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에게 최고 선물은 부모의 노후준비
글 : 김동엽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상무 2025-02-17
노후생활비는 얼마나 있어야 할까. 또 어떻게 마련해야 할까. 50·60세대라면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봤을 테다. 평생 월급을 받아 생계를 유지해 왔던 이들이 조만간 ‘월급 없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월급의 빈자리를 메울 대안을 찾는 것은 이들 입장에서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다. 은퇴까지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50·60세대만 노후 걱정을 하는 게 아니다.
요즘은 20·30세대가 부모의 노후준비에 관심을 갖는다고 한다. 자식 된 도리로 당연한 일이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20·30세대는 “딸, 아들 구별 말고 하나 낳아 잘 기르자”는 가족계획 표어가 유행하던 때 태어났고, 당시 합계출산율은 1명대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 20·30세대에게는 부모를 함께 부양할 형제자매가 많지 않은 만큼 은퇴한 부모의 재정상태가 향후 그들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그렇다면 20·30세대는 부모의 노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가 지난해 9월 25~39세 사이 직장인 600명과 55~65세 사이 남녀 중 자녀가 있는 사람 600명을 대상으로 노후준비에 대해 설문을 했다. 편의상 전자를 주니어 세대, 후자를 시니어 세대로 부르기로 하자.
시니어 세대는 적정 노후생활비로 월평균 329만원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반면 주니어 세대는 그들 부모가 노후생활을 하는데 월평균 266만원이면 적정하다고 답했다. 둘 사이에 격차가 63만원이나 된다. 노후준비에 대한 만족 여부도 물었는데, 시니어 세대 중 31.7%만 스스로 노후준비를 잘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에 비해 부모가 노후준비를 잘하고 있다고 답한 주니어세대 비율은 42.8%로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자녀에게 부양받는 것, 가능할까?
베이비부머 세대를 두고 ‘마처세대’라 한다.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라는 뜻이다. 정말 자녀의 부양을 받기 어려울까. 설문에 참여한 주니어 세대 중에서 부모님에게 용돈이나 생활비를 드리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35.3%에 불과했다. 응답자 3명 중 1명이 연평균 400만원을 지원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주니어 세대 응답자 3명 중 2명이 부모에게 아무런 경제적인 지원을 하고 있지 않는 상황인 셈이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부모를 지원할 만큼 소득 수준이 되지 않아서’ 지원이 어렵다고 답한 응답자가 40.5%로 가장 많았다. 이 밖에 ‘부모 지원보다 결혼과 주택 마련이 먼저라고 생각해서’, ‘부모의 자산과 소득이 충분히 많아서’ 지원하지 않고 있다는 응답자 비율도 각각 24.2%와 20.4%를 차지했다.
그렇다면 시니어 세대는 어떨까. 우선 자녀에게 경제 지원을 받는 시니어 세대가 많지 않았다. 설문에 응답한 시니어 세대 중에는 겨우 9.7%만 자녀에게 용돈이나 생활비를 받고 있었고, 지원금액도 연평균 320만원에 불과했다. 향후 자녀에게 경제적 도움을 받을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13.3%만 그럴 의향이 있다고 했다.
시니어 세대가 자녀에게 용돈이나 생활비를 받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시니어 세대 응답자 중 32.8%가 ‘부모 지원도 좋지만 자녀의 결혼과 주택자금 마련이 먼저다’라고 답했다. 이 밖에 ‘부모를 지원할 만큼 자녀의 소득이 많지 않다’거나, ‘부모의 자산과 소득이 충분히 많아서’ 지원을 받지 않는다고 답한 응답자도 각각 28.4%와 20.5%나 됐다.
부모의 노후준비가 자녀 결혼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부모의 노후준비가 자녀의 결혼에 영향을 미칠까. 먼저 시니어 세대에게 본인의 노후준비가 자녀의 결혼 결정에 영향을 미쳤거나 혹은 미칠 것으로 예상하느냐고 물었더니, 응답자 중 9.3%가 ‘매우 그렇다’고 했고, 37.3%는 ‘대체로 그런 편’이라고 했다. 같은 질문을 주니어 세대에게 했더니, 응답자 중 15.7%는 ‘매우 그렇다’, 35.7%는 ‘대체로 그런 편’이라고 답했다. 양쪽 모두 절반 가까운 응답자가 부모의 노후준비가 자녀 결혼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고 있는 셈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결혼 상대의 연봉, 저축, 주거만큼이나 중요한 것으로 부모의 노후준비를 꼽는다고 한다.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부모의 노후준비인 셈이다.
함께 살고 싶은가?
부모와 자녀가 함께 살기는 싫지만 가까이 살고 싶다. 이렇게 프라이버시는 지키면서 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볼 수 있는 근거리 주거 형태를 두고 서구사회에서는 ‘방금 끓인 수프가 식지 않을 거리’라 하고, 박완서 작가는 단편 소설 『촛불 밝힌 식탁』에서 ‘불빛으로 안부를 묻을 수 있는 거리’라고 했다. 하지만 이번 조사에서 현재 자녀와 같이 살지 않은 시니어 세대에게 향후 자녀와 함께 살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84.5%가 그럴 생각이 없다고 했다. 현재 자녀와 함께 사는 시니어 세대 중에도 85.5%가 노후에는 자녀와 같이 살 의향이 없다고 했다. 주니어 세대도 마찬가지다. 현재 부모와 동거하는 주니어 세대 중 71.5%, 동거하지 않는 주니어 세대 중 63.5%가 부모님과 함께 살 의향이 없다고 답했다. 주니어 세대보다 시니어 세대 쪽에서 동거 의향이 없다는 비율이 높았다.
함께 살 생각은 없어도 불빛으로 안부를 묻기를 바라는 응답자는 얼마나 될까. 생각보다 적었다. 현재 부모와 동거하지 않는 주니어 세대 중 28.5%, 동거하는 주니어 세대 중 39.4%가 부모님 댁 근처에 살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반면 자녀와 동거하지 않는 시니어 중 11.3%, 동거하는 시니어 중 19.5%만 자녀 집 근처에 살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근거리 주거 의향도 주니어 세대보다 시니어 세대가 낮았다.
아직 부모와 자식 간에 돈 얘기하는 것을 꺼리는 가족이 많은데, 앞으로는 부모와 자식 간에 터놓고 얘기할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명절이나 연휴가 은퇴를 앞둔 부모는 자녀에게 노후준비 상황과 계획에 관해 얘기하고, 자녀들도 부모의 노후 소득원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김동엽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상무
다양한 고객 상담과 교육 경험을 가지고 있는 은퇴 교육 분야의 전문가. 주요 저서로는 『스마트 에이징』, 『인생 100세 시대의 투자 경제학(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