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월드컵의 추악한 이면을 파헤치다 <FIFA 언커버드>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화려한 월드컵의 추악한 이면을 파헤치다

글 : 김봉석 / 작가 2022-12-13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사상 세 번째로 16강에 진출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에 진출했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16강에 올랐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포르투갈에 2 대 1 역전승을 거두며 아슬아슬하게 16강에 합류했다. 비록 16강전에서 브라질에 패했지만, 이번 월드컵의 모든 경기마다 놀랍도록 멋지고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다음번 월드컵은 북중미에서 열린다. 2002년 한일 월드컵과 비슷하게, 미국과 멕시코, 캐나다에서 함께 열리는 것이다. 멕시코는 1970년과 1986년, 미국은 1994년에 월드컵을 개최한 적이 있다. 사실 미국은 2022년 월드컵을 유치하려 추진했지만, 카타르에 밀려 고배를 마신 적이 있다. 북중미 월드컵에서는 처음으로 참가팀이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확장된다.




월드컵을 관장하는 곳은 FIFA(국제축구연맹, 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다. FIFA는 월드컵과 국가대표 경기 등을 주관하는 단체다. 축구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와 사람들이 보고 열광하는 스포츠다. 야구도, 농구도, 어떤 스포츠도 축구를 능가하지 못한다. 올림픽위원회인 IOC에 비견되는 FIFA에게 엄청난 권력이 몰리는 이유다. 권력과 힘이 집중하는 곳에는 거의 필연적으로 부정과 부패가 따라붙게 된다. 2015년 미국의 FBI는 FIFA 집행위원들의 뇌물과 협박혐의를 포착하고 수사에 들어갔고, 체포하기에 이르렀다.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언커버드>는 당시의 수사를 바탕으로, 스포츠 단체인 FIFA가 어떻게 부정과 부패를 일삼는 권력집단이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FIFA가 출범한 것은 1904년. 친목 도모를 목적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발족했다. 모든 나라가 평등하게 스포츠로 경쟁하자는 이상주의로 시작했다. 초기의 FIFA도, 월드컵도 순수했다. 하지만 1974년, 제7대 회장 선거부터 변질되기 시작한다. 브라질 출신의 주앙 아벨란제는 열세로 평가되었지만, 영국인 심판 출신의 경쟁자를 누르고 회장에 당선된다. 아벨란제는 아프리카에 지원을 약속하며 지지를 끌어 모아 회장이 되었다. 그리고 스위스 출신의 조제프 블라터를 FIFA에 영입한다.




블라터가 FIFA에 합류한 후, 거대 기업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막대한 돈이 오가는 시대가 열린다. 코카콜라는 월드컵 후원기업으로 계약하며 많은 돈을 냈다. 블라터는 스포츠 회사에 식음료, 항공사, 자동차 등 모든 분야의 회사들을 후원기업으로 내세운다. 엄청난 돈이 FIFA로 흘러들어 오며, 부패가 만연할 기회를 제공한다. FIFA는 아디다스의 사장인 호르스트 다슬러와 손을 잡았다. 다슬러는 스포츠 마케팅 회사 ISL을 세우고, 피파와 독점 계약을 맺는다. 70년대는 세계 어디에서나 TV가 가장 중요한 매체였다. FIFA는 ISL에게 월드컵 방송권을 독점으로 주고, 모든 국가에 방송권을 판매한 막대한 수익이 들어왔다.


피파 초기의 이상주의는 사라졌다. 회장이 된 아벨란제의 첫 월드컵은 아르헨티나에서 열렸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최악의 군사독재 정권이 지배하고 있었다. 매일 같이 학생과 시민들이 체포되고, 비참하게 죽어갔다. ‘스포츠워싱’이란 말이 있다. 독재정권이 자신들의 악명을 감추기 위해 스포츠를 이용하여 세계의 관심을 돌리고, 자국민의 애국심을 그릇된 방향으로 끌어가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1936년 히틀러와 나치가 주도한 베를린 올림픽이다. 78년의 아르헨티나 월드컵도 보이코트 운동이 있었으나, FIFA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벨란제는 정치와 축구가 관련 없다고 말했으나 사실은 독재 정권을 지지한 것이나 다름없다. 2018년의 러시아 월드컵도 마찬가지였다.


아르헨티나를 시작으로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 대회를 치를 때마다 막대한 돈이 FIFA로 흘러들어갔고, 아벨란제 개인에게도 주어졌다. 1981년부터 사무총장을 하게 된 블라터는 아벨란제의 부패 증거를 잡고 공작을 한다. 21년간 장기집권을 한 아벨란제를 끌어내리고 블라터가 직접 회장이 되려는 것이다. 아벨란제는 4년만 회장을 더 하고 물러나는 것으로 합의가 이루어진다. 그런데 경쟁자가 생긴다. 유럽축구연맹, UEFA 회장인 렌나르트 요한슨이다. 가장 큰 축구 시장이자 권력을 가진 유럽의 요한손은 강력한 라이벌이었다. 그러자 블라터는 30표나 되는 북중미 그리고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표를 얻기 위해 교묘한 술책을 쓰기 시작한다. 국가마다 평등하게 1표씩 투표권이 주어지는 허점을 이용한 것이다.


1998년 FIFA 회장 선거에서 승리한 블라터는 제8대 회장이 되었고, 부패는 더욱 심해졌다. 열악한 환경의 국가들에 축구 지원금을 준다는 사업은 아군을 확보하기 위한 일종의 뇌물에 가까웠다. 새로운 사무총장 미셸 젠루피넨이 블라터의 부패 혐의를 제기했으나 2002년의 회장 선거에서도 다시 블라터가 이겼다. 누구도 건드릴 수 없고, 자신의 권력은 영원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블라터는 더욱 전횡을 일삼았다. 막대한 뇌물이 오간 남아공 월드컵이 끝난 후, 블라터는 18년과 22년의 월드컵을 한꺼번에 결정한다고 발표한다. 여기에는 집행위원들의 욕심도 한몫했다. 대부분 나이가 있어 이후의 월드컵 개최지 결정에 참여하기 힘들다고 판단하여 한꺼번에 많은 돈을 챙기려 한 것이다.



출처 : IMDB FIFA Uncovered Photo Gallery


는 FIFA의 역사와 부정부패가 정착되는 과정을 보여준 후에, 카타르 월드컵 유치 과정에 있었던 스캔들을 집중적으로 파헤친다. 축구장과 숙박시설 등 기반 시설이 미비하고, 고온의 기후 등 환경도 좋지 않아 고위험군이었던 카타르는 미국이라는 강력한 경쟁자를 물리치고 월드컵 개최국이 되었다. 선정 과정에서도 문제가 많았지만, 이후 월드컵 경기장을 짓는 과정에서 외국인 노동자 3천명 이상이 숨지는 일도 있었다. FIFA는 모든 문제에서 책임이 없다고 말했지만, 카타르를 둘러싼 부정부패 스캔들이 터지면서 심각한 위기에 몰렸다. 혼란 와중에 블라터는 다시 회장에서 재선되었지만, 압박이 심했는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사퇴했다. 이후 발표된 FIFA 윤리위원회의 보고서는 개최지 선정 과정에서 아무 문제가 없다고 결론지었다.


미국 법무부에서 FIFA를 수사하고 기소한 후, 일부 집행위원들이 재판으로 넘어갔지만 블라터와 플라티니 등은 무사히 넘어갔다. 피파에서 물러나는 선에서 끝났다. 그렇다면 FIFA는 다시 축구의 엄청난 영향력을 공정하고 선한 방향으로 쓰기 위해 노력하는 집단이 될 수 있을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최상층의 일부가 바뀌었을 뿐이니까, 블라터와 플라티니 바로 아래에 있던 이들이 전혀 바뀌지 않고, 조금 위로 올라간 것뿐이다. 그래서 궁금하다. 앞으로의 일만이 아니라, 과거 러시아의 개최지 결정에는 어떤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을까. 다른 개최지 선정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언커버드>의 후속편이 계속 나와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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