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글 : 한혜경 / 작가, 前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2023-02-10
어떤 모임에서 만난 A씨는 나이보다 한참 젊어 보이는 외모와 화려한 옷차림 때문에 눈에 확 띠는 타입의 사람이었다. 그는 유난히 목소리가 크고 자기주장이 강하고 항상 대화의 주도권을 잡고 싶어했다. 원래 그런 사람인가보다, 무심코 넘어갔는데, 어느 날 우연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의 청력 기능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그게 정확히 언제였나요?”라는 식의 질문을 받으면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못들은 척하거나 얼버무리곤 또다시 자기 이야기로 돌아가는 일이 몇 번 반복되면서 확실히 알아챌 수 있었다. 자존심 강한 그가 그 사실을 밝히기를 꺼린다는 것, 그래서 남들이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자신이 먼저 이야기를 시작하고 주도하는, 일종의 전략적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글쎄, A씨의 바람대로 다른 사람들이 모두 이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안타까웠다. 만약에 A씨가 이렇게 고백했다면 어땠을까?
“사실은 내 청력에 문제가 있어서 잘 들을 수가 없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 그렇군요 라는 반응을 보이며, 그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평소보다 조금 더 큰 소리로 천천히 말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최소한 그가 왜 그렇게 유난히 큰 목소리로 자기 이야기만 하는지에 대해 훨씬 더 너그러운 마음을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요즘 내 주변에도 부쩍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몇 달 전에 만났을 때만 해도 엄청 활기찬 모습을 보였던 친구는 무릎 관절 수술을 받은 후에 외출도 하지 못하고 있고, 지인 한 명은 우울감이 심해져서 모임에 잘 나오지 않으며, 또 다른 지인은 인지능력이 급격히 떨어져서 고민하던 차에 경증 치매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남의 일 같지 않다. 조만간 나도 겪을 문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크게 보면 모두 노화와 관련된 문제이기도 해서 노인복지를 공부한 사람으로서 이럴 때 어떻게 하면 작게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어떤 돌봄서비스를 받도록 하면 좋을까,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서 이런저런 자료나 정보도 찾아보고, 직접 만나서 이야기도 나눠보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하지만 뭔가 도움을 주려는 나의 선의는 자주 난관에 부딪히는 중이다. 도움이나 돌봄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어찌나 방어적인지 자신의 취약한 모습을 감추느라 전전긍긍하며, 아예 만남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어서 도움의 ‘도’자도 꺼내기 힘든 경우가 의외로 많은 것이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몇 가지 짚이는 게 있었다. 우선 많이 배우고, 가진 것도 많아서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높은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이들이 지나칠 정도로 독립적이고 자존심도 세다는 점이다. 오랜 세월 동안 자기 일은 스스로 해결해야 하고, 남의 도움이나 돌봄을 받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는 신념을 갖고 살아왔고, 나이 들어도 가족이나 타인의 도움을 받지 않고 최대한 독립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듯했다.
그러다 보니 불가피하게 돌봄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독립성과 자존심을 내세우기 일쑤다. 친구나 지인이 자신의 변화나 장애, 질병에 대해 눈치챌까 두려워서 모임에도 나가지 않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너무나 오랫동안 ‘경쟁’과 ‘생존’의 전쟁터에서 자신의 취약성을 드러내면 손해라는 뼈아픈 경험을 익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서글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는 수명이 점점 길어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렇게 오래 살다보면 기능이 저하되고 질병을 앓으며, 우울한 기분을 안고 살아가는 그런 시기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즉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야만 하는 때가 오는 것이다.
이 문제를 어찌할 것인가? 나라면, 돌봄을 받아야 할 때 어떻게 할까,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이런 고민을 하던 차에 마침, 젊었을 때 이탈리아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는 지인 J씨의 경험담을 듣고 중요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유학 초기에 서민 아파트에서 살았을 때, 그 집에 먼저 살던 한국인 유학생 부부로부터 같은 층에 사는 갈무찌 할머니께 매일 빵을 사다드렸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받았다고 한다. 갈무찌 할머니는 70대의 혼자 사는 분이었는데, 허리를 다쳐서 다리가 불편했고 외출을 하기 힘든 상태였다. 할머니가 아침마다 1000리라 지폐를 J씨의 집 현관에 묶어놓으면 12시가 되기 전에 1층에 있는 빵집에서 작은 바게트 빵 두 개를 사다 드렸다고 한다.
빵을 사서 할머니 집 벨을 누르면 저 안쪽에서부터 J씨의 이름을 정답게 부르며 나오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고, 잠깐 인사를 나누며 과자며 사탕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어느 날 J씨가 할머니를 따라 집안까지 들어가 보니 전날 사다 드린 빵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매일 빵 살 돈을 묶어놓는 걸 보면서 그는 할머니가 빵도 빵이지만 매일 누군가가 자신을 찾아주는 걸 기다리고 있구나, 생각했다는 얘기였다.
J씨의 이야기를 듣고 나도 언젠가 혼자 살면서 아프거나 장애가 생긴다면 갈무찌 할머니와 같은 지혜를 발휘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생각해보라. 빵을 매개로 옆집에 사는 젊은이와 매일 만나 말 한마디라도 나눌 수 있으며, 그러다 보면 혹시 위급한 상황이 생겨도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무엇보다 고독사의 가능성도 줄어들지 않겠는가.
그동안 나도 독립적인 삶의 태도를 높이 평가해왔다. 그래야 젊음을 오래 유지하고 노화를 늦추는데도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엔 독립성도 중요하지만, “내가 요즘 이러이러해서 힘들어요.”라고 ‘커밍아웃’하는 것, “그러니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라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훨씬 더 건강하고 용기있는 삶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돌봄을 받는 것은 낯부끄럽거나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다. 돌봄을 받는 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며, 내가 가치있고 존엄한 인간으로 살아나가기 위해 꼭 필요한 하나의 방법이다. 해서 올해부터는 우선 나 자신에게 좀 더 관대해지고 친절해져야겠다고 결심해본다.
한혜경 작가, 前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책임 연구원과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나는 매일 은퇴를 꿈꾼다> <남자가 은퇴할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의 저서를 통해 베이비붐 세대 은퇴자가 겪는 다양한 이야기를 써온 작가이기도 하다 최근의 저서로는 본 사이트에 연재하고 있는 ‘나의 은퇴일기’ 내용을 토대로 한 <은퇴의 맛>, 저자가 진행하고 있는 ‘자기 역사 쓰기 프로그램’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기꺼이 오십, 나를 다시 배워야 할 시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