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금리 시대의 종말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제로 금리 시대의 종말

글 : 제프리 프랭클 (Jeffrey Frankel) / 하버드대학교 경제학 교수 2023-09-27



불과 2년 사이에 많은 것이 달라졌다. 미국, 영국에서는 거의 제로 금리, 유럽과  일본에서는 약간 마이너스 금리였던  2021년에만 해도 많은 이들이 그러한 저금리 상태가 오래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지금 보면 놀라운 결과지만, 2022년 1월에 실시된 조사에서 투자자들은 향후 5년 내 미국, 유럽, 영국의 금리가 4% 이상 올라갈 확률이 각각 12%, 4%, 7%에 불과하다고 점쳤다. 예상되는 인플레이션을 감안한다면 실질금리는 마이너스이고, 그런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사실 미국 연준과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의 공격적인 금융 긴축에도 불구하고 2022년 말까지도 실질금리는 마이너스 상태에 머물렀다. 더구나 2022년 10월까지 장기금리가 단기금리보다 덜 오르는 바람에 수익률 곡선 역전 현상을 일으켰는데 이는 다시 가까운 미래에 중앙은행이 단기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금융시장의 기대를 부추겼다. 미국과 세계경제가 조만간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공인된 믿음이 이런 상황을 연출한 주요인이었다.

 

2023년 7월, 미국 연준은 기준금리를 5.50%로 올렸다. 미국과 기타 많은 나라에서 실질금리는 양의 영역으로 상승했다. 그리고 어찌 되었든 미국은 경기침체를 피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금리는 한동안 양의 영역에 머무를 것으로 보인다.  




2021년에 일단의 금융 경제학자는 인플레도, 디플레도 초래하지 않는 ‘중립적’ 실질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졌다고 믿었다. 이런 전환은 비정상적인 재정확대 정책으로 금리가 급상승하는 예외적인 기간을 제외한다면 장기적으로 지속될 현상으로 받아들여졌다. 연준의 인플레 목표가 2%라는 것을 감안할 때, 실질금리가 제로가 된다는 것은 명목금리가 평균적으로 2% 이하로 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소위 ‘제로 금리 하한’(명목금리를 0 이하로 할 수는 없다는 제약) 때문에 명목금리는 마이너스로 떨어질 수가 없다. 

 

유럽과 일본에서는 명목금리를 0보다 약간 낮게, -0.5%까지 낮췄다. 이것이 금리의 사실상 하한이었다. 만약 실질금리가 마이너스이고 명목금리가 실질적으로 0에 가깝다면 세계 경제는 심각한 곤란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중일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금융정책은 경제 성장을  달성하기 위해 별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것이다. 결국 고용을 유지하는 책임은 자연히 재정정책으로 옮아가게 되는데 주지하다시피 재정정책은 정치적인 고려로 인한 왜곡을 피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이런 암울한 시나리오가 바로 2013년에 미국의 재무장관이었던 로렌스 서머스가 유행시킨 ‘장기 정체’ 가설이다. 


재정정책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만성적으로 낮은 실질금리의 한 가지 좋은  점이라면 공공부채가 증가해도 금리가 낮기 때문에 재정에 타격이 덜하다는 점이다. 상당한 재정적자가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GDP 대비 부채 비율이 줄어들기 때문에 정부는 그럭저럭 적자 관리가 가능하다. 그러나 금리가 오르면 미국의 재정적자는 다시 문제가 된다. 미국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은 향후 계속 상승 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것이 바로 신용평가기관 피치가 미국의 국채 등급을  AAA로부터 강등시킨 이유 중 하나다. 세계적인 실질금리 상승은 다른 나라, 특히 개도국의 부채 문제를 악화시켰다. 


2021년에 실질금리가 상당 기간 아주 낮은 수준에 머물 것이라고 믿었던 투자자와 경제학자를 비난하기는 어렵다. 어쨌든 미국의 단기 금리는 2009년에서 2021년까지 13년 가운데 2009~2015년, 2020~2021년까지의 9년 동안 제로 금리에 가까운 수준을 유지했다. 유럽에서도  2009년부터 금리는 1% 언저리에 머물렀고, 일본에서도 금리는 1996년부터 0.5% 이하를 유지했다. 그렇게 지속적인 저금리는 대공황 이래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빗나간 금리 전망


주요 국가의 명목금리와 실질금리는 최소한 1992년부터 하향 추세를 보였다. 더구나 장기 실질금리에 관한 7개국의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를 보면 장기금리는 르네상스 시대 이후부터 한 세기에 약 1.2%포인트씩 점진적이면서도 꾸준히 하락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질금리 하락의 원인으로는 생산성 저하, 인구구조 변화, 안전하고 유동성 풍부한 자산에 대한 수요 증가, 불평등 증가, 자본재 가격 하락, 동아시아에서의 저축 과잉 등이 지목된다. 수명 증가와  교환비용 감소 등의 다른 요인도 장기적인 실질금리 하락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확실히 저명한 경제학자가 앞으로 금리 상승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한 사례는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한 번씩 금리 상승이 있을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런 상승이 단기적으로는 가능성이 낮고, 장기적으로도 일시적인 현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2018년에 서머스는 미국에서는 “역사적인 기준으로 볼 때 앞으로 상당히 오랜 기간 초저금리가 지속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2020년에 그는 다시 제이슨 퍼먼과 함께 “실질금리는 마이너스 영역에 머무를 것”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2022년 6월까지도 IMF의  전 수석이코노미스트인 올리비에 블랑샤르는 “금리의 장기적 하락은 보이지 않는 심층적 요인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며,  이는 가까운 시일 내에 방향을 바꿀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단기 명목금리는 현재 5% 이상이며 실질금리는 양의 영역으로 돌아왔다. 금융 경제학자 중에는 여전히 금리가 제로 수준으로 다시 떨어질 것이라고 믿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그들은 2008년부터 2021년 사이에 있었던 드라마틱한 변화에 너무 많이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어쨌든 제로나 마이너스까지에 이르는 실질 금리 전망은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는 (최소한 일본 이외 지역에서는) 거의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나는 가까운 시일 내에 금리가 제로로 돌아갈 것이라는 전망에는 회의적이다. 만약 저금리가 다시 온다면 그만큼 운신의 폭이 넓어지는 금융정책에는 좋은 소식일 것이다. 반면 고금리가 지속된다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국가 부채를 계속 안고 가야 한다는 점에서 재정정책 담당자들에게는 우울한 소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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