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준비했나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준비했나

글 : 송양민 / 가천대학교 명예교수 2022-11-09




우리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모두 죽음을 향한 여정에 오르며, 결국 언젠가는 죽음에 직면하게 된다. 그래서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Heidegger)는 일찍이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sein zum tode)" 라고 말했다. 또 철학자 김열규는 "죽음은 삶과 함께 자란다" 고 말했고, 종교학자 정진홍은 "죽음은 삶이 도달한 마지막 삶의 형태" 라고 했다. 삶과 죽음이 동전의 앞과 뒷면처럼 결국 하나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고 생각하기를 꺼려한다. 죽음을 연구하는 '죽음학(thanatology)'의 선구자 퀴블러 로스(Kübler-Ross)는 죽음을 앞둔 환자 5백여 명을 인터뷰한 다음, 사람들이 죽음에 접했을 때 '부정'과 '고립'→ '분노'→ '타협'→ '우울'→ '수용' 등 5단계의 심리적 변화를 겪게 된다고 밝혔다. 죽음이 닥친 것에 대해 처음에는 부정하고 분노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엔 자신의 운명과 타협하고 우울해 하다가 결국 죽음을 수용하는 과정을 밟는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의 삶이 죽음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좀 더 적극적인 자세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어떨까? 우리가 죽음불안 심리를 극복하려면 죽음과 삶이 하나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어떤 것이 아름다운 노년이고, 또 어떻게 죽는 것이 아름다운 죽음인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런 내적 성찰(內的省察)을 통해 우리는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더욱 진지한 자세를 가지게 될 것이다. 이것이 '웰다잉'(well-dying, 잘 죽기)의 개념이다.




영국에서 발행되는 의학잡지 메디컬저널(BMJ)은 품위 있는 '좋은 죽음(good death)'에 대해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삶을 마무리 할 것인지에 대해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자신의 죽음의 방식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것은, 죽음을 당하기보다는 당당하게 맞이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웰다잉에 대한 인식이 필요한 것은 한국인의 죽음의 질(quality of death)이 전반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수년 전, 영국 이코노미스트 연구소가 40개 나라의 '죽음의 질'을 평가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32위를 기록해 '죽음의 질'이 좋지 않은 국가로 나타나고 있다. 죽음에 대한 논의가 아직 금기시되어 있고, 고령자들이 가정에서 가족들의 품에 안겨 세상을 떠나기보다는 대부분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죽은 사례가 더 많다는 이유 등으로 이런 결과가 나왔다.


실제로 한국인의 70~80%가 사망하기 직전에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다가 사망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병든 부모님의 생명을 연장하려는 전통적 효(孝) 문화 때문인 듯하다. 효 문화가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전통이기는 하지만, 우리 사회의 죽음 문화는 좀 더 발전할 필요가 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웰다잉에 대한 한국인의 낮은 인식은 생명을 가볍게 버리는 높은 자살률에서도 읽을 수 있다. 2021년 자살로 사망한 한국인의 수는 무려 1만4천 명에 달해, 자살이 전체 사망원인 4위에 오르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또 OECD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OECD 국가 평균치보다 3배나 높고, 특히 노인 자살률은 무려 5∼10배가량 높다. 생명경시 현상이 이처럼 우리 사회에 폭넓게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서 삶의 소중함과 고귀한 죽음에 대해 공부하는 '죽음준비교육'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수년 전, 세상을 떠난 애플(Apple) 창립자 스티브 잡스(1955∼2011년)의 장례식에서 그의 여동생이자 소설가인 모나 심슨은 "죽음이 스티브에게 다가온 것이 아니라, 그가 죽음을 성취했다."고 추도했다. 숨을 거두기 전날, 스티브 잡스는 아이들과 아내 로렌을 차례로 오랫동안 바라본 다음, 짧은 감탄사를 내뱉고는 눈을 감았다고 한다. 췌장암으로 사망한 스티브 잡스는, 죽기 직전에 자신의 자서전(自敍傳)을 출간하고, 평소 구상해오던 신형 아이폰 상품들을 잇따라 출시하는 등 자신의 죽음을 준비해왔다. 그는 2005년 췌장암 치료를 받고 나서 미국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에서 유명한 연설을 했다. (연설 영상 보기 클릭) 당시 연설문은 인터넷에 다 떠있고, 한국어로도 번역이 되어 있는데 한번 읽어볼만한 명연설이다.



"곧 죽게 된다는 생각은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할 때마다 큰 도움이 된다. 

사람들의 기대, 자존심, 실패에 대한 두려움 등 거의 모든 것들은 

죽음 앞에서 무의미해진다. 

누구나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무언가 잃을 게 있다는 생각의 함정을 피할 수 있다. 

당신은 잃을 게 없으니 

가슴이 시키는 대로 따르지 않을 이유도 없다." 



죽음에 대해 스티브 잡스가 자기의 평소 생각을 써놓은 말이다. 여동생이 추도사에서 '오빠가 죽음을 성취했다'고 표현한 것은 그의 이런 삶의 자세 때문인지도 모른다.




퀴블러 로스(Kübler-Ross)의 죽음학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죽음을 의식할 때 2가지 모습을 보인다. 첫째 그룹은 어떻게든 죽음을 피하려고 노력하는 집단이다.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임박해서도 마치 죽음을 피할 수 있다는 듯이 행동한다. 어떤 사람은 명의(名醫)를 찾아 수많은 병원을 돌아다니고, 또 어떤 사람은 만병통치약(萬病通治藥)을 찾아 헤매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갑자기 종교에 매달리기도 한다.


둘째 그룹은 죽음을 삶의 또 다른 형태로서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집단이다. 살아생전 유언장과 사전의료의향서 등을 써놓고 자신의 죽음에 미리 대비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 이들은 자신의 죽음에 가족들이 덜 상심하도록 배려하고, 자신이 살아서 쌓아두었던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려고 노력한다. 바로 아름다운 죽음, 웰다잉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웰다잉은 존엄한 죽음, 존엄사(尊嚴死)와도 일맥상통한다.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죽음은 누구도 피하지 못한다. 그래서 옛 현인들은 "죽음이 눈앞에 와 있는 듯 하루하루를 살라"고 말했고, 서양 속담에 죽음을 '우리 어깨 위에 내려와 앉은 새'라고 표현한 글도 있다. 우리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깨닫고, 남은 인생을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아간다면 현재의 삶은 보다 의미 있는 것으로 바뀌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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