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버느라 잊고 있었던 돈 버는 이유
글 : 버들치 / 작가 2024-03-11
미장하는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인천 검단지구에서 일하고 있단다. 요즘은 드문드문 3~4일 일거리밖에 없다고 한다. 예전엔 한 달에 20~25일 했는데 요즘은 한 달에 15일 안팎으로 줄었다고 한다. 벌써 1년 이상이 이런 추세다. 문제는 건설 경기가 앞으로 더 좋아지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다. 일하는 날 수도 줄었지만 품값도 줄었다. 일거리가 줄어들어 미장이 남아도니 품값이 박한 건 당연한 일이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다. 줄어든 품값을 만회하기 위해 하루거리 일도 마다하지 않고 닥치는대로 한다.
더 큰 문제는 돈벌이가 시원치 않으니 인간관계도 시원치 않다고 한다. 돈과 불화는 항상 같이 어울려 다닌다. 팀원들 간에 불화로 도통 일할 맛이 안 난다고 한다. 10년 이상을 같이 일한 사이인데도 이 모양이다. 상대방이 바라는 수준과 내가 원하는 수준이 점점 커지다 보니 갈등이 최고로 치닫는다. 같이 일하는 기계 팀하고도 관계가 틀어진 모양이다. 일거리도 줄고, 일당도 줄고, 팀워크도 무너지고 삼중고다. 사람은 힘들거나 쪼들리면 신경이 더 예민해진다.
친구도 나도 기를 쓰고 돈을 벌려고 안간힘을 쓴다. 돈을 버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돈을 버는 이유가 돈을 쓰기 위함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은 죽을 때 쓰지 못한 많은 돈을 예금 잔고로 남기고 죽는다. 즉, 필요 이상으로 많은 돈을 벌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는 중산층 이상의 경우다. 사람들은 필요보다 더 많은 돈을 원하고 모은다. 돈을 쓰기 위한 번다는 명제는 이제는 참이 아니다.
돈(화폐)은 필요한 물품을 사기 위한 교환 수단만이 아니다. 현재는 이보다는 가치저장 수단이 훨씬 더 커져버린 것 같다. 투자를 위한 거래, 저축과 빚을 내는 거래 등이 더 빈번하고 금액도 압도적으로 크다. 그렇다. 돈은 교환, 회계단위, 가치저장 수단 말고 가능성을 나타내는 지표로서의 역할이 더 큰 것 같다. 돈이 많으면 그만큼 가능성이 커지니까. 멋진 차, 강남 아파트, 우아한 서비스와 같은 것을 가지고 누릴 가능성 말이다. 가능성은 곧 자유다. 과학의 역사가 중력을 벗어나기 위한 것이었다면 인간의 역사는 자유를 지키고 확장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자유를 지키고 확장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노력하지만 정작 그 자유를 누리지는 못한다. 역설적이게도 돈 버느라 돈을 쓸 자유가 없다. 일단 돈을 먼저 벌고 그 다음에 하지라고 생각하지만 정해 놓지 않은 시간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돈이 가능성과 자유의 수단이든 아니면 허영과 속물근성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든 어쨌든 돈은 중요하다. 왜? 우리의 삶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니까. 사람들은 돈에 대한 이중성을 숨기고 산다. 속으론 돈을 갈망하면서도 겉으론 돈을 경멸한다. 돈독에 오르면 보이는 게 없다고 하지만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속담에서 보듯이 돈은 사람을 좀 더 너그럽게 한다.
자유롭기 위함이든 아니면 뻐기고 유세하기 위함이든 돈을 벌지만 사람들은 그 필요한 돈의 양을 구체적으로 계량화하지 않는다. 그냥 막연히 다다익선이라고 한다. 10억이 목표였던 사람도 10억을 모으면 목표가 20억으로 바뀌고 그 20억은 다시 40억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다. 돈이 위험한 건 욕망이기 때문이다. 욕망은 맹목적이고 끝이 없다. 그래서 위태롭다. 기꺼이 목숨을 거니까.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해 구체적으로 답변할 수 없다면 돈의 노예가 아닐까?
※ 여섯 가지 질문에 멋진 대답을 내놓고 싶었지만 돈에 대한 나의 철학이 빈곤하여 겨우 위와 같은 형이하학적인 답밖에 못 달았다. 난 아직도 멀었다.
사람들이 돈에 목마른 것은 속물근성(경쟁과 비교) 때문이다. 이런 속물근성은 특정 집단과 사회에 소속돼 있을 때 극대화된다. 경쟁과 비교를 소모적인 것이라고 탓하고 싶지 않다. 그래야 그 집단과 사회가 발전할 수 있을 테니까. 나이를 먹으면 좋은 점도 있다. 즉, 집단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나오고 또 사회에서의 결속력도 느슨해진다. 비교와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소외감 보다는 해방감이 더 크다. 인생이 그렇다. 잃는 게 있으면 반대로 얻는게 있다. 다만 찾지 않기 때문에 모를 뿐이다.
버들치 작가
증권회사에서 33년 근무 후 퇴직하여 현재 기능인으로 인생 2 막을 살고 있다. 1965년에 태어나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이 세 가지 운으로 위태롭게 살아왔다. 첫 번째 운은 짧은 학력으로 증권회사에 입사한 것이고, 두 번째 운은 33년간 한 회사를 다닌 것이고, 세 번째 운은 퇴직 후에도 소일거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퇴직을 앞두고 주경야독으로 기술을 배웠으며 그 경험에 대해 네이버 '부동산 스터디' 카페에서 버들치라는 닉네임으로 글을 썼다. 그 결과물로 '버들치의 인생2막'(2023)이라는 책을 발간 했다. 단순하고 평온한 삶을 추구해 왔으며 앞으로 그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