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나이듦이 성숙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들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50대, 나이듦이 성숙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들

글 : 박창영 / '씨네프레소(영화 속 인생 상담소)' 저자, 매일경제 금융부 기자 2026-08-20

중년의 어느 날, 영화가 말을 건네왔다 <18화>


영화 <그레이트 뷰티> 포스터 [출처=IMDb]

  

로마 사교계 최고 유명인인 젭은 매일 밤을 화려하게 지새운다. 예순다섯 살 생일을 지난 후 이렇게 계속 살아도 되는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출처=IMDb]



-줄거리-


젭은 유명인의 삶을 취재하는 기자다. 그 또한 매일 로마에서 가장 호화로운 파티에 참석하는 셀럽이다. 그가 참여하지 않는 파티는 어딘가 허전하게 느껴질 정도로 젭은 사교계에서 권력을 지녔다. 예순다섯 살 생일을 맞이하며 그는 문득 시간을 그저 이렇게 흘려보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에 답해야 할 시간이었다.  

 

젭은 젊은 시절 단 한 권의 소설을 쓴 뒤 더 이상 책을 쓰지 않았다. [출처=IMDb]




젭은 젊은 시절 소설을 단 한 권 쓴 후 예순 다섯 살이 될 때까지 더 이상 쓰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찾던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소설을 쓰는 건 독자와 자신을 기만하는 일이라고 여긴 듯합니다. 궁극적인 아름다움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헤매도 알 수 없었습니다. 기자로서 여러 예술가를 만났지만 마찬가지였습니다. 외려 그들 또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무지를 꼬집으며 냉소했죠.


아름다움에 관한 젭의 탐구는 단지 예술가에게만 국한되는 건 아닙니다. 그는 결국 성숙이 무엇인지 찾아 헤맨 것이니까요. 다시 말해 이 영화는 우리 대부분이 찾는 인격적 성장에 관한 이야기로 볼 수 있습니다. 젭이 만난 예술가들이 오랜 시간을 거친 고민에도 아름다움을 정의하지 못했듯 우리는 인간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무엇인지 쉽게 결론내지 못합니다. 과연 중장년이 된 지금 내 모습이 중학생 때의 나보다 더 성장한 것인지 확신할 수 없죠.


어쩌면 드디어 어른이 됐다는 기분은 우리가 평생 받을 수 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건 많은 예술가와 철학가자가 던져온 질문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더 성숙한 사람’이라고 평가받는 사람이 세상에 없는 건 아닙니다. 더 아름답다고 평가받는 예술이 분명 존재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내면에 결핍을 가지고 어떻게 아름다움과 성숙함을 추구할 수 있을까요. 그게 바로 젭의 또 다른 의문입니다. 

 

젭은 살아 있는 성녀로 불리는 마리아 수녀를 인터뷰하려 하지만 거절당한다. [출처=IMDb]




젭은 마리아 수녀를 인터뷰하려 합니다. 104세의 마리아는 살아 있는 성녀로 불립니다. 아픈 자를 위해 온종일 일한다고 알려졌고, 식물의 뿌리만을 먹고 삽니다. 자신을 이용해 돈벌이하려는 사람들 속에서도 그는 청빈한 태도를 유지합니다. 일행이 예약한 비싼 호텔에서도 굳이 바닥에서 자는 건 그의 종교적 의지를 보여줍니다. 젭은 과연 마리아 수녀가 아름다움, 그리고 성숙이 무엇인지 발견했는지 궁금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인터뷰 제안을 거절합니다. 자신은 가난의 서약을 한 사람이고, 가난은 말로 떠드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마리아는 그저 자신의 믿음대로 살아갈 뿐입니다. 그는 젭이 사는 세상과는 정반대편에 사는 듯합니다. 젭의 파티에 오는 사람들은 늘 자신을 말로 포장하는 일에 바쁩니다. 자신의 작업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자기는 또 얼마나 숭고한 삶을 살고 있는지 설명하는 데 힘을 쏟습니다. 늘 거기에서 간극이 생겼습니다. 사람들이 말로 설명한 것과 실제의 삶에는 차이가 있었고, 그걸 발견할 때마다 젭은 환멸을 느꼈습니다. 


마리아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정답을 아는 사람으로 묘사되는 건 아닙니다. 그저 자신이 약속한 대로 살아갈 뿐입니다. 카메라는 고령의 마리아가 연약한 무릎으로 성 계단을 힘겹게 올라가는 모습을 비춥니다. 젭은 마리아의 삶을 통해 느낍니다. 끝내 온전한 삶에 도달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그저 성숙을 추구할 수는 있다고요. 그리고 그건 그대로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젭이 소설을 다시 쓸 수 있게 되는 건 이 때문입니다.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향해 가는 여정 자체가 중요함을 알게 된 것이죠. 

 

친구들의 부족함을 보고도 포용할 수 있는 너그러움. 그건 어쩌면 자신도 포용받기 위한 전제조건인지도 모른다. [제공=IMDb]




이 영화는 남의 성숙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입으로 말하는 것만큼 고상한 삶을 살지 못하는 친구를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그가 거짓 없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할까요. 그의 거짓을 폭로하고 자꾸 현실을 직면하도록 유도해야 할까요. 실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영화에 등장합니다. 젭의 오랜 친구인 스테파니아입니다. 그는 젭과 친구들보다 자신이 나은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드러냅니다. 


젭은 스테파니아의 위선을 조목조목 드러냅니다. 스테파니아 자신의 말처럼 숭고한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님을 짚습니다. 자녀에게 헌신하는 엄마가 아닐 뿐만 아니라 커리어에서의 성취도 스스로 이뤄낸 것이 아님을 꼬집습니다. 현실을 직면하고 좌절에 빠지라는 의미로 한 말은 아닙니다. 여기 있는 우리 모두 빈틈 있는 사람이니 친구로서 보다 여유롭게 품어달라는 이야기죠. 친구의 역할은 단지 옆에 앉아 농담하고 웃어주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친구가 자신의 모난 부분을 껴안고 살아가면서도 괴로워하지 않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불완전한 삶을 견딜 만하게 해주는 건 따스한 시선입니다. 남의 인생을 볼 때도, 내 삶을 평가할 때도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삶의 구석구석에서 이따금 섬광처럼 비치는 아름다움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레이트 뷰티>를 볼 수 있는 OTT(8월 3일 기준): 왓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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