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는 어떻게 ‘엔비디아 없는 AI 생태계’ 만들고 있나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화웨이는 어떻게 ‘엔비디아 없는 AI 생태계’ 만들고 있나

글 : 한우덕 / 중앙일보 차이나랩 2026-06-02

“H200 정도면 높은 충분히 높은 사양이잖아. 사가. 내가 특별히 선심 써 수출 허용해 줄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월 13일 베이징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이렇게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알리바바·텐센트·바이트댄스 등 10개 기업에 각각 7500장씩 H200의 수출을 허용했으니 가져가기만 하면 된다는 얘기였다. 일종의 선물이다.


그러나 중국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양측에서 나온 회담 뒷얘기를 모으면, 중국 반응은 이렇게 요약된다.  


“아냐, 우리가 개발한 것 쓸게. 그 정도는 우리 기술로도 만들 수 있어. 괜히 그것 가져다 쓰면 우리 기술 개발 로드맵만 흐트러져….”


위 이미지는 AI를 활용해 제작되었



시쳇말로 까였다.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미국이 중국에 엔비디아 칩을 사달라고 간청하는 모양새가 됐다’고 꼬집는다. 최첨단 블랙웰 칩이라면 모를까, H200 정도로는 중국을 움직일 수 없다고 분석한다.


‘H200 해프닝’은 역설적으로 중국의 AI 칩 개발 의지만 드러냈다. 물론 지금 중국 기술이 미국을 능가한다는 것은 아니다. 2~3년 뒤졌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그러나 중국의 반도체 기술은 갈수록 업그레이드되고 있고, 일부 서방 제품을 밀어낼 기세다. 그 자신감이 “H200, 노 생큐”를 불렀다.


결국 반도체 전쟁이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은 반도체에서 격렬하게 부닥친다. 미국은 중국의 첨단 반도체 개발 숨통을 끊으려 하고, 중국은 기술 독립으로 맞선다. ‘독립 전쟁’의 최전선 중국 투사가 바로 화웨이요, 화웨이 중에서도 반도체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회사가 바로 100% 자회사 하이실리콘(海思)이다.



'반도체 독립 전쟁'의 최전선, 하이실리콘


미·중 경제 기술 패권 경쟁이 치열한 지금, 화웨이는 과연 어느 정도 준비되어 있을까? 하이실리콘으로 얘기를 시작해보자.


하이실리콘이 탄생한 건 2004년 10월이었다. 화웨이는 ‘주문형 반도체(ASIC) 설계 센터’를 하이실리콘 단독 법인으로 승격시키게 된다. 반도체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다. 초기에는 통신 장비용 칩 설계에 집중했다. 그러나 화웨이가 스마트폰, AI, 자동차, 위성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면서 하이실리콘 역시 같은 분야로 사업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반도체는 산업의 쌀, 하이실리콘은 화웨이에 ‘식량’을 제공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제품 카테고리는 통신 칩에서 AI 칩까지 다양하다. 화웨이 스마트폰에는 여지없이 하이실리콘의 ‘기린’ AP가 쓰인다. AI 분야에서는 ‘어센드(Ascend)’ 시리즈가 엔비디아를 밀어내고 있다. 고성능 서버 CPU인 ‘쿤펑(Kunpeng)’, 5G 및 위성 통신을 책임지는 ‘바룽(Balong)’ 등도 ‘반도체 독립’ 전선의 무기로 활용된다.

 

화웨이의 AI 칩 자립은 반도체 기술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의 시선은 하드웨어를 넘어 AI 생태계 전반을 지배할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향한다. 하이실리콘과 화웨이 ‘2012 실험실’ 등이 협력해 개발 중인 AI 컴퓨팅 아키텍처인 CANN(Compute Architecture for Neural Networks)이 핵심이다. ‘엔비디아에 CUDA가 있다면, 화웨이에는 CANN이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엔비디아가 글로벌 AI 생계를 쥐락펴락하는 건 칩만큼이나 강력한 CUDA가 있기에 가능했다. 세계 AI 엔지니어들은 CUDA를 통해 모델을 설계하고 최적화한다. CANN은 그 길을 걷고자 한다. 하이실리콘의 어센드(Ascend) 칩은 CANN을 통해 상위 AI 프레임워크와 연결된다. 


화웨이는 CANN이 특정 영역에서 이미 CUDA의 성능에 근접했다고 주장한다. 데이터 병목 현상을 획기적으로 줄였단다. 그러나 아직 멀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생태계의 범용성과 성숙도 면에서 격차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 조사기관 포레스터 리서치는 “CUDA가 지난 20년간 전 세계 개발자들이 다듬어온 ‘공용어’라면, 이제 막 걸음을 떼기 시작한 CANN은 화웨이 자체 생태계에 치우쳐 있는 ‘사투리’쯤 된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도 CANN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중국 내부의 강력한 수용성 때문이다. 미국의 제재로 고성능 칩 수입이 막힌 중국 기업들에 CANN은 생존을 위한 유일한 경로가 되었다. 바이두, 알리바바 등 빅테크 기업들이 어센드 칩과 CANN 기반으로 AI 모델을 이식하고 있다. 중국 시장이라는 거대한 실험실이 CANN의 성숙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화웨이의 노림수는 분명하다. ‘엔비디아 없는 AI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아직 CUDA를 따라 하는 수준이지만, 하이실리콘은 내수 시장을 발판으로 엔비디아로부터의 독립을 꿈꾸고 있다.



'허블'이 그리는 풀스택(Full-stack) 청사


반도체 전쟁은 누가 더 완벽한 공급망, 기술 생태계를 구축하느냐의 싸움이다. 이 전쟁에서 화웨이가 꺼내든 비밀 병기가 바로 ‘허블 기술 투자(Hubble Technology Investment)’다.


화웨이가 100% 지분을 가진 투자 전담 회사다. CEO 런정페이가 ‘저 회사’라고 찍으면, 득달같이 달려가 사냥을 해온다. 공급망의 빈틈을 메우는 ‘기술 생태계의 사령탑’ 역할을 하고 있다. 2019년 설립 이후 7년여 만에 150여 개 기업에 투자를 단행했다. 이 중 반도체 직접 관련 기업은 60~70여 개에 달한다. 그만큼 반도체 기술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얘기다.


허블투자는 초기 반도체 설계와 소재 회사를 주로 사냥했으나 요즘에는 AI, 로봇 등으로 시야를 넓히고 있다. 최근 투자를 단행한 휴머노이드 로봇 기업 ‘스피릿AI(Spirit AI, 千寻智能)’는 하이실리콘의 어센드(Ascend)를 로봇 브레인으로 장착한다. 허블은 로봇 하드웨어 회사인 매니폴드(Manifold) AI(万勋科技)를 화웨이 가족으로 끌어들이기도 했다.  


화웨이의 최종 목표는 ‘자족형 풀 스택(Full-stack) 생태계’의 완성이다. 허블이 투자한 기업이 장비를 만들고, 그 장비로 칩을 찍어내며, 그 칩을 로봇과 자율주행차 기업들이 소비하는 구조다. 설계, 제조, 서비스로 이어지는 ‘완결적 순환 구조’가 그들의 지향점이다.



2~4년 세대 격차, 그럼에도 눈을 뗄 수 없는 이유


미·중 반도체 전쟁, 지금 전황은 어떨까? 답을 알기 위해서는 역시 하이실리콘을 봐야 한다. 하이실리콘의 기술 경쟁력이 곧 중국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글로벌 반도체 전문가들은 ‘일부 통신 분야를 제외하면 하이실리콘 반도체 기술이 여전히 2~4년 세대 격차를 보인다’고 분석하고 있다. 스마트폰의 두뇌인 ‘기린’ AP의 경우, 설계 아키텍처는 글로벌 톱 수준이지만, 제조가 발목을 잡는다. 대만 TSMC의 최첨단 3㎚ 공정을 쓰는 애플·퀄컴 등에 밀린다. 사활을 건 AI 가속기 ‘어센드’ 시리즈 역시 하드웨어 연산 속도는 엔비디아의 전 세대 칩(A100)을 바짝 추격했으나, 소프트웨어 생태계(CANN)의 효율성 면에서 엔비디아에 2~3세대 뒤진다. 


화웨이의 본업인 통신 반도체 영역에서는 서방과 대등하거나 오히려 앞선다. 차세대 5.5G 모뎀 칩, 양방향 위성통신 SoC(단일 칩 시스템) 등 기술은 애플이나 퀄컴보다 1~2년 앞서 달리고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여전히 부족하다. 그렇다고 미국으로서는 안심할 수도 없는 처지다. ‘H200정도는 우리 스스로 해결할 게’라는 반응은 이를 보여준다. 


반도체 전쟁은 갈수록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 전쟁의 흐름에 따라 국내 반도체 업계의 향방도 결정된다. 화웨이, 그리고 하이실리콘의 행보 하나하나를 주시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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