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에 꽃길 걸으려면, 다리부터 튼튼해야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노후에 꽃길 걸으려면, 다리부터 튼튼해야

글 : 한혜경 / 작가, 前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2023-03-06


몇 년 전의 일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나이 들면 다리가 제일 중요하다.”라면서 자기 어머니의 예까지 들어가며 ‘다리 제일론(?)’을 주장하였다. 그렇게 건강하고 활력에 넘치던 어머니였는데, 그래서 100세까지 사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리를 다치시더니 외출을 못하게 되면서 엄청 우울해하고 급기야 최근에는 치매 증세까지 보인다는 것이었다. 친구는 나이 든 후에 다리에 문제가 생기는 건 수명에도 영향을 미칠 정도로 치명적이므로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다리를 잘 관리해야 한다는 점을 구구절절이 강조했다.    


평소에도 워낙 통찰력과 설득력이 뛰어난 친구의 말인지라 우리는 모두 “그래. 맞아”라며 연신 맞장구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똑똑한 친구의 말이라고 해도 ‘다리가 제일 중요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글쎄, 정말 그럴까? 싶었고 백퍼센트 확신이 가지 않았다. 생각해 보라. 통계청이 매년 발표하는 10대 사망원인에는 암, 심장질환, 폐렴, 뇌혈관질환, 당뇨병 같은 질병이 들어있을 뿐 다리와 직접 관련된 병명은 하나도 없지 않나? 그런데도 다리 아픈 게 수명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치명적이라고? 그보다는 암이나 만성질환 같은 질병을 예방하고 관리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하지 않을까? 고개를 갸우뚱했었다.




그런데 세월이 갈수록 친구의 말이 맞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다리의 중요성은 의학적으로도 증명되고 있다. 노년내과 임상의사인 정희원 교수도 (<지속적인 나이듦>이라는 책에서) 다리 근육의 성능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즉 다리 근육의 성능은 노인의 노쇠 정도를 가장 쉽게 평가할 수 있는 지표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폐렴에 걸린 환자가 있다고 치자. 그가 젊은이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1주일 정도 침대에 누워 있다가 금방 다시 일어나 이전의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노인의 경우에는 다리 근력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치료 후의 예후가 크게 달라진다고 한다. 같은 75세의 노인이라도 다리 근력을 보유하고 있다면 질병의 완치와 함께 곧바로 일상 활동이 가능해지지만, 다리 근력이 없는 사람은 폐렴 자체는 잘 치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날 힘이 없어서 움직이기가 힘들어지고 옷입기, 세수하기, 화장실 사용하기 같은 기본적인 일상생활에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여생을 보내야 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안타깝게도 기대여명(장래 생존할 것으로 기대되는 수명) 자체가 짧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정희원 교수는 다리 근력과 보행 기능, 보행 속도가 노인의 기대여명을 예측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다리는 노년기의 행복감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노년학자들은 이동 능력을 갖춘 사람일수록 행복하다고 느끼지만 이동 능력을 상실한 경우에는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충분히 수긍이 가는 말이다. 이동 능력이 있어야 바깥으로 나가 누군가를 만날 수 있으니까. 젊었을 때의 이동능력이란 자동차나 운전 능력 같은 걸 의미할 수도 있지만, 나이 든 후의 이동 능력에는 튼튼한 다리가 기본이다. 아무리 디지털 시대라지만 내 다리를 움직여서 외출하고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는 데서 오는 행복감을 따를 수는 없을 것이다. 


노인의 삶의 질에 관한 대부분의 연구들에서 ‘여자 노인의 삶의 질이 남자 노인에 비해 훨씬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는 결과가 나오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처음에는 여자 노인의 삶의 질이 남자보다 낮다는 연구 결과가 이해되지 않았다. 뭐 잘못된 것 아닐까? 싶었다. 평소에 여자 어르신들이 일상생활이나 가족관계, 친구 관계에서 더 잘 적응하고 더 행복해 보인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여자가 남자들보다 더 오래 사는 거라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러 연구 결과들에 의하면 여자 노인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역시 ‘다리’에 있었다. 특히 신경통과 관절염, 골다공증처럼 비록 생명을 직접 위협하지는 않지만 삶을 재미없고 짜증나게 하는 질병들 때문에 삶의 질이 낮아지는 것이다. 그래서 여자들은 남자에 비해 6년 정도 평균 수명이 길지만(2021년 현재 남 80.6세, 여 86.6세), 아픈 다리나 허리를 가지고 오래 사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여자들일수록 더욱 더 건강한 다리를 가지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세상은 넓고 할 일과 볼거리도 많다.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싶다면 바깥 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관계’를 소중히 가꿔야 하고, 그러려면 우선 다리가 튼튼해야 한다. 도쿄 건강장수의료센터의 김헌경 연구부장의 말마따나 행복한 노년기를 보내기 위해서는 자기 발로 걸으며 마음껏 생활할 수 있는 근력이 필수적이다.


해서 사회적으로도 ‘걷기 프로그램’이 많아지고, 걸을 수 있는 공간도 더 많아졌으면 한다. 전에 프랑스 파리의 한 구청을 방문했을 때, ‘시니어를 위한 걷기 프로그램’이 있는 걸 발견하곤 ‘아 그래, 바로 저거야!’라고 감탄한 적이 있다. 구청에 비치된 안내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시니어 여러분! 걷고 싶은 분은 하루에 두 번,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 OO공원 정문으로 나오세요. 

우리 함께 즐겁게 걸어보아요.”


물론 요즘에는 걷기만으로 다리의 근육이 만들어지기는 힘들다는 연구 결과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우리보다 고령화가 빨랐던 일본에서는 건강수명을 늘리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통해 ‘노년의 삶은 연금과 근력이 결정한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있다고 한다. 건강 나이를 10년 앞당기는 근력운동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지자체, 보건소, 요양병원 등에서 활용하고 있다고 하니 부러울 따름이다.


다리에 관한 투자를 아끼지 말자. 매일 걷고, 근력운동도 하고, 가능하면 계단을 오르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자. 좋은 옷이나 예쁜 꽃보다 다리가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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