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을 기다리는 대신 일본 시니어가 선택한 이동 방법
글 : 김동영 / KDI 전문연구원 2026-07-22
도쿄 세타가야구의 주택가 아침. 여든을 넘긴 노인이 네 바퀴 전동카트를 타고 슈퍼마켓으로 향한다. 인도 위를 시속 6km로, 보행자들 사이를 자연스럽게 지나간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 너무나 일상적인 풍경이기 때문이다.
같은 시각 서울의 주택가. 같은 연령의 노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뿐이다. 아픈 무릎으로 걷거나, 집에 머물거나. 두 도시의 차이는 기술이 아니다. 한 나라에는 존재하고 다른 나라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동 수단의 '카테고리'가 만든 차이다.

일본이 40년에 걸쳐 만든 카테고리
일본에서 '시니어카'로 불리는 핸들형 전동휠체어는 1985년 10월 스즈키가 초대 모델을 출시하면서 시작됐다. 2025년 재팬모빌리티쇼에서 40주년 기념 전시가 열렸을 만큼 이 물건은 하나의 표준이 됐다. 누적 판매 32만 대, 도요타(C+walk)와 WHILL 같은 후발 주자들은 '근거리 모빌리티'라는 새 이름으로 시장을 넓히고 있다. 제도는 이 시장의 근간이다. 일본 『도로교통법』상 시니어카는 차량이 아니라 보행자다. 최고 시속 6km, 인도 통행, 운전면허 불요, 복지용구로서 소비세 면제. 결정적인 것은 2000년 개호보험 적용이다. 보험적용을 인정을 받으면 자기부담금은 10~30%로, 월 1,500~3,000엔 수준으로 렌털이 가능하다. 연금 생활자도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는 가격이다. 기술이 시장을 만든 것이 아니라, 제도적 분류와 보험이라는 제도가 시장을 만들었다.

한국은 '노화'가 아니라 '장애'
한국에는 일본과 같은 지원 제도가 없다고 말하지만, 정확한 진단이 아니다. 한국에도 건강보험 보조기기 급여가 있고, 전동스쿠터는 기준액 167만 원의 90%까지 지원된다. 국내 판매 제품의 가격대도 170만~250만 원 수준으로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기기도 돈도 아니다. 제도적 관문이다. 이 급여는 『장애인복지법』상 등록 장애인과 의사 처방으로 한정된다. 『도로교통법』 시행규칙 제2조 역시 보행자로 인정되는 전동 이동기기를 의료기기로 분류된 것에 한정한다.
이 지점을 통과하지 못한 일반형 시니어카는 원동기장치자전거, 즉 오토바이와 같은 분류로 떨어진다. 면허가 필요하고 차도로 달려야 한다. 여기서 역설이 발생한다. 일본 초점은 '노화'다. 나이 들어 걷기 힘들어진 상태 자체가 지원 사유다. 반면 한국은 '장애'에 집중한다. 장애 판정을 받을 정도는 아니지만 보행 반경이 500m 이하로 줄어든 몸은 어떤 지원도 받을 수가 없다. 같은 기기를 두고 두 나라는 다른 관문을 세웠고, 한국의 관문 앞에는 통과할 수 없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왜 이 공백이 생겼나
이 공백은 우연이 아니라 제도의 산물이다. 한국의 이동기기 법제는 '장애 보조'와 '교통 수단'이라는 두 개의 시각으로 출발했다. 장애가 인정되면 복지로, 아니면 교통으로 분류된다. 고령화가 만들어낸 새로운 상태는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일본은 개호보험이라는 노화 자체를 사회적 지원의 사유로 인정하는 제도를 만들었고, 시니어카는 그 안에서 40년간 자리잡았다. 문제는 기기의 성능이 아니라 '걷기와 운전 사이'라는 중간 지대를 제도가 인정하느냐다.

노후 자산의 관점 — 5,000만 원과 200만 원 사이
이 카테고리의 부재는 노후 가계의 의사결정 구조도 왜곡한다. 은퇴 후 자동차 유지 비용은 보험료, 세금, 유류비, 감가상각을 합쳐 연 300만~500만 원에 이른다. 운전이 부담스러워진 시점의 합리적 경로는 차를 처분하고 200만 원 안팎의 시니어카로 갈아타 근거리 이동권을 유지하는 것이다. 일본의 노인은 이 경로를 선택할 수 있고, 그마저 월 몇천 엔의 렌털로 대신할 수 있다. 한국의 노인은 선택지 자체가 봉쇄되어 있기 때문에, 불안한 운전을 연장하거나 이동을 포기하는 양극단으로 내몰린다. 면허 반납률이 낮은 이유를 노인의 고집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반납 이후를 받쳐줄 카테고리의 부재에서 찾아야 한다. 갈아탈 것이 있어야 내려놓을 수 있다.
모빌리티 전환은 기술이 아닌 제도
자율주행이 고령자 이동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전망이 무성하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빨라야 십수 년 뒤의 답이다. 시니어카는 지금 당장 가능한 답이다. 필요한 것은 신기술 개발이 아니라 관점의 재설계다. 보조기기 급여의 대상을 장애에서 노화로 넓히고, 시행규칙의 분류에 '걷기와 차 사이'를 인정하는 조항 하나를 더하는 일이다.
일본이 40년에 걸쳐 증명한 것을 한국은 조문 하나로 시작할 수 있다. 노년의 이동 반경을 늘리는 가장 빠른 길은 하늘에도, 미래에도 있지 않다. 바로 문 밖의 인도 위에 있다.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디지털, 플랫폼 경제를 연구하고 있다. 경제학 박사로 중앙대 겸임교수이자 사단법인 모빌리티&플랫폼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KBS1라디오 '성기영의 경제쇼' 디지털 경제 코너에 출연중이며, 디지털 경제 관련 칼럼을 다수 기고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