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아프신 부모님을 돌보다 지친 당신에게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프롤로그 : 아프신 부모님을 돌보다 지친 당신에게

글 : 이은주 / 요양보호사, 작가, 일본문학번역가 2023-07-24

* Editor's Note : 요양보호사인 이은주 작가의 연재를 시작합니다. 이은주 작가는 돌봄에 대한 에세이 『나는 신들의 요양보호사입니다』, 『오래 울었으니까 힘들 거야』, 『동경인연』을 출간해 화제를 모았으며, 최근에는 어머니 재가 요양보호의 경험을 담은『돌봄의 온도』를 펴냈습니다. 


이은주 작

나는 오랫동안 가족을 돌봤다. 아픈 남동생의 아이들과 아픈 엄마를 돌보느라 바빴다. 자신을 돌보고, 가족을 돌보고, 마침내 타인을 돌보는 과정을 기록함으로써 삶의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동경 인연"과 "오래 울었으니까 힘들 거야"그리고 "는 신들의 요양보호사입니다"는 그렇게 태어났다. 돌봄의 과정을 정리한 돌봄 3부작을 끝으로 나는 돌봄에 대해서는 충분히 썼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이후 나의 삶은 변했다. 특히 '나는 신들의 요양보호사입니다'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집과 일터를 오가는 것 외에는 장거리 여행은 꿈도 못 꾸었던 나에게 왕복 기차표와 함께 강의 의뢰가 들어왔다. 덕분에 수원도 가고, 지리산도 가고, 대전도 갈 수 있었다. 가족돌봄으로 상실의 아픔을 가진 분도 만났고, 시민운동으로 복지의 질을 높이려 노력하는 운동가도 만났으며,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을 아끼고 사랑하며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분들도 만났다.



이은주 작가가 돌봄과 관련해 펴낸 3권의 책


대전 강의가 끝나갈 무렵 나를 포함해서 강의를 듣는 분들 대부분의 눈이 촉촉해져 있었다. 수강을 마치고 저녁을 지으러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분주한 선생님들 가운데 한 분이 가까이 다가와서 얼마 전에 하늘나라에 가신 어머니 간병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어머니와 이별한 아쉬움과 그리움이 해 질 무렵 강의실 안에 가득 찼다.
돌아오는 KTX 안에서 나는 ‘돌보는 사람들과 돌봄 받는 사람들’에 대해서 쓰고 싶어졌다. 멀어져 버린 부부, 멀어져 버린 부모 자식, 멀어져 버린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생각하고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살다 보면 생활에 치여서 관계에 균열이 생기는데 죽음이라는 문턱에 서면 그것이 다 쓸데없는 다툼 같구나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보고 싶어도 더는 볼 수 없는 시간의 유한함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자신을 돌보고, 가족을 돌보고, 주변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 지친 사람들과의 연대를 도모할 필요도 느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집으로 가기 바쁜데 어머니를 잃은 자식만은 내 이야기 들어보라고, 그렇게 열심히 돌보았는데도 하늘나라에 가셔서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며 마음 아픈 이야기를 울면서 들려주었다. 그의 나이 정년은 넘어 보였다. 애도는 충분히 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부모돌봄의 어려움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부모돌봄을 사적 영역으로만 인식하고 방치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부모돌봄으로 인해 경력단절이 생기거나 독신인 자식이 부모돌봄을 홀로 떠안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과정에서 우리 모두 자유로울 수 없다. 부모돌봄을 더 이상 개인의 노력이나 헌신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돌봄으로 받아들여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또한 부모돌봄으로 인해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해서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될 사회적 분위기도 필요하다.

노화 과정에서의 불안으로 정서적 지지가 가장 필요한 노인이 적절한 대처방법을 알지 못해 오히려 가족과 불화하는 경우도 많다. 직장으로 자주 전화해서 같은 말을 반복할 때, 이를 부모의 이상신호로 여기기는 쉽지 않다. 아니 이상하다고만 생각했지 일손을 놓고 바로 대응할 수도 없다. 지나고 보면 그때가 부모돌봄의 골든타임이었을 수도 있다.
평생 책임감으로 가정을 돌보았던 부모와 돌봄을 받았던 자식의 역할이 바뀌는 시점. 인생의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그 순간은 그 방향과 크기를 알지도 못한 채 순식간에 일상이 되어 버린다.

돌봄에도 중독성이 있다. 그러기에 지금 누군가를 돌보고 있다면 오늘 자신을 꼭 안아주라고 말하고 싶다. 당신은 지나치게 애쓰고 있다고도 스스로를 다독여 보자. 돌봄을 지옥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몸도 마음도 모두 쉬어가야 한다. 나 아니면 안 되는 부분이 있다. 그래도 나 아니어도 될 때를 만들어 쉬어야 한다. 그래야 좋은 돌봄을 이어가며 돌봄의 온도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니까 "치매니까 잘 부탁합니다"의 저자가 치매 전문의에게 들었던 말을 똑같이 전하고 싶다. ‘돌봄을 맡길 각오’를 하라고. 간병 전문가에게 맡길 수 있는 일은 맡기고 사랑과 관심을 주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라고.



이은주 작가의 네 번째 돌봄 에세이 "돌봄의 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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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엄마와 나는 치열했다. 때때로 엄마와 나의 위치가 바뀌었다. 엄마는 소녀가 되어 졸랐고, 나는 엄마의 엄마가 되었다.
엄마는 걷지 못하다가, 기력을 되찾았다가, 더 나빠졌다가, 훌륭하게 극복했다가를 반복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어떤 규칙이 있는지 밝히고자 했던 노력을 멈추었다.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의 에너지를 끌어내 쓰기로 했다. 지금도 부모돌봄의 문제를 짊어지고 고립되어가는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 분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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