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풀리지 않는 문제, 인류학자는 답을 알고 있다?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회사에서 풀리지 않는 문제, 인류학자는 답을 알고 있다?

글 : 박덕건 / THE SAGE INVESTOR 편집장 2022-10-12

이 책의 지은이는 금융 저널리스트로는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인류학 박사이기 때문이다. 타지키스탄에서 오지 부족을 연구한 인류학자가 권위 있는 경제지인 ‘파이낸셜 타임스’의 편집국장이 되다니 이 자체가 재미있는 이야기거리인데 아닌 게 아니라 이 책은 지은이 자신의 이야기를 포함해 인류학자들이 비즈니스 현장에서 활약하는 여러 사례를 모은 책이다.



“알고 있다는 착각”의 원제는 “앤스로-비전”(Anthro-Vision)이다. 인류학의 ‘앤스로폴로지’에 ‘비전’을 합친 말로 인류학적 시각이라는 의미다. 지은이는 현대의 비즈니스에 이런 시각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는데 왜냐하면 통상적인 시각으로는 문제가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류학자는 기본적으로 선입견 없이 다른 문화를 들여다 보는 것을 주특기로 하는 사람들이라 인류학자의 그런 특기를 잘 활용하면 의외로 다양한 쓸모가 있다는 것이 지은이의 시종일관된 주장이다.


예를 들면 제너럴 모터스가 독일의 자동차 회사 오펠과 함께 소형차 개발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사례가 있다. 1997년 제너럴 모터스는 미국과 독일의 자회사 조직 몇 곳의 엔지니어를 모아서 신차를 개발하기로 했지만 잘 진행이 되지 않았다. 중요한 결정이 계속 지연되고, 해결을 위해 모인 회의에서는 날선 공방만 오갔다. 결국 2년 남짓 시간만 허송하고 프로젝트는 취소되었다. 프로젝트 참여자들은 대개 실패의 원인을 미국과 독일간의 민족적 차이에서 찾았다.



그러나 GM에서 인류학자에게 그 프로젝트를 다시 살펴보게 한 결과, 민족적 차이는 핵심이 아니었다. 같은 미국 출신 엔지니어 사이에서도 불협화음이 있었고, 불화의 단층선은 반드시 민족적 차이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었다. 인류학자는 결국 각 회사의 엔지니어가 ‘회의’를 각각 다른 관점에서 보는 것이 문제라는 결론을 내렸다. 한쪽은 회의를 이미 결정된 주요한 사항을 공유하는 자리라고 생각한 반면, 한쪽은 주요한 사항을 결정 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자리라고 생각하는 차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상호 합의를 중시하는 그룹과 위계적인 진행을 중시하는 그룹이 부딪칠 때 중재가 되지 않으면 배는 산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그게 바로 GM 소형차 개발 프로젝트에서 발생한 문제였던 것이다.


비즈니스 인류학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앤스로-비전은 어떤 방법으로 이런 문제를 파악하는가? 지은이는 마치 인류학자가 오지에 사는 부족을 찾아가 그저 같이 부대끼면서 그들의 생활을 이해하는 가운데 요점을 파악하듯이 현대의 조직에도 같은 방법을 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요컨대 오지의 부족에 대한 연구나 현대적인 자동차 회사의 기술자 그룹에 대한 연구나 방법은 똑같다는 것이다. 그것을 지은이는 비구조적 질문과 개방형 면접이라고 부른다. 사전에 어떤 형식을 정해놓지 않고 그냥 연구 대상을 졸졸 따라다니며 그저 물어 보고 관찰하는 것이다. 미리 질문지를 만들게 되면 이미 거기에는 질문자의 편견이 작용하게 되고 질문자의 시야는 좁아진다. 예상 밖의 문제를 발견하고자 한다면 문제를 미리 예상하면 안 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요즘 대기업이 인류학 전공자를 고용해서 아주 다양한 조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좀 놀랐다. 소비자 조사나 사용자 경험 조사와 같은 마케팅 분야, 업무 능률을 높이기 위한 직무 조사 등은 쉽게 연상이 되지만 ‘아니, 이런 것까지’ 싶은 분야에도 인류학 테크닉이 활용되고 있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 이야기다.


몇 년 전 이야기라 기억이 가물가물한 사람도 있겠지만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 라는 이름을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회사는 과거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당시 페이스북의 개인정보를 활용해서 온라인 선거운동을 도왔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던 회사다. 그런데 이 회사의 창업자들이 애초에 만들었던 회사가 선거운동 외에 또 하나 하던 일이 있었다. 적국의 문화를 분석해서 문화적 설득으로 각종 저강도 전쟁을 수행하는 사업이었다. “정보작전으로 적을 설득해 서 물리칠 수 있다면 총을 쏘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그들은 실제로 나토에도 서비스를 제공 했다고 한다(페이스북의 개인정보를 활용한 것이 스캔들로 비화하여 케임브리 지 애널리티카는 결국 소송에 휩싸여 파산하고 말았다).


지은이의 주장대로 물고기는 물을 볼 수 없다. 잘 안다고 생각하는 대상이 사실은 엉뚱한 구석을 감추고 있을 수 있다. 늘 마음을 열고 참신한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말을 하지만 실제로는 쉽지 않다. 이 점에 관해 인류학자에게서 우리가 배울게 있다면, 날카로운 통찰력도 결국은 끈질긴 조사와 관찰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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