끈끈하기는 한데 느슨하지는 않은 그런 관계로 느껴질 때도 있다. 그렇다면 재미는? 어느 쪽이 더 재미있고, 어떤 모임에서 더 많이 웃게 될까? 금방 대답하기 힘든 문제였다.


그런데 2주 전에 참석했던 한 모임을 통해서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의 모임이 동년배 모임 못지않게, 아니 어떤 면에서는 훨씬 더, 재미있고 감동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졸업한 대학 학과에는 각 기의 대표들이 모이는 간사 모임이 있다. 두 달에 한번씩 각 기 대표들이 모여서 학교나 학과에 대한 이런저런 정보도 교환하고, 재학생에게 장학금도 주고, 식사하면서 이야기도 나누고 친목도 다지는 그런 모임이다. 각 기 대표들의 모임이다 보니 80대의 1회 졸업생 대표 선배님으로부터 40대의 기 대표까지 30~40년의 나이 차이가 나는 동창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과 동창이라는 점에서는 동질적이지만 연령 차이는 많이 나는 그런 모임인 셈이다.


두 달에 한번씩 같은 식당, 같은 룸에서 만나는데, 그 룸의 자리 배치가 크게 둘로 나눠져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졸업 연도가 빠른 시니어팀과 상대적으로 젊은 주니어팀끼리 앉게 된다. 16회 졸업생인 나도 시니어팀의 좌석에서 선배님들과 자리를 같이 한다.


그런데 이번 달 모임은 조금 특별했다. 코로나 때문에 오랜만에 많은 인원이 참석한 자리였고, 주니어팀의 누군가가 학술상을 타고, 누군가 졸업생 대표로 뽑히는 등의 축하할 일도 있고 해서 케익도 자르고, 분위기가 다른 때보다 더 활기차고 유쾌했다. 평소에도 분위기를 잘 띄우시는 70대 중반의 H선배님이 흥을 돋우는 멘트에 간단한 춤까지 추셨고, 80대의 K선배님께 ‘노래 하나 하시라’며 바톤을 넘겼다.


K선배님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앞으로 나오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 대학 다닐 때는 도리스 데이라는 가수의 노래가 엄청 유명했었죠. 그런 도리스 데이가 96살까지 살았답니다. 나도 최소한 96살까지는 살고 싶어요.”


그리곤 트위스트를 추듯이 온몸을 흔들면서 오래된 팝송을 부르시는 것이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상상해보시라. 80대의 선배님이 트위스트까지 추시면서 신나게 노래 부르는 모습을. 처음에는 “어..어..???” 하며 토끼눈을 하던 젊은 후배들도 박수를 치고, 노래를 따라 부르고, 깔깔 웃음이 넘치고, 분위기가 한껏 무르익을 수밖에.


그런데 그날 겉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밝고 유쾌해 보이는 K선배님은 몇 달 전에 슬픈 일을 겪었고 그래서 상당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럼에도 다시 기운을 내서 동창 모임에 나오고, 춤추면서 노래까지 하는 모습은 모두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꿋꿋하고 강인한 선배님의 모습을 보면서 웃으면서도 눈물이 났고, 가슴까지 뭉클해졌다.


그날 왠지 기운이 없던 나도 엄청 힘을 받는 기분이었다. 그래 힘들지만 다시 기운을 내야겠다, 무엇이든 아직은 포기하지 말아야겠다, 지금 하고 있는 일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 더 많이 웃고 유쾌해지고 싶다, 아니 남들에게도 웃음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80대의 선배님으로부터 이렇게 자극을 받다니,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동안 막연히 생각했었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였을 때 더 많은 수혜를 받는 건 아무래도 나이 든 사람들일 거라고. 그렇잖은가. 세대간 소통이 점점 힘들어지는 요즘 세상에 젊은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다면 유용한 정보나 도움도 얻을 수 있고 재미도 있고 자극도 받지 않겠는가. 젊은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 나누고 웃기만 해도 젊은 기운을 수혈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러니 나도 가능하면 젊은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젊은 사람들과 어울려야겠다,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날 그 동창 모임을 끝내고 돌아오면서 다양한 연령대의 모임에서 더 큰 수혜를 얻는 사람이 과연 나이 든 사람들일까? 의문이 들었다.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인 내가 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선배들로부터 받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다양한 경험과 연륜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인생 이야기, 세월이 쌓여야만 줄 수 있는 묵직한 교훈, 웃으면서도 눈물 나는 가슴 뭉클한 감동... 이런 것들을 고스란히 받고 있는 건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이라는 깨달음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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