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의 왕, CATL 쩡위친(曾毓)의 성공 신화
글 : 샹제(商界) / 중국 경제지 2023-09-25
많은 사람이 쩡위친의 포브스 순위, 개인 자산 등에 주목한다. 그러나 결과보다 성공 과정이 중요한 법이다. 성공은 사업, 재능, 운, 노력이 함께 만들어낸다. 같은 환경에 놓여 있을지라도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빈민가 출신의 쩡위친이 ‘CATL의 왕’으로 조 단위 산업을 좌지우지하며 글로벌 배터리 시장을 장악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현재 그가 만들어낸 결과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쩡위친은 1985년 닝더이중(寧德一中)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상하이교통대학교(上海交通大學) 선박학과에 입학해 중국과학원 물리학연구소 박사로 졸업했다. 하지만 그가 이룬 진정한성취는 그의 학문과는 거리가 멀다. 전문가들도 어쩌지 못했던 프레온 세정제 문제와 20곳이 넘는 전문기관과 회사에서 고민만 했던 배터리 팽창 문제의 해결이야말로 진정한 그의 업적이다.
왕의 태동
닝더(寧德)는 푸젠성의 가난한 지역이다. 쩡위친의 고향인 페이롼진 란커우촌은 닝더의 빈민 지역에 속했다. 빈민가에서 자라 공부밖에 몰랐던 그에게 상하이교통대학이라는 사회는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다양한 분야에서 실력을 쌓은 동기, 선후배와의 만남은 그가 개혁개방의 물결로 뛰어드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상하이교통대학에서 선박공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진정한 인생 항해를 시작했다. 첫 직장으로 국유기업에 입사했지만 3개월만에 그만두고 중국 남부의 둥관(東莞) 지역에 있는 일본계 기업 신커츠덴창(新科磁電廠)으로 이직했다. 당시 개혁의 바람이 많은 이들을 창업으로 이끌었지만 그는 안정적으로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이직을 택한 것이다.
하드디스크 헤드를 만드는 신커츠덴창에서 쩡위친은 기술 엔지니어였다. 순탄하게 시간이 흘러갔지만 90년대 초, 오존층을 파괴하는 프레온 문제가 세계적 이슈로 대두되면서 인생의 시험이 시작됐다. 주요 고객 중 하나였던 IBM이 신커츠덴창에 하드디스크 헤드 청소에 쓰이는 프레온 세정제 사용 중단을 요구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제품에 ‘오존층을 파괴하는 세정제를 사용했습니다’라는 특수 라벨을 부착해야 했다. 기업의 사회적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치는 일이었다. 원래 이 문제는 다른 부서 소관이었다. 그러나 특수 라벨을 부착하면 회사 제품에 영향을 준다고 판단한 그는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섰다. 그 결과 프레온이 아닌 탈이온수를 이용하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하드디스크 헤드 청소 시 탈이온수를 사용하도록 지시했다. 이 판단이 쩡위친 성공 신화의 시작이었다. 그는 곧 해당 부서의 관리자로 승진했고, 중국인으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직까지 오를 수 있었다.
3명의 귀인을 만나다
쩡위친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세 명의 멘토가 있다. 그중 한 명인 장위제는 1994년 신커츠덴창에서 만난 상사였다. 장위제는 미국 노트르담(Notre-Dame)대학교에서 전기공학 박사 학위를 받고 포드와 IBM에서 근무한 인재로, 신커츠덴창에서 총괄을 맡아 대표로 승진한 인물이다. 장위제는 25살이나 어린 쩡위친의 도전 정신을 눈여겨보고, 자신의 대학 동창인 천탕화(陈棠华)를 소개했다. 천탕화는 쩡위친의 두 번째 멘토이다. 장위제가 자유분방하다면 천탕화는 꼼꼼하고 부지런했다. 장위제는 천탕화를 자신에게 엄격하고 시스템을 구축할 줄 아는 사람으로, 본인은 자유로운 삶을 좋아하고 시스템을 파괴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었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쩡위친은 각기 다른 풍부한 지식과 인맥을 가진 두 멘토 사이를 오가며 끊임없이 자신의 에너지를 축적했다.
천탕화 역시 쩡위친을 높이 평가했다. 업무적으로 쩡위친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것 외에도 미국행을 주선하고, 쩡위친이 화남이공대학교(華南理工大學)에서 석사 학위를 받도록 지원해 주었다. 그리고 1999년 31세에 불과했던 쩡위친을 총괄직으로 승진시켜 신커츠덴창 역사상 최연소이자, 최초의 중국 본토 출신 총괄로 만들었다. 훗날 쩡위친이 화남이공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도록 밀어준 것은 CATL 발전사에서 중요한 변곡점이 되었다.
세 번째 멘토는 천탕화의 소개로 알게 된 천리취안(陳立泉)이다. 1999년 천리취안은 중국과학원 물리연구소의 리튬배터리 소재 분야 연구원이었다. 천탕화는 ATL 설립 세미나에 천리취안을 초청했고 그 인연으로 천리취안은 ATL에서 배터리 테스트를 할 때 중요한 기술 개선 솔루션을 제공했다. 천탕화는 천리취안에게 ATL을 위해 박사를 양성해 달라고 요청하며 두 명의 후보자를 추천했다. 천리취안이 일하고 있던 중국과학원 물리연구소는 실무형 박사를 채용한 전례가 없었다. 천탕화의 강력한 요청에 중국과학원 물리연구소는 테스트를 보고 결정하겠다고 했다. 두 명의 후보자 중 기회를 놓친 적 없던 쩡위친만 시험에 합격했다.
ATL창업, 성공과 실패
1999년에 천탕화, 장위제, 쩡위친은 신커츠덴창의 계열사인 SAE의 공동 설립자인 량샤오캉(樑少康)과 함께 암페렉스 테크놀로지(Amperex Technolog yLimited, 이하 ATL)를 설립했다. 홍콩에 본사를 두고 있지만, 실제 생산은 배터리 사업을 전문으로 하는 둥관 바이마(白馬)에서 이루어졌다. 먼저 이들은 회사 콘셉트를 정한 다음 인력을 구성하고 기술과 제품을 준비했다. 량샤오캉이 회사 콘셉트와 자금을, 배터리 기술을 모르는 천탕화, 장위제, 쩡위친은 회사 설립과 배터리 제품 생산을 맡았다.
부족한 지식을 보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술이든 사람이든 사오는 것이다. ATL은기술을 사는 것부터 시작했다. 당시 시장에서 가장 앞선 기술은 미국 벨 연구소(Bell Lab)가 기술 특허를 가진 리튬 폴리머 배터리(lithium polymerbattery)였다. 이들은 특허 구매 비용으로 ATL의 설립 자금 40%에 해당하는 1백만 달러를 지불했다. 그러나 막대한 비용을 들여 구매한 특허에 중대한 결함이 있었다. 이 기술로 만든 배터리를 몇 차례 충전하고 방전하면, 부풀어 오르는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벨 연구소에 연락했지만 해결할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이미 이 특허를 구입한 전 세계의 20곳이 넘는 유명 회사들도 배터리 팽창 문제에 봉착해 있는 상황이었다. 다른 회사는 돈만 날리면 그만이었지만, 스타트업인 ALT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그대로 끝이었다.
화학박사 출신인 천탕화는 소재 과학에, 전기공학 박사 출신인 장위제는 전력 시스템에 정통했지만, 선박공학이 전공인 쩡위친은 팀을 한데 뭉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배터리 문제에 문외한이었던 이 세 명은 포기하지 않고 ATL 공장의 비좁은 계단에서 계속 실험을 진행했다. 100페이지가 넘는 전해액 매뉴얼 책을 뒤져가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해결책을 찾고자 했다. 그러다 폴리머 리튬 배터리는 끓는점이 85℃인 반면, 벨 연구소에서 구입한 기술에 사용되는 일부 물질의 끓는점은 93℃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배터리 팽창 문제가 이런 끓는점이 높은 물질에서 발생했다는 걸 알아낸 것이다. 해당 특허를 사간 20여개 기업 중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원인을 찾아낸 순간이었다
2002년 배터리 팽창 문제를 해결한 지 2년 반 만에 ATL은 수익을 내기 시작했고, 제품은 세계 최고 수준이 되었다. 빠른 발전을 위해 이들은 지분을 대폭 양도하고 회사의 소액주주가 되어, H&Q아시아 퍼시픽, 칼라일그룹, 영국 3i그룹 등으로부터 3,700만 달러가 넘는 벤처 투자를 유치했다. 또 2004년에는 애플의 공급망에 들어가 1,800만 개의 배터리를 공급했다.
그러나 성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ATL이 앞서 개발한 기술을 다른 회사도 점차 개발하기 시작했다. 기존 브랜드 배터리 업체에 비해 ATL은 규모 면에서 이점이 없었으며, 경쟁력을 잃어갔다. 2005년 ATL의 주요 투자자였던 칼라일 캐피털이 투자 철회를 한 데 이어, 다른 투자자도 투자를 철회했다. 천탕화, 쩡위친 등은 지분을 되살 돈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인수할 다른 투자자를 찾아야 했다. 결국 신커츠덴창과 SAE의 모회사인 도쿄전기화학(이하 TDK)이 1억 달러에 지분을 샀다. 쩡위친은 물론 천탕화, 장위제 역시 경영권을 잃었다.
고향으로 돌아가 재도약하다
TDK에 인수된 ATL은 2007년 다시 도약할 기회를 맞는다. 휴대폰 산업이 호황기를 맞으면서 삼성, OPPO, 화웨이(華爲) 등이 배터리를 대량으로 구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둥관 지역에 있었던 두 공장만으로는 물량 공급이 부족했기에 규모 확장이 시급했다. 쩡위친은 자신의 고향인 닝더시를 공장 부지로 낙점하고 계획을 추진했다. 이사회와 일본 본사는 낙후되어 인프라가 부족한 닝더시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지만 쩡위친은 직원들을 동원해 닝더에 공장을 짓지 않으면 단체 사직하겠다고 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밀어붙였다.
쩡위친이 닝더에 공장을 설립하려고 한 이유는 ATL의 미래 때문이었다. 닝더는 쩡위친의 고향이자 근거지로 닝더 관계자들은 이미 도시의 발전을 위해 2004년부터 ATL과 접촉하고 있었다. 2004년 12월, 당시 자오청구(蕉城區) 정치협의회 중자야오(鍾家堯)의장이 팀을 이끌고 ATL 투자에 나섰는데, 그는 원래 닝더 지역 중 하나인 페이롼진(飛鸞鎮)의 시장(鎮長)이었다. 쩡위친은 자신을 믿고 지지하는 닝더시에 공장을 설립하면 발언권과 더불어 기술력 등 통제권을 가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2008년 3월, 전액 출자해 자회사인 닝더신넝위엔커지(寧德新能源科技有限公司)를 설립했다. 이는 닝더시 역사상 가장 큰 투자 프로젝트로 당시 인프라가 거의 없었던 닝더시의 산업, 경제, 도시 구도 전체를 바꾸어 놓았다.
CATL의 탄생
2008년 쩡위친은 40세가 되었다. 그는 ‘CATL의 왕’이 되기까지 10년간 노력을 쏟아부었다. 첫 번째 관문은 ATL로부터 독립하는 것이었다. 장위제는 소비재 배터리의 업황 자체는 좋았지만 몇 년 동안 성장이 거의 없다는 점을 간파했고, 만약 동력 배터리 분야로 변경하면 성장률이 소비재 배터리의 3배 이상이 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이에 그는 닝더에 소비재 배터리 공장을 짓는 동시에 전용 동력 배터리 R&D 부서를 설치해 동력 배터리에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닝더신넝위엔(寧德新能源)이 설립된 2008년에 ATL은 전용 동력 배터리 R&D 부서를 만들어 동력 배터리 개발에 첫발을 내디뎠다.
시대와 운명은 평상시엔 병렬로 연결된 두 개의 배터리와 같다. 이들이 직렬로 연결될 때만 에너지가 두 배로 커진다. 신에너지 자동차가 미래 경제 성장에 미칠 수 있는 거대한 영향을 고려하여, 때마침 정부는 동력 배터리와 소비재 배터리, 국내외 자금 투입에 따라 각기 다른 진입 문턱과 보조금 정책을 제시했다.
그에 따라 2011년 장위제의 주도로 ATL 내부의 동력 배터리 R&D 부서를 독립시키고 새로운 ‘닝더스다이신넝위엔’[寧德時代新能源有限公司, 닝더스다이(寧德時代), 이하 CATL]을 세웠다. CATL은 장위제, 쩡위친 등이 전반적으로 주도하고, 회장은 쩡위친이 맡았다. 일본 자본계 ATL은 ‘닝더신넝위엔’(寧德新能源)이라는 이름으로 닝더스다이 지분의 15%를 가졌다.
쩡위친은 마침내 닝더의 왕이 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해 그의 나이는 43세였다. 문을 열었으니 생존의 문제가 남았다. 그의 두 번째 행보는 ‘생존’에 초점이 맞춰졌다. 생존의 첫 타깃은 BMW였다. 2012년 BMW는 ‘즈눠(之諾)1E’ 전기차를 출시하려 했지만 조립만 하는 다른 기업들과 잘 맞지 않아 새로운 공급업체를 찾고 있었다. 한국의 삼성, 독일의 보쉬(BOSCH)와 전기자동차를 개발했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여러 곳을 수소문한 끝에 CATL 동력 배터리 R&D 부서의 직원을 만났다. CATL에는 쥐꼬리 만한 예산만 주어졌지만, 쩡위친은 큰 기회라고 판단했다.
당시 BMW는 800페이지가 넘는 독일어 버전의 배터리 생산 표준 문서를 제공하고, 엔지니어를 CATL에 파견하여 새로운 배터리 공동 개발에 나섰다. 쩡위친은 아시아 최대 테스트 센터를 설립하고 모든 인력과 자원을 투입하여 BMW 프로젝트에 매진했다. 그는 ‘CATL이 신생 기업이지만 고객은 세계적 수준이고 세계적 수준의 제품과 기술 및 서비스를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공급업체에게도 세계적 기준을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CATL도 반드시 세계적 수준의 표준을 따라가야 했다. 이에 그는 앞장서서 관련 문서를 파악해 자신의 기술로 만들었다. ‘BMW 공급업체 되기’, ‘BMW가 만족하는 배터리 개발’이라는 이 두 과제의 해결은 글로벌 전기자동차 시장에서 불문율이 되었다.
2015년 3월, 국가산업 및 공업의 개발 및 관리, 감독을 담당하는 공업정보화부(工信部)가 ‘자동차 동력 축전지 산업 규범 조건’을 발표했다. 이 문서는 업계에서 ‘동력 배터리 화이트리스트’로 불린다. 신에너지 자동차로 보조금을 받으려면 화이트리스트 기업에서 생산한 배터리를 사용해야 했다. 이 화이트리스트는 중국 동력 배터리 기업을 모두 포함했고, CATL도 마찬가지였다. 화이트리스트라는 지원군을 얻은 CATL은 위퉁(宇通, Yutong), 지리(吉利, Geely), 상치(上汽, SAIC-GM), 진룽(金龍), 창안(長安) 등 자동차 제조업체의 대량 주문을 연이어 받아냈다. 그 효과로 인해 그해 CATL의 배터리 출하량은 한국의 삼성과 LG, 두 글로벌 대기업을 넘어섰고, 중국을 비롯해 세계 동력 배터리 시장에서 중요한 플레이어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세계 배터리 시장의 왕이 되다
당시 동력 배터리 시장은 리튬인산철과 삼원계리튬 소재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당시 중국의 대표 배터리 제조 기업인 BYD는 대부분 저렴한 리튬인산철로 배터리를 제조하고 있었다. 쩡위친은 비용이 높더라도 연속주행 능력이 더 강한 삼원계리튬을 택했다. BYD는 1995년 니켈 카드뮴 배터리 생산으로 시작하여, 2003년 중국 1위, 세계 2위의 휴대폰 배터리 제조사로 자리잡은 기업이다. 2016년 BYD는 7.1GWh의 판매량으로 중국 동력 배터리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해 CATL의 6.8GWh를 넘어섰다. BYD가 그 시대의 ‘배터리 왕’이었다.
그러나 BYD에도 위기가 찾아왔고 그 위기는 CATL의 기회가 되었다. 2016년 9월, BYD 매출이 중국 동력 배터리 업계 1위를 지키고 있을 때, BYD의 왕촨푸(王传福) 회장은 “혼자 다 차지할 것이다. BYD 배터리는 당분간 외부에 판매하지 않을 것이며, 배터리 분야에서 BYD의 선도적 지위를 유지할 것이다”라는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BYD가 물품을 공급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자동차 기업은 CATL로 눈을 돌렸다.
BYD의 리튬인산철 배터리는 수명이 길고 자연 발화가 적으며 비용이 저렴하다. 하지만 저온에 약하고 에너지 밀도가 낮다. CATL의 삼원계리튬 배터리는 리튬인산철보다 저온에 강하고 에너지 밀도가 높지만, 수명과 안전성이 리튬인산철만큼 좋지 않고 비용면에서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각각의 장단점을 극복하기 어려워 선두를 차지하기 쉽지 않은 와중에 CATL이 BYD를 따돌릴 수 있는 기회의 동아줄은 정부에서 내려왔다.
2017년 중국은 더 높은 에너지 밀도, 더 긴 주행거리의 모델을 장려하기 시작했다. 공식적으로 보조금 계산 공식에 에너지 밀도 조정 계수를 도입했다. 120wh/kg의 에너지 밀도는 가장 높은 1.1의 보조금을 얻을 수 있었다. 2018년부터는 에너지 밀도에 대한 최고 보조금 기준이 160wh/kg으로 높아졌고, 보조금 계수도 1.2로 높아졌다. 이 정책으로 인해 모두가 에너지 밀도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에너지 밀도에 취약한 리튬인산철 배터리는 근본적으로 요구사항을 충족할 수 없어서 순식간에 도태되었다. 과거 리튬인산철 연구 개발에 줄곧 주력해 온 BYD도 자사 자동차를 삼원계리튬 배터리로 바꿔야 했다.
반대로 CATL은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2017년 CATL의 매출은 200억 위안에 육박했고, 순이익은 42억 8,800만 위안에 달했다. 11월에는 차스닥에 상장 신청을 했고, 2018년 6월 전례 없는 속도로 회의를 통과하며 선전증권거래소에 상장되었다. 상장 당일, 회사 시가총액은 786억 위안으로 차스닥 시가총액 2위로 뛰어올랐고, 최고 시가총액 1조 6천억 위안까지 상승했다. CATL은 파나소닉(PANASONIC)과 BYD를 능가하는 세계 최대 자동차 배터리 공급업체로 떠올랐다. 50세인 쩡위친이 동력 배터리 세계의 왕좌에 오른 것이다.
위기 상황에 빛난 전략적 투자
CATL의 폭발적인 성장은 개인과 집단의 노력이 반이고, 정책과 시대의 혜택이 반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혜택이 사라졌을 때도 CATL은 왕좌를 굳건히 지켰다. 동력 배터리 업황이 좋은 시기에 쩡위친은 직원들에게 ‘돼지가 정말 날 수 있을까? 태풍이 사라지자 돼지가 떨어지는 건 왜일까?’라는 제목의 메일을 보내며, 모두에게 위기의식을 가질 것을 강조했다. 2019년 6월 실제로 위기가 찾아왔다. 공업정보화부가 ‘자동차 동력 축전지 산업 규범 조건’을 폐지하고, 중국 동력 배터리 기업에 대한 화이트리스트를 공식 취소한 것이다. 보호 조건이 사라지자 삼성, LG 등 외국 기업이 잇달아 입장하고 세계 거두들이 중국으로 모여들었다. 이런 위기 속에 쩡위친은 눈앞의 이익보다는 오히려 전체 산업사슬을 고려했다. CATL의 미래를 재생 에너지, 에너지 저장, 동력 배터리를 핵심으로 하는 3대 주요 시장에 포커스를 두고 무인 광산, 전기 대형 트럭, 전기 선박 등 전동화와 스마트화를 핵심으로 하는 응용 사업으로 확장한 것이다.
2022년 초, 쩡위친이 초콜릿을 들고 권하는 사진이 자동차 업계에 퍼졌다. 이는 CATL의 배터리 교체 분야 진출을 알리는 포스터였다. 그리고 배터리 교체 브랜드 ‘스다이덴푸’(時代電服)와 배터리 교체 사업을 동시에 발표했다. 실제로 쩡위친이 겨냥한 것은 현재 전기차의 최대 난제였다. 그는 휴대폰처럼 전기차 배터리가 쉽게 교체되기를 원했다.
2022년 12월 14일, CATL은 하루 만에 화웨이와 자동차 제조업체 치루이(奇瑞, Chery) 두 대기업과 중요한 협력을 맺었다. 그중 치루이와 전략적 협력 기본 계약을 체결하여, 제품, 비즈니스, 마케팅, 비즈니스 정보 자원 등 분야에서 전방위적인 협력을 추진했다. 12월 20일에는 창안(長安)자동차와 충칭(重慶)에서 합작투자 프로젝트 조인식을 열고, 합작투자회사 스다이창안(時代長安)을 설립했다
같은 날, 창안자동차 계열의 아웨이타 테크놀로지(阿維塔科技)와도 전략적 협력 강화 계약을 체결하고, 양측이 첨단 배터리 기술을 기반으로 업계를 선도하는 배터리 공급 시스템을 구축할 것을 약속했다. CATL은 2021년부터 아웨이타, 지커(極氪 Zeekr), 너자(哪吒 Nezha), 아이츠(愛馳), 바이텅(拜騰), 세리스(賽里斯) 등 최소 7개 자동차 기업에 투자해 거대한 신에너지 자동차 산업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쩡위친은 CATL의 왕좌를 공고히 하기 위해 자동차 기업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작은 측면에서 그는 고객의 문제, 특히 첨단 기술 문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CATL의 큰 고객사인 테슬라의 수장 머스크는 그에게 더 저렴한 리튬 배터리가 없는지 꾸준히 물어보고, 쩡위친은 그에게 “반드시 해결책을 찾아낼 것”이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반평생을 문제 해결에 보냈던 자신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2020년에도 쩡위친은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했다.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CATL의 R&D 투자는 2019년 대비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상승한 357억 위안에 달했다. 관련 전문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리튬 산업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연구원 중 거의 절반이 그의 휘하에 있다.
CATL의 ‘2022년 환경, 사회 및 기업 지배구조 보고서’에서 쩡위친은 R&D 총 투자액이 전년동기대비 100% 이상 증가한 150억 위안을 돌파했으며, R&D 인력 1만 6,322명 중 석박사 학위 소지자가 3천 명이 넘었다며 감격스러움을 표현했다. 그의 투자는 결과로 나타났다. CATL은700만 대 이상의 차량에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강력한 컴퓨팅 파워, 첨단 알고리즘,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R&D 테스트와 실제 차량의 피드백을 통해 서로를 인증하는 폐쇄형 R&D 루프를 형성한 동시에 배터리 전체 수명주기 R&D체인을 구축했다. 그중, CATL이 내놓은 치린배터리( 麒 麟電池 )는 3 세대 CTP(Cell To Pack, CATL이 이름 붙인, 배터리 셀을 모듈을 거치지 않고 바로 팩으로 만드는 기술)기술을 채택하여 배터리 집적도 병목 현상을 해결하고, 전체 차량 주행 거리도 1천 km를 돌파했다.
저위험 중심의 사업 확장
돈을 버는 문제에서 쩡위친은 투자자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2023년 1분기 지리, 창안, 창청(長城)의 반년 매출에 맞먹는 890억 위안 매출을 올렸고, 순이익은 98억 위안에 달한다. 그야말로 글로벌 전기자동차 산업의 새로운 선두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그러나 1분기 CATL의 미지급금과 미지급채권이 전년동기대비 40% 가까이 증가했고 주요 공급업체의 미수금도 증가했다. 이는 CATL의 성과 일부가 부품과 원자재를 저렴하게 조달함으로써 얻어졌고 거래업체에 대한 결제주기도 더 길어졌음을 의미한다.
양극재를 만드는 창위안리커(長遠鋰科)의 1분기 순이익이 전년대비 99.7% 급락하고, 전해액을 만드는 텐츠차이랴오(天賜材料)는 올해 순이익이 절반가량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흑연화에 앞장서고 있는 상타이커지(尚太科技)는 거의 15년간 이어온 생산 기지의 운영을 중단하고, 리튬인산철 양극재 공급업체인 더팡나미(德方納米)의 총이익률은 0.01%로 떨어졌다. 2022년 세계 동력 배터리 컨퍼런스에서 광저우자동차그룹(廣汽集團) 쩡칭홍(曾慶洪) 회장은 “배터리 제조업체가 이익을 모두 가져갔고, 광저우자동차는 줄곧 CATL을 위해 일만 했다”라고 말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수요와 공급 구조의 불균형은 현재 동력 배터리 산업의 가장 큰 문제이다. 웨이라이(蔚來)자동차의 리빈(李斌)과 샤오펑(小鵬)자동차의 허샤오펑(何小鵬)은 이 문제를 가지고 CATL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쩡위친은 흔들리지 않고 결단력 있는 모습을 보였다.
쩡위친은 “생산 라인을 위해 돈을 지불하면 기꺼이 만들어줄 것이다. 또는 장기 협력의 경우, 생산량 변동을 15% 이내로 약속한다면 모두 괜찮다. 돈이 없는 약속은 진정성이 없다”라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이는 CATL이 배터리를 더 많이 제조하더라도 과잉 재고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으며, 모든 리스크는 자동차 제조업체가 부담한다는 말과 같다
본질적으로 쩡위친의 CATL은 런정페이의 화웨이와는 매우 다르다. 오히려 거대한 제조기업과 더 유사하다. 여기에 기술 독점과 업스트림 및 다운스트림 기업과의 네트워킹 전략을 통해, 전체 산업사슬을 구축했다.
쩡위친의 문제 해결의 핵심은 저위험 중심의 확장이다. 다운스트림 기업의 리스크가 자신에게 미치지 않게 하는 것을 중심에 두었다. CATL은 자동차 기업에 물품을 공급하고, 자동차 기업은 배터리 생산 라인을 구동하기 위해 돈을 지불해야 하며, 5년 심지어 10년의 생산물량 계약을 체결한다. 그리고 산업사슬 내 협력을 통해 시너지를 강화하여 규모 효과를 얻는다. 이는 제조 한계비용을 절감해 생산능력 확장에 대한 리스크를 크게 희석할 수 있다. 즉 전체 산업사슬 자체 구축을 통해 리스크를 줄이고 사업을 확장하는 전략인 것이다
2017년부터 CATL은 다운스트림 투자 외에도 업스트림 원자재, 반도체 칩, 모빌리티 공유, 자율주행, 심지어 보험 금융 등의 분야에서 40개 이상 기업에 투자했다. 매년 평균 10곳이 넘는다. 자본 운영을 통해 국내 심지어 국외에서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업스트림 및 다운스트림 구도를 형성하려 했다.
기술 세대 교체에서도 리스크를 줄였다. 삼원계리튬 배터리는 당시에는 옳은 선택이었지만, 미래에도 옳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쩡위친은 삼원계와 철리튬 전체 산업을 모두 다루었다. 이와 함께 첨단기술을 배치하고 리튬 이온 배터리와 호환되는 ‘나트륨 이온 배터리’에 이어, 최근 응축 물질 배터리도 출시했다.
현재는 글로벌 공급망 구축 시 먼 나라와는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는 공격한다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점점 심각해지는 국제무역 보호주의에 대응하기 위해 독일에 최대 규모의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고, 전 세계에서 리튬 광산, 신에너지 자동차 브랜드 등 업스트림 및 다운스트림에서의 다음 타깃을 찾고 있다.
도전과 베팅의 역사
중국의 워런 버핏이라 불리는 투자의 귀재 세콰이어 캐피탈의 선난펑(沈南鵬)과의 대화에서 쩡위친은 “2030년까지 CATL이 동력 배터리 분야에서 잘 해낸다면 50~60%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할 수 있지만, 잘하지 못한다면 존재하지 않는 회사가 될 수도 있다”고 예측한 적이 있다. 현재 글로벌 전기자동차 산업의 연간 두세 자릿수 성장률과 50~60%의 시장점유율을 합치면, 2030년을 전후해 CATL은 연 매출 수조 위안의 슈퍼 기업이 될 것이다. 물론 치명적인 리스크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쩡위친의 멘토였던 장위제는 마작을 좋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위제는 60세 생일에 ‘베팅에 강하다’(賭性堅強)라고 적힌 글을 선물 받고 자신의 사무실에 걸어둘 정도로 좋아했다. 그런데 쩡위친이 그 글을 자신에게 달라고 요청해 거절한 적이 있다. “이건 생일 선물이고 기념 가치가 있어서 줄 수 없다”고 말했지만 물러나지 않자 결국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 ‘베팅에 더 강하다’(賭性更堅強)라는 글을 선물해 주었다. 쩡위친 역시 그 글을 자신의 사무실에 걸어두었다고 한다. 강한 도전 정신은 푸젠성 사업가의 특징으로 알려져 있다. 쩡위친은 “도전은 육체적인 노동에 불과하며, 베팅이야말로 정신적 노동이다”라고 설명했다.
대학 졸업 후 친구들이 사업가의 길을 갈 때 기업에 들어가 문제를 해결했던 것, 전문가들도 해결하지 못한 배터리 문제를 문외한이었던 그가 찾아내 성공으로 이끈 것, 모두가 반대하는 지역에 공장을 세워 주도권을 가져온 것, 다른 기업이 몸을 움츠릴 때 공격적인 투자로 산업의 흐름을 바꾼 것 모두 그의 도전과 베팅으로 이루어진 역사다.
지금은 천탕화에 이어서 장위제도 CATL을 떠났다. 중국의 동력 배터리 산업도 한번씩 에너지 충전과 방출을 완성했다. 앞으로도 CATL은 ‘불패’를 유지할 수 있을까? 쩡위친의 또 다른 베팅이 기대된다
샹제(商界) 중국 경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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