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 인한 상실감을 치유하는 방법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을 치유하는 방법

글 : 양준석 / 한림대 생사학연구소 연구원 2022-11-10



2022년 10월 29일. 다양한 인종과 수많은 사람들이 어울리는 이태원 거리에서 300여명이 넘는 사상자(사망자 156명)가 유례없는 압사 사고로 죽음을 당했다. 코로나19에도 성공적인 K-방역으로 세계 최고의 안전지대로 찬사 받던 우리나라가 어떻게 하루아침에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참사의 진원지가 된 것일까. 죽음의 현장에 ‘국가와 지자체는 없었다’고 탄식할 만큼 공권력의 부재와 무능한 대응에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1029 참사로 확인되는 것처럼 우리 사회도 울리히 벡(Ulrich Beck)이 말한 위험사회(risk society)로 진화되면서 대규모 죽음이 상시화되고 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라는 집단적 죽음을 경험하고서도 이에 대한 반성은커녕 사회적 참사가 여전히 반복되는 일을 경험하며 죽음에 관한 한 안전한 지대는 없다고 느낀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산 저승’에서 하루하루 비통함을 겪고 있을 유가족들이다. 그들의 심정을 감히 누가 헤아릴 수나 있을까. 고인들과 유대감이 깊었을 이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절절하게 경험할 고통을 생각하면 생각이 멈출 만큼 먹먹해진다. 한 존재의 죽음은 개인의 문제인 동시에 가족의 문제이며 사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참사나 자살과 같은 트라우마적 죽음은 주변 사람 8명 이상에서 치명적이고 심각한 심리적, 신체적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특히 충분히 애도할 수 없는 죽음이라면 더더욱 그러할 수밖에 없다. 대규모 참사를 바라볼 때 사고의 비참함, 죽은 사람의 원통함, 이후 진상규명과 관련자 처리 과정에는 관심을 두지만 정작 유족의 마음에 꽂힌 죽음의 독침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나 참사로 인한 죽음은 유족들을 여러 측면에서 괴롭힌다. 단지 죽은 고인에 대한 애착뿐만이 아니라 어떻게 이렇게 죽을 수 있는가 하는 부당함, 사랑하는 이들을 두고 먼저 죽어버린 사람에 대한 원망, 고인에 대한 자책감 등 혼란스러운 감정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죽기 전날 좀 더 다정하게 해주지 못했던 일들이 생각나거나 꿈자리가 사나웠던 것을 기억하며 그곳에 가지 말라고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감에 몸서리치고, 왜 하필 그 골목에 들어서서 그런 일을 당했는지, 끝없는 자책과 원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긴다. 어쩌면 자책과 원망 또한 충격적 사건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자신을 이승에 남기고 간 사람을 향한 애도의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스팽글러(Spangler)와 데미(Demi)는 ‘슬픔의 수레바퀴 이론’을 통해 애도자들이 경험하는 슬픔을 4단계 과정으로 기술하고 있다. 첫 번째는 충격단계로 참사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상실 그 자체를 부정한다. 두 번째는 저항단계로 자책이나 우울, 분노와 같은 증상들이 밀물과 썰물처럼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반복한다. 세 번째로는 혼란단계로 상실로 인한 부재를 실감하며 정체감에 빠진다. 네 번째는 재정의단계로 사별을 수용하고 삶을 재구조화하며 현실로 나아간다. 이 과정은 사람마다 다르며 악화 혹은 회복의 길로 나뉘는데, 애도자의 자원과 역량은 물론 사회적인 자원과 역량도 포함된다.


우리 사회가 위기에 취약한 시스템으로 구축되어 있으며, 이런 일이 또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제의 죽음은 그들에게 일어난 일이지만, 내일의 죽음은 내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로 고인이 된 이들은 죄가 없다. 그들을 비난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슬픔에 잠긴 유족들에게 죽음의 책임을 묻는 일은 더더욱 하지 말아야 한다. 참사를 겪은 사람들을 치유하는 가장 큰 요인은 고통의 동질성이라고 한다. 당신도 나도 죽음 앞에 희생당한 자라는, 연민의 마음이 치유의 원동력인 것이다. 




뉴욕 세계무역센터 자리에 마련된 ‘부재의 성찰(Reflecting Absence)’ 연못



  


2001년 9.11 테러 이후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있던 자리에는 초고층 건물을 대신해 물이 아래로 흘러내리는 두 개의 연못이 생겼다. ‘부재의 성찰(Reflecting Absence)’이라는 이름이 붙은 연못 외곽에는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그 이름들을 잊지 않은 이들과 아픔을 겪은 유족들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가져다놓은 꽃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다.


반복된 참사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인재(人災)이다. 시간이 흐르면 당연한 듯 죽음의 흔적을 지우려는 시도에 결연한 태도로 반대해야 한다.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불안과 두려움을 구체화함으로써 의미를 불어넣어야 한다. 삶의 본질은 죽음을 마주할 때 드러나고 죽음의 의미를 사유할 때 삶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마땅히 있어야 할 존재가 부재하는 상황에 대한 뼈아픈 성찰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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