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부딪히며 비비고 살아가는 맛이 있지 않겠는가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인생은 부딪히며 비비고 살아가는 맛이 있지 않겠는가

글 : 이근후 /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2022-09-27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말을 통해 상대방과 소통한다. 수많은 동물 중 말을 하는 동물은 사람이 유일하다. 다른 동물들도 일정한 소리를 내어 자기들끼리 즐겁거나 위험하다는 신호를 주고받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해독하지 못하고 모두 뭉뚱그려 소리를 낸다고 할 뿐이다.


사람도 처음부터 말을 잘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태어나서 옹알거리는 소리를 시작으로 엄마, 아빠 등의 단어로 확대해 나갔을 것이며, 학교에서 배우고 자기 경험을 통해 단어의 가짓수를 넓히고 또 이 단어들을 엮어 말을 만들어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상대방에게 전했을 것이다. 이렇게 말이 발전하다 보니 말하는 습관도 생겨난다. 사람마다 말을 할 때 자주 사용하는 단어나 문장이 조금씩 다르다. 여기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단어와 문장은 습관처럼 자주 사용할 것이고, 습관화 되지 않는 말들은 자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마다 다른 ‘말버릇’이 생겨난다.


내가 사용하는 말 가운데 버릇처럼 자주 쓰는 단어가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언제부터 이 말을 버릇처럼 자주 사용하게 됐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아마 대학 시절 이후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 이전까지는 나한테 닥친 상황이 그리 복잡하지도 않았고 심오하게 생각할 것도 적어서 그랬을 것이다. 대학에 들어가고 나니 지금까지 살면서 경험해 보지 못했던 다양한 일들이 내 앞에 닥쳤고, 여기 적응하느라 우왕좌왕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말버릇이 생겨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 하나 영향을 받은 계기가 있다면 정신장애 환자를 보면서 해주었던 말버릇이기도 하다.


피한다고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은 사전에 ‘앞에서 예상한 결과와 다르거나 상반된 내용이 뒤에 나타날 때 앞뒤 문장을 이어 주는 말’이라고 풀이돼 있다. 내가 나름 이 말을 버릇처럼 쓰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나도 스스로 해결하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부딪히면 흔히 다른 사람들이 하듯 다음과 같은 말을 하며 상황을 피하려고 했다.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더욱이 앞으로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이렇게 되뇌며 상황을 바로 보기를 피했었다.




하지만 어떤 상황이든 피한다고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 말이 일시적인 위안을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한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말이다. 이 말에는 자기 앞에 일어난 상황을 똑바로 보고 인정하라는 전제가 숨어 있다. 이미 일어난 상황을 피하지 않고 바로 볼 수만 있다면 그에 대한 적응 양식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상황이 일어났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받아들이길 거부하면 적응 방법이 보일 리가 없다. 우리나라에는 “호랑이에 물려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거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은 일어난 상황에 대해 직시하지 않으면 행동 화할 수 없다는 전제를 내포하고 있다. 내 사고 체계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말이 정착하게 된 데는 이 같은 속담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내 말의 습관이 된 것이다. 우선은 나에게 하는 최면 같은 습관이고, 다른 하나는 정신장애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일러주는 말이다.


공식화해 본다. 우선 일어난 상황을 직시하자. 바로 본다면 우리 속담과 같은 반열에 오른다. 정신을 차리면 솟아날 구멍을 두리번거리며 찾을 수가 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면 솟아날 구멍이 우리 앞에 있다고 하더라도 볼 수가 없다. 일단 솟아날 구멍을 보았다면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그것이 비록 나에게 생소한 발버둥이라고 하더라도 행동에 옮겨야 한다. 행동을 반복하다 보면 이 또한 습관이 된다. 이런 습관을 갖는다면 재앙에 속할 정도의 상황이 아니라면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더 많을 것이다.


나는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지난 2년 나들이를 하지 못하는 동안 유튜브 하나를 열었다. 제자와 함께 즉문즉답 하는 유튜브인데, 한번은 제자가 사정이 있어 12년 전에 녹화해 두었던 영상을 올린 적이 있다. 그때의 영상 속 대담을 가만히 듣고 있다 보니 소리의 강도나 흐름 등은 많이 달라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말을 자주 사용하는 것을 듣고 놀랐다. 당시에도 상황에 대처하는 공식처럼 이 말을 하곤 했는데, 사례로 드는 예화만 다를 뿐 핵심을 이루는 단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였다. 이 말은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전하고자 하는 말이 똑같다는 뜻이다. 상황을 극복하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자아 방어기제라는 말로 많이 표현한다. 어떤 방어기제를 선택해 내 앞에 닥친 상황을 해결하는 것은 오로지 그 자신의 선택이다.


감이 먹고 싶으면 감나무에 올라가 감을 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사용할 때 반드시 필요한 전제는 이미 일어난 사실에 대한 수긍이 먼저라는 것이다. 말이 쉬워서 그렇지 이런 수긍이나 상황에 직면하는 것은 어렵고 또 어려운 일이다. 어렵더라도 피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내 앞에 떨어진 상황은 그 어느 누구도 없던 일로 만들 수 없다. 다만 그 상황으로 인한 충격을 줄이거나 희석시킴으로써 내 일상생활에 영향을 적게 받도록 만들 수는 있다. 또 한 가지 생각나는 것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쓰던 말 가운데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고서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말과 상통하는 내용은 상황을 인식하는 것으로만 끝내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데 까지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는 천명을 기다리자는 것이다. 감이 먹고 싶으면 감나무에 올라가 감을 따야 한다. 감을 먹기 위해서는 그런 노력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감이 먹고 싶다고 감나무 아래 누워 입만 벌리고 있다면 ‘진인사(盡人事)’ 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계속해서 언급하는 이유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보자는 뜻을 전하고 싶어서다. 자, 이제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자. 티끌 같은 먼지라도 비우고 떨쳐내려고 마음의 비질을 해보자. 세찬 파도에 부딪치는 바위섬에 수많은 생채기가 생기듯 다친 마음은 누구든 다 하나씩 가지고 있지 않을까. 무겁디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저 차가운 북새 바람에 훨훨 실려 보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부딪히며 비비고 살아가는 맛이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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