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기에 이사갈 때 주의할 점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노년기에 이사갈 때 주의할 점

글 : 송양민 / 가천대학교 명예교수 2019-09-06

은퇴자들은 대체로 노년기에 이사를 하는 것을 꺼린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게 부담스럽고, 경제력 부족으로 좀 더 좋은 집을 구입하는 것도 여의치 않은 탓이다. 이런 점 때문에 은퇴자가 멀리 이사를 가야 하는 경우라고 한다면, 몸이 많이 불편해져 지속적인 의료서비스 또는 요양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대부분일 것으로 추정된다.

늘그막에 이사를 하는 사람들의 경우엔 같은 행정구역(예를 들어 부산시, 수원시, 속초시, 목포시) 내에서 생활의 편의를 위해 좀 더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가는 게 대부분이다. 평수가 작은 집은 큰 집에 비해 생활비를 절약하는 장점이 있고, 청소 등의 가사노동 부담도 줄일 수 있어 은퇴자들이 선호하는 주거방식이기도 하다. 실제로 서울에 거주하는 은퇴자가 살던 아파트를 팔고 수도권 위성도시나 지방도시로 이주하는 경우엔 3억~10억 원의 큰돈을 얻을 수 있다. 거주지를 바꾸는 방법으로 노후생활자금을 어느 정도 마련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 같은 돈 문제를 떠나서도 노년기에 완전히 새로운 장소에서 휴식을 취하며 새로운 인생을 설계한다는 생각은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부동산투자 목적으로, 또는 아이들 교육 목적으로 20년, 30년 살던 곳을 떠나 좀 더 재미있게 살 수 있는 곳으로 이사 가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조건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노년기의 주거 이동’이라는 말을 들으면 으레 시골에 전원주택을 지어 이사 가는 것을 생각한다. 그러나 발품을 열심히 팔고, 여기에 약간의 행운만 곁들여지면 가까운 곳에서도 얼마든지 살기 좋은 멋진 장소를 발견할 수 있다.

노년기 이사의 실패 가능성을 줄이려면 꼭 따져봐야 할 포인트가 있다. 먼저, 지금 자기에게 무엇이 정말 필요한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지역의 어떤 점이 부족하고 잘못되었다고 느끼는지 평가해 보고, 새로운 선택에서는 어떤 차이점을 기대하고 있는지도 정확하게 파악해 보자. 결혼시킨 자식들과 함께 살 계획이든지, 가까운 친구가 사는 곳으로 이사를 갈 생각이든지 간에 마찬가지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이 느끼는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잘 생각해보고, 이것들의 우선 순위표를 만들어볼 필요가 있다. 자녀와 손주들과 함께 지내는 즐거움, 친구와 취미생활을 함께하는 즐거움, 헬스클럽에 가서 운동을 하는 즐거움, 음악회 같은 문화행사를 즐길 수 있는 편의성,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 도서관의 접근성, 몸이 아플 때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의료시설 등등. 자기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노년의 즐거움과 욕구(needs)를 파악했다면 그러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곳으로 이사 가는 것은 당연한 순서이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에 맞는 괜찮은 장소를 찾아냈다 하더라도 사회적·문화적 시설들이 기대했던 것보다 형편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 수도 있다. 지역공동체에 함께 거주하는 사람들이 예의가 없거나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에서 자신과 큰 차이가 나는 것을 뒤늦게 깨달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은퇴자들이 공동생활을 하는 실버타운에 입주했다가 다시 이사 나온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돈 자랑과 자녀 자랑을 하는 노인들이 너무 싫어 그만두었다는 케이스가 많다. 참으로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노년기에 살 곳을 잘 고르는 최상의 방법은 현장에서 일정기간 동안 직접 확인해보는 것이다. 몇 개월 또는 몇 년을 임대해서 미리 살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경험담을 귀담아듣자. 특히 나이가 들어 귀농이나 귀촌을 하는 경우엔, 앞서 이사 온 사람들의 경험담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한다. 거주지를 옮기기 전에, 더 많이 알면 알수록 현명한 선택을 할 가능성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노년기에 이사를 계획하는 경우, 배우자의 동의를 얻는 것은 필수다. 노년기에 추구하는 ‘인생의 로망’에 있어서 여성들의 생각은 남자와는 아주 다르다. 여성들은 60대가 넘으면 새로운 것보다는 안정적인 것을 더 좋아하고, 자연 친화적인 주거공간보다는 친구 네트워크를 유지할 수 있는 주거공간을 더 좋아한다. 노년기에 부부가 불화를 겪으면 ‘황혼이혼’으로 가기 쉽고, 황혼이혼은 ‘인생의 비극’이라는 점에서 노년기 이사 문제는 꼭 부부간의 대화와 동의가 선결 조건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는 평범한 사실을 명심하자. 사람은 죽기 전에 상당 기간 병석에 누워 지내야 하는 시기를 겪는다. 우리가 ‘요양기’라고 부르는 기간이다. 짧게는 1~2년, 길게는 5~10년씩 겪는다. 새로 이사 간 곳에서 10년 이상 지낼 작정이라면 노화(aging)에 따라 계속 변화하는 자신의 건강상태에 대해서도 마음을 써둬야 한다. 언젠가는 의료기관의 도움을 받아야 되고, 치매 같은 노인질환에 걸리는 경우에는 장차 주위와의 소통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꼭 고려해야 한다.

새로운 곳에 이사를 가면 자신의 나쁜 습관들을 빨리 고치고, 새로운 친구들과 잘 지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 모두가 성공적인 이사에 필요한 절차이다. 새 친구들을 사귀려면 먼저 겸손해지고, 도움을 받기보다는 남을 더 도와주어야 한다. 자신의 화려한 과거 경력을 미루어 보건대 남들로부터 당연히 존경받게 될 것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내 자식은 똑똑하고 모두 잘 산다”, “나는 대기업 임원을 지냈다”, “그전에 살았던 곳은 서울 부자동네였다”라는 식의 말은 누구에게도 꺼내지 않는 편이 현명하다. 가장 효과적인 기술은 먼저 베푸는 것이다. 무조건 다른 사람들을 도우려고 노력한다면 토박이 선임들일지라도 결국은 우리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친구가 된다는 뜻이다.

흔히 노년기의 이사는 실패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신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평생의 소망과 새 지역공동체(community)에 대해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사를 계획한다면 노년기의 이사는 또 하나의 인생 도전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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