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메 상임이사 백경학 "교통사고로 다리 잃은 아내 위해 그가 선택한 의외의 길"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푸르메 상임이사 백경학 "교통사고로 다리 잃은 아내 위해 그가 선택한 의외의 길"

글 : 이필재 / 인물 스토리텔러 2022-09-30



"늘 제가 지금 마주한 사람을 겸손하고 친절하게 대하려 합니다. 신에게 열심히 기도하느니 옆 사람 손을 잡아주는 게 나아요.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죠."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는 “살아 보니 눈앞의 마주한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더라”고 말했다.


푸르메재단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장애인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소통을 통한 사회 통합에도 힘쓴다.


“장애인의 삶을 보듬는 일에 종사하다 보니 사람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습니다. 세상 사람 100명 중 아흔아홉은 좋은 분들이더라고요.” 그는 직업상 남을 돕고 남과 나누려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일이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 부자는 많지 않다고 했다. “조금 도울 형편이 되거나 되레 조금 어려운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결국 남을 생각해 내 것을 나누는 셈이죠.”


푸르메재단은 백 이사의 아내가 가족여행 중 겪은 교통사고와 이 불행을 딛고 일어선 아내의 의지 덕에 2005년 출범했다.


백 이사는 기자 출신이다. CBS·한겨레·동아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기자는 그의 오랜 꿈이었다. 어린 시절 집에서 동아일보를 구독했는데 동아 편집국장을 지낸 원로 언론인 김중배 선생의 칼럼을 애독했다고 한다. 고교 땐 교내신문 기자를 했고 대학 재학 시절에도 학내 계간지 기자를 했다. 글을 통해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싶었다고 한다. 기자 시절 그는 동서독 통일에 대한 연구를 위해 독일 뮌헨대 정치연구소에서 2년여 동안 연수를 했다. 연수를 마치고 떠난 가족여행 길에 스코틀랜드에서 사고로 그의 아내가 한쪽 다리를 잃었다. 영국 의사는 24시간을 넘기기 어려울 거라고 했다. 혼수상태에 있던 100일간 세 번 수술을 받았다. “전담 주치의가 있었고, 3교대 하는 여섯 명의 간호사가 24시간 가족처럼 극진히 보살폈습니다. 우연히 그 병원을 찾은 외국인 교통사고 환자에게 쏟는 의료진의 열정에 감동해 나중에 푸르메재단을 만들고 어린이재활병원을 세웠죠.”


노무현 정부 출범 후 5개 권역별로 성인재활병원이 생겨 어린이재활병원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그의 아내는 8년을 끈 소송 끝에 받은 피해보상금의 절반인 10억 원을 재활병원 건립을 위해 내놓았다. 이 돈이 마중물이 돼 푸르메재단이 설립됐고 2016년 마침내 서울 상암동에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이 들어섰다.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통합형 어린이재활병원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었다. 어린 재활 환자의 부름에 응답하고 이들을 인격체로 대하는 아름다운 병원이다. 시민 1만 명과 넥슨 등 약 500개의 기업이 기부에 참여했다. 그는 신문사를 그만둔 후 수제맥주 가게 옥토버훼스트를 차려 재단 출연금의 일부를 마련했다.


어린이재활병원은 설립 이래 막대한 적자를 내고 있다. “코로나19로 연간 적자가 25억~27억 원에서 50여 억 원으로, 두 배 규모로 늘어났습니다. 저항력이 약한 장애아의 감염을 우려해 부모들이 재활치료를 꺼리기 때문이죠. 감가상각에 대비해 쌓아둔 충당금으로 올해 말까지는 버틸 수 있을 듯하고, 어린이 재활환자도 다시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죠. 사실 적자 때문에 대형 병원들도 어린이재활병원은 만들지 않습니다.”




-통합형 재활병원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원스톱으로 재활의학과·소아과·치과·소아정신과 진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아이가 깨어 있는 동안 내내 매달려 있어야 하는 부모도 아이가 물리·작업·음악 치료 등을 받는 동안 치과 치료나 정신과 상담을 받을 수 있죠."


푸르메는 푸른 산이라는 뜻이다. 정호승 시인은 “대한민국 장애인들이 보통사람처럼 찾아갈 수 있는 산”이라고 읊었다.


백 이사는 독일 연수 시절 유학 중인 한국인 신부·수녀들과 맥줏집에서 자주 어울렸다고 한다. 회사에서 기본급을 받는 데다 장학금을 넉넉히 받은 덕에 맥줏값은 그가 주로 냈다. 신부가 줄 게 없다며 그에게 영세를 줬다. 그의 아내는 가톨릭 모태신앙으로 세례명이 테레사였다. 아내가 영국에서 사경을 헤맬 때 그가 독일의 본당 신부에게 전화를 걸어 사고 소식을 전했다. 신부는 유럽 전역의 한인 성당에 테레사의 회생을 위한 미사를 부탁했다. 수천 명의 가톨릭 한인 공동체가 그녀의 회생을 간구하는 중보의 화살기도를 드렸고 그는 기적적으로 소생했다.


“그 기도가 이뤄졌다고 저는 믿습니다.” 83학번인 그가 대학을 다닌 1980년대 전반은 군부 정권 시절이었다. 학생들은 반정부 시위를 했다고 구속당하는가 하면 강제징집을 당하기도 했다. 같이 입학한 학과동기 남학생 27명 중 그를 포함해 다섯 명만 졸업을 했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추석날도 학교 도서관에 나가 책을 읽었다. 야학에서, 작은 공장에 다니던 또래의 청년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는 장애인 가운데서도 장애 어린이 재활의 확대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장애의 90%가 후천적 장애이고 만 한 살 이전에 생긴다. 그가 민이 이야기를 들려줬다. 푸르메재활센터 시절 엄마와 찾아온 첫 환자 민이는 당시 네 살이었는데 의료진과 눈도 못 맞추고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1년째 치료를 받던 어느 날 민이 엄마가 동네 초등학교 운동장이라며 울면서 전화를 했다.


“우리 민이가 걸어요!” 백 이사가 직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민이가 걷는대!”


직원들은 박수를 치고 환호했다. 서로 부둥켜안고 우는 사람도 있었다.


-머리가 천재적이면서 자폐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변호사가 주인공인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얼마 전 방영돼 화제가 됐습니다. 어떻게 느꼈나요?


"자폐는 일종의 발달 장애인데 그런 천재는 자폐 장애 중 0.001%도 안 될 겁니다. 여섯 살짜리 아이가 두어 시간 동안 여백 없는 그림을 그리는데 부모는 미술에 재능이 있는 거로 알아요. 자폐입니다." 




-인생 2막을 살고 있거나 앞둔 동시대인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나요? 


“사회적으로 장애인이 별 어려움이 없어 행복해 하면 비장애인도 행복해 집니다. 몸으로 하는 장애인을 위한 봉사를 해 보십시오. 저희 치과에 와서 중중 장애인을 안내하고 유니체어에 눕혀 드리는 봉사를 해 보신 분은 자신의 건강과 형편에 만족해 합니다. 봉사를 몸으로 하다 보면 마음도 움직이게 마련이죠. 소액 기부든, 유산 기부든 기부도 해 보세요.” 그는 기부 문화가 뿌리를 내릴 때 우리 사회가 바뀔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부금의 상당 포션을 기부금 단체들이 행정비용으로 쓴다는 인식도 있는데요?


“저희는 10~15%를 비용으로 받습니다. 자료 수집, 대상자 심사, 사후 조사 등에 쓰죠. 기부를 하면서 기부금을 전액 기부에만 쓰라고 하는 기업이 적지 않아요. 그런데 그렇게 할 수도 없거니와 그런 식으로 장애인 지원 사업을 벌이니 당사자가 되판 전동휠체어가 다시 돌아오는 겁니다. 제대로 일하려면 20%는 돼야 합니다.”


-기자생활을 한 것이 지금 하는 일에 도움이 되나요?


“과거 맨땅에 헤딩하듯 취재한 것이 도움이 됐습니다. 우선 낯선 사람 만나는 일을 겁 내지 않아요. 특정 기업에 기부를 요청할 땐 의사결정권자를 움직일 수 있는 인맥을 찾아내 활용하죠.”


-관계 당국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뭔가요?


"기부금에 대한 세액 공제를 확대하고, 저희 푸르메재단 같은 지정기부금 단체에 대한 기부금도 법정기부금단체 수준으로 세액 공제를 늘려야 돼요. 투명하게 운영되는 재활병원에서 치료 받는 어린이 중증장애인의 경우 재활치료에 대한 건강보험 수가를 높여야 합니다." 그가 코로나19 유행 전 아내와 해외여행을 다녔을 때 이야기를 들려줬다. 휠체어로 다닐 수 없는 후진국은 여행 대상국에서 자동으로 배제됐다. 그래서 찾은 선진국은 인프라도 인프라지만 국민들이 장애인에게 양보와 배려를 했다. 비행기를 탈 때 전 승객이 대기한 적도 있다.

“아내에게, 오죽하면 이 나라는 장애인이 무슨 신분 같다고 했어요. 장애인을 위한 인프라도 결국 비장애인들의 마음의 여유에서 나오는 겁니다.”




-버킷리스트가 뭔가요?


“장애 청년들이 일하는 경기도 여주의 농장을 서울에서 더 가까운 용인, 고양으로 옮기는 겁니다. 그럼 출퇴근할 수 있고, 저녁식사를 함께하는 등 저녁 시간을 청년들이 같이 보낼 수도 있어요. 지금은 너무 멀어 마치 농촌의 고립된 섬 같아요. 아내와 세계 100대 미술관, 유서 깊은 도서관, 큰 묘지 등을 찾는 꿈도 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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