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 타임즈> 수석 이코노미스트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파이낸셜 타임즈> 수석 이코노미스트

글 : 강남규 / 중앙일보 국제경제 선임기자 2023-01-20

경제이론사를 읽다보면 18~19세기 부분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인물들이 있다.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그리고 월터 배젓(Walter Bagehot)이다. 배젓은 금융·통화 학설사의 대가이자 19세기 중후반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편집장이었다. 또한 런던 금융시장 르포인 “롬바드 스트리트”의 지은이이며 금융통화 이론의 개척자이기도 하다.


우리가 월터 배젓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언론인이면서 이코노미스트라는 그의 특수한 배경 때문이다. 20세기 이후 배젓처럼 언론인이면서 이코노미스트로 인정받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이코노미스트가 상당히 긴 시간 훈련을 받아야 할 수 있는 직업이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월터 배젓과 같은 인물이 현재에도 한 명 존재한다. 바로 마틴 울프다. 현재 직책은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의 수석 논설위원이다. 과거엔 세계은행 이코노미스트였다. 그의 칼럼이 메이저 중앙은행의 보고서처럼 전문적이고 깊이 있어 보이는 이유다.


스태그플레이션이 절정이었던 1981년에 세계은행을 그만둔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때와 지금의 비슷한 점이나 차이점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나?


아주 재미있는 질문이다! 폭넓게 보자면, 1970~80년대 초 그리고 지금 상황 사이에는 몇 가지 유사점이 있다. 우선 통화공급 과잉과 경제적 충격이 동시에 발생했다. (내가 세계은행을 그만 두었던) 1981년은 아니지만, 1973년과 1979년 두 차례에 걸쳐 오일쇼크가 발생했다. 둘 모두 전쟁으로 촉발됐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원유와 천연가스 쇼크도 전쟁에 의해 시작됐으니 지금의 상황과 상당히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우리는 언제나 변함없이 그래왔듯 두 가지 쇼크에 시달리고 있다. 다만, 이번의 두 번째 쇼크는 오일 쇼크가 아니다. 전쟁 때문에 발생한 에너지 쇼크, 그리고 팬데믹 쇼크이다. 과거 그 시절엔 70년대의 두 차례 오일 쇼크와 급격한 통화 증가로 인해 수요가 급증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수요 급증은 실물경제 충격과 상호작용해 인플레이션 흐름을 일으켰다. 그때 물가를 잡는 데 어림잡아 10년 정도 걸렸다.


10년? 그렇다면, 이번 인플레이션을 잡는 데는 몇 년 정도 걸릴까?


이번에는 아주 낙관적으로 본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모든 중앙은행가가 역사를 기억하고 있다. 그들은 역사를 기억하며 실수를 되풀이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물론 (1970년대와 달리) 요즘 중앙은행가는 상당히 독립적이고, 물가안정목표제(인플레이션 타깃)를 채택하고 있다. 이로써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물가 안정을 달성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둘째, 인플레이션이 미국을 제외하고 외부 변수 때문에 발생했다는 점이다. 내부요인 때문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 요인은) 바로 에너지 쇼크다. 


에너지 쇼크가 임금 상승으로 이어질 리스크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70년대와 차이점은 지금 노동조합 조직률이 아주 낮다는 사실이다. 노동조합이 아주 약하다. 파업이 발생하기는 하지만, 맹렬하지 않다. 그래서 인플레이션이 상품 시장, 그중에서도 아마 서비스 섹터에 제한될 가능성이 아주 크다. 그래서 나는 무조건이라고 할 순 없지만 2024년이나 2025년 주요 국가에서 인플레이션 수준이 상당히 낮을 것으로 비교적 낙관한다. 물가상승률이 2% 수준으로 되돌아갈 거라고 자신하지는 못한다.


한국에서 비즈니스를 하거나 금융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은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를 얼마나 높게 올릴지에 민감하다. 미 기준금리가 높을수록 달러 가치도 오른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문제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두 가지를 나눠 살펴보는 게 아주 중요하다. 최근 연준 이사회 한 멤버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비공식 대화여서 그 내용이 무엇인지 말해줄 수는 없다. 아무튼, 두 가지 측면 가운데 하나는 기준금리가 어디까지 인상될 것인가다. 이 문제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기준금리가 최고치에 이른 뒤 얼마나 오래 머물까이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에 따를 때 기준금리는 5%대 어느 지점까지 이른다는 게 합리적인 추정이다. 비합리적인 추정이 아니다. 그 정점까지 머지않았고, 아주 빨리 인상될 듯하다. 미 경제는 여전히 아주 탄탄하다. 노동시장도 역시 아주 활발하다. 


미 기준금리가 5% 정도의 정점에서 얼마나 오래 유지될 것으로 보는가?


최근 미국의 물가상승률이 상당히 낮아졌다. 앞으로 물가상승률이 더 낮아질 수 있고, 연준이 기준금리를 더 올리지 않아도 될 수 있다. 반면, 물가상승률이 여전히 높은 수준일 가능성도 있다. 미 기준금리가 일단 정점에 이르면, 연준 사람들은 합리적인 수준에서 확신이 들 때까지 금리를 내리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인플레이션이 통제권 아래 들어왔다는 확신 말이다. 그래서 기준금리가 고점에 이른 뒤 상당 기간 유지될 수 있다. 잘은 모르겠으나 1년 또는 그 이상 기간 동안 고점에 머물 수 있다(역사적으로 미 기준금리가 고점에서 머문 기간은 9개월 안팎이었다). 기준금리가 5% 대에서 상당 기간 유지된다면, 사람들은 달러 가치도 강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예상할 것이다.


강(强) 달러는 한국 경영자와 투자자에게 이미 부담이다. 강달러가 얼마나 이어질 것으로 보는가?


예측할 수는 없지만, 강달러가 2~3년 이어진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비즈니스 리더는 달러 강세가 지속된다는 전제 하에 계획을 세우고 생존 전략을 짜야 한다. 지금 한국 기업 입장에서 보자면, 강달러는 불이익만큼이나 이익이 되는데, 경쟁력을 높여준다. 달러 자금을 조달할 때 돈이 더 많이 든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나는 달러 부채를 많이 짊어지고 있는 개발도상국이나 작은 신흥국이 더 걱정된다. 달러 빚을 많이 지고 있는 사람은 고금리와 강달러의 조합이 아주 힘들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고, 세계 곳곳에서 채무불이행이 많이 발생할 듯하다.


한국은 어떨까? 한국도 강달러 때문에 어떤 위기를 겪을 듯한가?


질문에 대답하기 앞서 이 말을 먼저 하고 싶다. 무엇보다 나는 한국을 신흥시장으로 여기지 않는다. 분명히 아니다. 한국은 선진국이다. (외환위기를 겪은) 1990년대 한국 시중은행은 알다시피 아주 많은 달러 자금을 빌려다 썼는데, 은행의 자산은 유동성이 아주 떨어졌었다. 그 바람에 시중은행들은 원화와 달러간 밸런스를 맞추지 못했다. 달러 가격이 매우 비싸지자, 환율도 붕괴됐다. 대규모 은행 위기를 겪은 이유다. 위기 이후 한국 금융당국은 외화표시 채무의 리스크를 너무나 잘 알게 됐다. 시중은행과 민간 기업도 잘 알고 있다. 그 결과 (지금은) 달러자금을 (많이) 빌려 쓸 필요가 없다.




이제 2023년 세계 경제, 특히 미국 경제에 관해 물어볼 때다. 미 경제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유럽 경제는 침체를 겪을 것이다. 의심할 여지가 없다. 영국도 침체를 겪고 있다. 미국은 아직 분명치 않다. 물론 침체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렸는데, 표준적인 정의가 없는 상태다. 2~3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과 같은 정의엔 반대한다. 어쨌든, 미국에서는 최소한 상당한 성장 침체가 이어질 듯하다.


성장 침체는 무슨 뜻인가?


성장 침체란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보다 상당히 낮은 상태를 말하는데, 이때 실업률이 오른다. 미 연준이 겨냥하는 상태다. 연준은 현재 노동시장이 너무나 활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실업률이 오르기를 원한다. 내가 보기에 여기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미 우리가 보고 있듯이 연준이 돈줄을 바짝 죄고 있기 때문에 성장 침체는 상당 기간 이어질 수 있다. 다만 이 상태가 전미경제연구소가 경기침체라고 보는 그 침체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전미경제연구소는 경기침체 발생 여부를 결정하는 기관인데, 이번 침체는 확실히 전미경제연구소가 말하는 경기침체는 아닐 것이다. 성장 침체가 발생하고 물가가 잡히면 연준과 다른 중앙은행이 비교적 빨리 기준금리 인하를 시작할 수 있다. 그 시점은 아마 2023년 말 즈음이 될 수도 있다. 침체와 유사한 기간이 단기일 것이라는 의미다.


한국의 많은 경영자들이 중국의 경제 상황에 대해 걱정한다. 중국의 미분양 아파트가 6천만 채 이상일 정도로 주택시장 불안이 중국 경제 전체를 침체 늪으로 빠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경제를 침체의 늪에서 빼낼 수 있다고 보는가?


아주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우선 중국 경제의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지를 잠깐 말해야 할 듯하다. 최근 10~12년 새에 중국에서 이뤄진 투자, 특히 부동산 투자가 비생산적이었다. 더욱이 부동산 투자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 바람에 경제 전반의 투자가 무너지기 시작했고,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다른 요인까지 겹쳐져서 지금 성장률이 하락해 3%나 4% 수준까지 낮아졌을 것이다.


이제부터 중국 경제에 무슨 일이 발생할 것 같은가?


투자가 내수의 절반 정도를 일으켰기 때문에, 투자 감소는 폭넓은 경기 둔화를 일으키고, 이는 부채 문제를 계속 악화시킬 전망이다. 그 결과 경제 전반에 부채 위기가 또아리를 틀고 있고, 경기가 둔화하고 있다. 코로나가 발생하면 도시나 지역 전체를 봉쇄하는 정책 때문에 생산과 소비가 멈춰버려 경기 둔화가 더욱 악화된다. 그 바람에 기업과 가계가 빚에 허덕이고 있는데 소득마저 줄어들어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애초 내 질문은 ‘중국 정부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달리 말하면 그들의 정책 병기고에 무엇이 있을까’였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그들(중국 정부)이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최근 30년 사이 수요가 약해질 때마다 그들이 찾아낸 해결책은 투자를 촉진하는 전략이었다. 그런데, 질문에서 언급한 대로 팔리지 않는 건물이 너무 많고, 수요가 부진한 시기에 투자를 촉진하는 전략은 말이 되지 않는다. 내 말은 경제가 4% 성장하는데, 국내총생산(GDP)의 40%를 투자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투자 저하는 필연인데, 이런 때는 소비로 투자를 대체해야 한다. 그러나 중국 GDP에서 가계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나라, 심지어 독일 등과 견줘도 낮아서 가계 소비는 투자를 대신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런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중국 정부는 재정 지출을 늘려야 하고, 분배를 강화해야 한다. 기업과 정부에서 가계 쪽으로 자원 배분을 늘려 가계 소비가 늘도록 해야 한다. 수요를 부양하기 위해 케인스 정책을 진짜 추구해야 한다는 말이다. 중국 중앙정부가 경제 시스템 내에서 유일하게 (재정적으로) 믿을 만하기 때문에 그 일을 맡아서 해야 한다. 정부가 시장에 나가서 자금을 조달해 가계에 대주고 소비하도록 해야 한다. 시중은행을 구제하고, 부동산 시장의 거품을 완전히 빼내야 한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 구조조정은 아주 어렵고 정치적으로 인기가 없다. 중국 중산층이 부동산에 많이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2~3년 동안 중국 정부가 경제의 불균형에 얼마나 잘 대처하는 지를 보게 될 것이다. 




출처: The Sage Investor 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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