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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콜달콩하고 싶으면 알콩부터 잘하자

글 : 이근후 /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2021-11-19

우리나라 말에 곱고 재미있는 말들이 많다. 몇 가지 생각나는 것을 말하면 알콩달콩, 새콤달콤, 갈팡질팡, 울퉁불퉁, 오손도손 이런 말들이 있는데 이는 순수한 우리말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참 재미있는 말이다.


두 가지를 대비해 놓은 것이 재미있다. 예를 들면 모두 네 자로 되어있는데 앞의 두 자는 대화자의 말일 것 같고 뒤에 붙은 두 자는 이 대화자의 말에 장단을 맞추어 되돌려 주는 Echo(되돌림) 말로 서로 합해져서 곱고 좋은 말이 된 것이다. 알콩만 있고 달콩이 없다면 이 또한 밋밋한 말이다. 알콩이 있으면 달콩이 달라붙어야 서로 조화를 이루는 단어다. 알콩달콩이 무슨 뜻일까. 




"콩깍지를 벗긴 콩알처럼 고소하게 사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 같습니다. '알콩'은 '콩알'이고, '달콩'은 '알콩'과 유사한 소리를 맞추어 재미나게 만든 말 같네요. '오손도손' 정답게 살아가는 모습이 연상되는 귀여운 말이네요. 오밀조밀하게 잔재미가 있고 즐거운 모양을 나타내는 말" 


누가 SNS에 올려둔 알콩달콩의 해석이다. 짐작건대 알콩달콩은 서로 좋아하는 남녀가 사랑을 나누며 애정 표현을 스스럼없이 하는 것을 말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알콩달콩이 젊은이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연령에 관계없이 알콩을 느끼고 달콩으로 화답할 수 있는 정서적인 사이라면 나이가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좀 우둔했던 내 경험 하나를 이야기해 본다. 우리 부부는 결혼할몇 가지 약속을 한 게 있다.


그 첫째가, 둘이 모두 전문가로서의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각자의 전문성을 서로 존중하기로 하고 그 전문성에는 간섭하지 않기로 약속을 했다. 당시엔 여성 전문가들이 드물었기 때문에 우리 둘은 전문가로서 독립성을 가지면서 가정을 꾸려 보려고 약속한 것이다. 그러니, 일상적인 결혼에서 보는 일상생활은 생략 해야 할 것이 많았다. 


예를 들면 아내가 직장에 나가 일하면서 가정의 일도 일반 주부들이 하는 역할까지 모두 전담시킨다면 어느 쪽도 이룰 수 없으리라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가정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일들은 생략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면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이나, 아니면 우리 둘만이 아는 숨겨진 즐거움을 기념해 보는 그런 일들은 많이 생략하고 살았다. 그러다 보니 각자 자기가 전공하는 전문성에서는 발전했지만 보통 결혼을 통해서 즐길 수 있는 알콩달콩한 경험은 해 보지 못했다. 


경험을 해 보지 못 했다고 해서 마음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결혼을 하였고 결혼하자 4남매를 연년생으로 출산을 하다보니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느라 알콩달콩할 여유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한 일은 4남매를 키우면서 그들의 생일을 챙기거나 칭찬할 일이 있으면 기념일로 정하고 가족이 함께 즐겼다. 그러니 우리 부부가 속마음으로는 알콩달콩하고 싶었지만 결혼 초에 약속한 것도 있고 자녀를 키우면서 자녀들의 기념일을 챙기는 것으로 우리들의 알콩달콩을 대신했다.


교수생활을 하면서 가난에서는 벗어났지만 여유롭게 알콩달콩을 하고 지낼 형편은 못 되었다. 그래서 나는 결혼 초 10년간 함께 고생한 아내에게 미안하여 틈틈 따로 모았던 돈으로 생일 축하 깜짝쇼를 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아내 몰래 제주도행 비행기표도 끊고 2박 3일 체류할 호텔도 예약하고 깜짝쇼에 등장할 소도구도 장만하였다. "여보, 다음 주 일에 제주도에 강연하려 갈 일이있는데 같이 가지 않겠는가"라고 제의 했다. 아내도 직장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불쑥 날짜를 잡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도 이런 요청을 받아 보지 못했던 아내로서는 아마도 즐거웠을 것이다. 


직장에서 2박 3일의 휴가를 허락받고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정말 오랜만의 여행이다. 신혼여행도 경제적 사정으로 천막을 지고 산행을 했으니 나로서는 이 제주도 여행을 신혼여행이라고도 의미를 부여했다. 호텔에 도착하여 아내가 잠깐 산책하러 나간 사이에 생일에 필요한 소도구를 보기 좋게 정리해 놓고 꽃 한 송이를 옆에 감추어 두었다. 산책을 하고 돌아온 아내에게 "생일 축하해, 사랑해" 이 말은 집에서 열 번도 더 연습한 말이지만 꽃 한 송이를 아내에게 안겨 주면서 서툴게 말을 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행동이라서 집에서 열 번도 더 연습한 이 짧은 문장이 서툴게 나온 것이다. 


아내는 응당 기쁜 마음으로 나에게도 고맙다든지, 사랑해요 라든지, 하는 그런 달콩한 소리가 되돌아 오기를 은근히 기대 했지만 그런 말은 없다. 약간은 놀란 표정이지만 시큰둥한 표정이다. 나는 속 마음으로 생일 축하를 깜짝쇼로 놀라게 하고 싶은 내 알콩인데 그런 시큰둥한 표정을 보니까 내가 의아했다. 잠깐의 침묵이 흘렸다. 나는 실망이 컸고 아내는 어리둥절한 표정이 컸다. 이상하다. 생일 축하를 내 형편으로는 과하게 꾸몄는데 돌아오는 것이 달콩이 아니라 시큰둥이니 내가 좀 심통이 났다. "왜 그래, 생일 축하 선물이 적어서 그러나" 아내는 더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내가 제주도에 강의가 있다는 말은 하얀 거짓말이고 오로지 아내의 생일 축하를 위한 준비였었는데 계속 시큰둥한 표정이니 심통이 났다. 내 알콩한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니 심통이 날 수밖에 없다


"자기 아내의 생일이 언제인지도 모르는 당신이니…." 그래서 시큰둥했단다. 둘이 앉아서 생일을 따져보니 다음 주일이다. 내가 참 바보 같은 일을 했다. 생일은 챙겨주지 못하더라도 날짜는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것조차 착각을 했으니 아내의 시큰둥한 표정이 이해가 간다. 내가 아무리 알콩하고 싶어도 그 행동이 적절하지 못하면 달콩이 돌아올 리가 없다. 생각해 보면 잘못은 전적으로 나한테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안하다는 생각보다는 돌아오지 않는 달콩이 원망스러워 심통을 부렸다. 심통이 나서 '두고봐라 내년부터 내가 아내의 생일을 절대로 챙겨주지 않을 것이다'라고 맹세했다. 지금 생각하면 속담에 똥 싼 놈이 성낸다고 하는 말이 맞는다. 아내의 잘못은 아무리 뒤집어씌우려고 해도 씌울 수가 없다. 남들이 봐도 그렇겠지만 그때 나도 내 잘못임을 알고는 있었다. 알고도 그런 심통을 부렸으니 내가 참 미련한 곰이다.


두 사람이 대학에서 정년퇴임을 할 때까지 내가 생일은 챙겨주지 않았다. 그러나 자녀들이 성장하면서 부모들의 생일을 챙겨주었으니 그나마 미안한 생각이 조금은 덜어준다. 내가 하도 무뚝뚝하게 구니 자녀들 눈에도 그것이 불편하게 보였나 보다. 아내의 생일날 함께 모여 식사를 하면서 딸이 선물 하나를 나에게 주었다. "아빠 이 선물 아빠가 샀다고 하고 엄마한테 드리세요, 드리면서 사랑한다고 해요" 웃음이 난다. 나는 그런 요청을 받고 제주도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이만하면 둘이 정년퇴임도 했겠다. 함께 가족아카데미라는 공익 사단법인을 설립하여 사회 교육과 사회봉사를 함께 해나가고 있는 처지인데 제주도에서 겪었던 심통을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내가 생각해도 곰 중의 곰이다


딸의 말처럼 선물을 건네면서 딸이 시키는 대로 그 말을 하려고 했지만 금방 잊어 버렸다. 불쑥 내민 선물에 아내는 이게 무엇이냐고 묻는다. 이때가 기회다. 제주도 가기 위해서 내가 열 번도 더 연습해둔 "생일 선물이야, 사랑해" 이 말을 하고 싶었지만 또 찬스를 놓쳤다. 무엇이나 즉시가 있다. 타이밍이 맞아야 하고자 하는 말이나 행동이 빛날 수가 있는데 그 찬스를 놓치고 보면 나중에 백번을 한들 썰렁하다. 생각으로는 오래도록 이런 참회하는 마음으로 살아왔지만 익숙한 생활 습관이 아니라서 그런지 그 탓을 또 아내에게 돌린다. "내가 알콩 했을 때 아내가 달콩 해 주었으면 이런 일이 없을텐데"하고 남 탓을 했다. 




생각해 보면 마음은 있어도 그 표현하는 재주가 미숙하여 그런 것인데 아직도 아내의 달콩탓을 하고 있으니 철이 없어도 한 참 철이 없는 늙은이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 나이로 봐서 이제부터의 생활이 내 생애의 마지막 생활일 것 같은데 알콩달콩해지고 싶다. 아직도 내가 알콩 하는데 아내가 달콩 해 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일만의 불안은 있지만 생을 마감할 마지막 생활 주기를 만났는데 못 할 것이있겠는가? 평생 체험하지 못한 알콩달콩을 지금이라도 한번 경험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남 탓이 아니다. 내가 변해야 그렇게 살 수가 있다.


에리히 프롬이 했다는 이야기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꼭 나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 "사회적인 추구가 지나쳐서 사랑의 추구가 소홀해서도 안 되고 사랑의 추구가 지나쳐서 사회적인 추구를 소홀히 해서도 안 된다." 라는 말이 있다. 명심하고 살아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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