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평가에 맞춰 사느라 정작 '나'를 잃어버린 것 같다면
글 : 박창영 / '씨네프레소(영화 속 인생 상담소)' 저자, 매일경제 금융부 기자 2026-05-21
중년의 어느 날, 영화가 말을 건네왔다 <15화>
![영화 <버드맨> 포스터 [출처=20세기 폭스 코리아]](https://investpension.miraeasset.com/common/namoeditor/binary/images/000270/1778561338256.jpg)
![리건(마이클 키튼)의 머릿속에는 버드맨의 목소리가 떠나지 않는다. 20년 전 연기했던 슈퍼히어로 캐릭터가 여전히 그를 옥죄는 것이다. [출처=IMDb]](https://investpension.miraeasset.com/common/namoeditor/binary/images/000270/1778561350498.jpg)
-줄거리-
리건은 영화계 스포트라이트에서 한참을 비켜나 있는 배우다. 젊은 시절 슈퍼히어로 버드맨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지만 이후 커리어는 줄곧 내리막길이었다. 자기에게만 몰두하는 성격에 아내와는 이혼했고 딸과의 거리는 멀어졌다. 막다른 길에 다다른 그는 사재를 털어 연극을 제작한다. 진짜 예술가로 인정받기 위해서다.
![리건의 딸 샘(엠마 스톤)은 아버지 조수로 일한다. 그러나 부녀 사이엔 깊은 감정의 골이 있다. 딸은 인정을 갈구하는 아버지에게 “아빠는 중요한 사람이 아니니깐 그걸 받아들이라”고 모진 말을 한다. [출처=IMDb]](https://investpension.miraeasset.com/common/namoeditor/binary/images/000270/1778561376332.jpg)

누구에게나 인정 욕구가 있습니다. 그것은 한 사람이 열심히 살아갈 동기가 되며, 때로는 그에게 사회적 성취, 부와 명예를 안겨줍니다. 영화 <버드맨>은 타오르는 인정 욕구를 연료 삼아 할리우드 정상에 올랐던 배우 리건의 이야기입니다.
과거 그는 슈퍼히어로 버드맨을 연기하며 절정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4편 참여를 거절한 뒤 영광은 빠르게 증발했습니다. 추억 속 배우가 된 그는 자기 처지를 이렇게 요약합니다. “난 퀴즈쇼의 정답으로 남은 사람이지.” 사람들이 사랑한 건 배우 리건이 아니라 영웅 버드맨일 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떨쳐내기 어렵습니다.
리건의 내면을 흔드는 건 커리어만이 아닙니다. 아내와 이혼했고 딸에게는 깊은 원망의 대상이 됐습니다. 억울해하지는 않습니다. 한창 정상을 향해 달려갈 때 그는 주변을 보살피지 않았습니다. 가족의 곁에 있어줘야 했던 순간마다 자리에 없었죠. 스크린에서는 히어로였지만 집에서는 빌런이었던 셈입니다. 뒤늦게 좋은 아버지 흉내를 내보려고 해도 딸은 그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리건은 마지막 승부를 겁니다. 대중이 사랑했던 슈퍼히어로가 아니라 가면 뒤의 진짜 자기 얼굴로 인정받겠다는 결심입니다. 직접 제작비를 투입해 브로드웨이에 연극을 올리기로 합니다. 브로드웨이가 처음인 그가 연출은 물론 주연까지 맡는 도박이었죠.
![리건이 분장실에서 상념에 빠져 있다. 거울 오른쪽 아래에 붙은 메모지에는 수전 손택의 말이 적혀 있다. [출처=20세기 폭스 코리아]](https://investpension.miraeasset.com/common/namoeditor/binary/images/000270/1778561411865.jpg)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 시작한 도전이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연극 준비에 들어서자 타인의 시선에 끊임없이 휘둘리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리허설에서 연기가 잘 되는 것 같아 들떠 있다가도 곧 모든 게 무너질 것 같은 두려움에 잠식됩니다. 무대에 같이 오를 후배가 자기보다 더 주목받는 분위기에 속이 뒤틀리고, 까칠한 평론가가 “당신은 배우가 아니라 연예인일 뿐”이라고 못 박을 때는 그 한마디에 자기 존재가 규정되는 듯 작아집니다. 관객 앞에 얼굴을 드러낼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그만큼 인간은 외부의 시선에 쉽게 흔들립니다. 리건과 같은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매일 누군가의 평가 앞에 놓여 살아갑니다. 자기가 만든 결과물이 세상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외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타인의 눈길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순간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잃어갑니다. 이 사람 저 사람의 잣대를 모두 반영하다 보면 정작 자기 것이 무엇이었는지 놓치기 십상입니다.
<버드맨>에는 평가의 함정에 대한 경계가 곳곳에 새겨져 있습니다. 분장실 거울에 붙어 있던 메모지가 대표적 장치입니다. “사물은 사물 그 자체이지, 그것에 대해 말해지는 것이 아니다.” 작가 수전 손택의 사상이 압축된 문장입니다. 손택은 작품을 다른 의미로 환원하지 말고 그 자체로 경험하라고 말했는데요. 리건은 이 명제를 자기 자신에게 적용합니다. 자신은 사람들의 평가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저 존재 자체로 있다는 것이죠.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다잡고 무대 위에 오릅니다.
![리건은 사실 사랑받고 싶었다. 외부의 인정을 사랑이라고 착각했을 뿐이다. 타인의 평가에서 자유로워진 그는 이제 자기 예술을 보여준다. [출처=IMDb]](https://investpension.miraeasset.com/common/namoeditor/binary/images/000270/1778561440923.jpg)

<버드맨>은 작가 레이먼드 카버의 시 ‘늦은 단상’을 인용하며 시작해 카버의 단편소설을 연극으로 올리는 것으로 마무리 짓습니다. 그건 두 사람 인생을 겹쳐 보이게 하려는 감독의 치밀한 설계입니다. 카버 역시 리건처럼 오랜 시간 인정을 찾아 헤맨 인물이었습니다. 가난했던 카버는 세상에서 자기 글로 단 한 번이라도 호명되길 원했고, 마흔을 앞두고서야 주목받는 작가가 됐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의 짧고 단호한 문장은 편집자 고든 리시가 무자비한 편집을 통해 만들어낸 것이었죠. 리건이 슈퍼히어로 버드맨의 이미지가 실제 자기 모습과 달라 괴로워한 것처럼 카버 역시 독자가 사랑하는 게 자신의 문장인지 리시의 스타일인지 자문해야 했습니다.
다만 말년에 카버는 동반자 테스 갤러거를 만나고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납니다. 그는 이후의 삶을 ‘덤으로 받은 인생’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기에 그가 유고 시집에 남긴 시 ‘늦은 단상’이 독자의 마음을 더 흔드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 세상에서 사랑받았다고 말할 수 있고, 자신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는 것” 문학 거장이 삶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건 사랑받는다는 감각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버드맨>에서는 연극 무대 후 리건이 슈퍼히어로 버드맨의 환상을 화장실에 남겨두고 떠나는 순간을 통해 그 역시 비슷한 깨우침을 얻었을 것이라고 암시합니다.
사랑과 성취 사이에서의 갈등은 예술가들이 오랫동안 천착해온 주제입니다. 그만큼 둘 사이에 균형을 잡기가 어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질문해야겠죠. 지금 나는 내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혹시 세상의 칭찬을 사랑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 고민하지 않으면 자신의 얼굴로 살아가며 사랑받을 기회를 영영 잃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버드맨>을 볼 수 있는 OTT(5월 6일 기준): 디즈니+
박창영 '씨네프레소(영화 속 인생 상담소)' 저자, 매일경제 금융부 기자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2014년부터 매일경제신문사에서 일해 왔다. 매경닷컴에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 등 OTT 영화를 리뷰하는 코너 '씨네프레소'를 연재하고 있으며 동명의 책을 발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