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길고, 여전히 모르는 게 많기에 나는 ㅇㅇ을 산다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인생은 길고, 여전히 모르는 게 많기에 나는 ㅇㅇ을 산다

글 : 한혜경 / 작가, 前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2022-08-01

지난 주에 부산 기장 바닷가에 위치한 유명한 A타운에 다녀왔다. 수영장과 바다가 이어져 있는 광경이 너무 멋있어 보여서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이번에 보니 수영장뿐 아니라 주변 경관이며 시설 등 모든 것이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그래서 기회가 되면 또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건 바로 ‘이터널 저니’라는 이름의 커다란(500평 규모) 서점이었다. 세상에! 바다가 눈앞에 펼쳐지는 휴가지에 이렇게 멋진 서점이 있다니!


이 서점은 책을 엄청 귀하게 여기는 누군가의 서재처럼 꾸며져 있었고, 누구나 느긋하게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충분한 공간과 안락한 자리를 마련해놓고 있었다. 차를 마시면서 천천히 책을 보거나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카페 공간이 있는 건 물론이었다. 바다를 바라보며 책을 구경하고 읽을 수 있다는 것도 좋았지만, 자칫하면 부자들만을 위한 폐쇄적인 공간처럼 보이기에 십상인 곳에 ‘누구나 들어와서 책을 읽으며 여유를 즐기세요’라고 말하는 듯한 분위기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요즘 어딜 가나 이렇게 개성 있는 서점을 만날 수 있는 건 정말 좋은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연신 감탄사를 연발하는 내 귀에 동행한 A씨의 한마디가 꽂혔다. 그는 서점에 들어서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난 앞으로 책은 안 읽을거야.”


마치 지금부터 당장 책을 읽기 시작하라는 명령을 받은, 반항기로 똘똘 뭉친 초등학생 같은 말투였다. 사실 내 주변의 은퇴자들 중에도 이런 사람들이 꽤 있다. 책이라면 손사래부터 치는 사람들 말이다. 책만 봐도 눈이 피곤해지고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도 여럿이다.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A씨만 해도 책 읽고 쓰고, 쉽게 풀어서 설명하고 가르치는 일을 수십년간 했으니 책이라면 지겨울 만도 하다. 솔직히 나도 그랬다. 은퇴하기 직전에 수많은 책을 정리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 많은 책을 왜 샀을까? 돈이 아깝다, 앞으로는 보지도 않을 책을 마구 사들이는 짓은 하지 말아야겠다. 하긴 앞으로는 책 살 일도 줄어들겠지, 책 읽는 시간도 아무래도 줄어들거야... 이런 생각을 했던 기억도 난다.


하지만 결과는? 지난 3년간 나는 과연 책을 덜 읽고 덜 샀을까? 아니다. 여전히 책을 많이 사들이고, 읽으면서 살고 있다. 달라진 게 있다면 구입하는 책의 분야가 예전과는 상당히 다르고 다양해졌다는 점이다. 전에는 전공과 관련 영역에 관한 책을 주로 샀다면, 최근에 산 책중에는 ‘뇌과학’에 관한 책이 가장 많고, 현역 때는 잘 사지 않던 건강, 주거 공간, 와인 등에 관한 책도 있고, 얼마 전에는 투자에 관한 책도 두 권이나 샀다(진작 사서 읽었어야 하는 책인데 이제야 사다니!).




결국 책을 덜 읽고 덜 사게 될 것이라는 나의 예측은 틀린 셈이다. 아니 어떻게 된 게 책을 보면 볼수록 이 세상에 배워야 할 게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느낌이었을 뿐, 실제로는 1도 모르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실감하는 중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많다.


“요즘 누가 책을 봐? 웬만한 건 유튜브에 다 있는데...”


무슨 말인지 안다. 나도 유튜브 많이 본다. 그 안에 있는 무궁무진한 정보들을 보면서 부지런한 유튜버들에게 감사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무료로 보기 아까운 내용도 많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압축적인 내용만을 다뤄야 하는 유튜브의 특성 때문에 더 알고 싶은 깊숙한 내용에 대한 갈증이 심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덜 정확하거나 틀린 정보, 가짜 정보에 휘둘리지 않을 지식의 필요성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배우고 익혀야 할 것이 이렇게도 많은 세상에 유튜브 정보에만 의존하는 건 마치 나뭇잎 배 타고 강을 건너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게다가 너무 짤막한 정보들을 이것저것 많이 접하다 보면 주의력과 집중력이 떨어지고 기억력도 나빠진다는 느낌이 든다. <성취하는 뇌>의 저자, 마르틴 코르테는 지적하고 있다. 지나치게 방대한 정보는 오히려 기억력을 떨어뜨리는데, 그 이유는 거대한 데이터 공간에서 기억을 자세히 찾아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유튜브에 있는 수많은 정보를 볼 때도 그러하다. 그래서 난 유튜브를 덜 보고 책을 더 열심히 읽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나마 조금 남아있는 집중력과 주의력, 기억력마저 사라져버릴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이왕 기억력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코로나에 걸린 것도 아닌데 뇌에 안개가 낀 것 같은 ‘뇌안개’ 현상이 느껴진다거나 자주 쓰던 단어가 생각나지 않을 때가 점점 많아진다. 뇌를 운동시키기 위한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신호이다. 마르틴 코르테는 뇌는 쓸수록 젊어진다면서 전에 치던 피아노를 다시 배우거나 외국어를 다시 공부하면서 집중력을 키움으로써 전두엽을 활성화시키라고 조언한 바 있다. 나는 피아노나 외국어 공부보다는 책을 통해 집중력을 키우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물론 몸이 점점 더 말을 듣지 않는 건 사실이다. 전에는 책과 꽤 친하던 몸이었는데, 요즘엔 눈도 피곤하고 몸의 저항도 심한 편이다. 하지만 근력운동을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것처럼, 힘들어도 책을 읽어야 제멋대로 게을러지고 점점 더 말도 듣지 않는 뇌를 다잡을 수 있지 않을까. 그나마 책을 가까이 하고 이렇게 정기적으로 글을 쓰는 일이 나의 뇌를 지켜주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어쨌거나 은퇴 후는 책을 읽기 좋은 때다.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유 있는 사람만 책을 읽는 건 아니다. 최근에 어려운 일을 잇달아 겪은 K 선배는 박완서의 소설을 읽으면서 엄청난 위로를 받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말한다.


은퇴했으니 이제부터 책과는 담을 쌓겠다는 A씨도 다시 책과 친해지기를 바란다. 인생은 길고, 여전히 모르는 건 많고, 세상에 읽어야 할 책은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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