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 3박자로 글로벌 다극화 시대를 대비하다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자립 3박자로 글로벌 다극화 시대를 대비하다

글 : 한우덕 / 중앙일보 차이나랩 2026-04-24

전쟁은 끝난다. 끝나지 않는 전쟁은 없다. 이번 이란 전쟁도 시간과 형식의 문제일 뿐, 언젠가 끝날 것이다. 그렇다면 전쟁 이후에는 어떤 세상이 올까. 시선은 전쟁 그 이후로 향한다.


많은 전문가가 ‘이번 이란 전쟁의 최고 승자는 중국’이라고 말한다. 이유는 많다. 미국의 전략자산 분산으로 대중국 압박에 구멍이 생겼고, ‘중립적 중재자’를 자처한 중국의 외교 입김을 강화할 수 있었다. 이번 전쟁이 글로벌 지정학 구도를 미국 일극 체제에서 다극주의 체제로 변화시킬 것이라는 점에서, 중국은 지금 속으로 웃고 있다.


유가 불안정은 세계적인 탈(脫)석유 흐름을 가속할 수밖에 없다. 태양광, 풍력, 전기차 배터리 등 신재생 에너지 공급망을 장악한 중국 기업들에는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중국은 비(非)석화 에너지 비율을 20% 이상 끌어올리는 등 에너지 다각화 정책을 실시해왔다. 중국 제조업의 비교 경쟁력은 오히려 강해질 수 있다.


전쟁은 지정학적, 지경학적 구도 변화를 야기한다. 이번 이란 전쟁도 다르지 않을 터, 많은 분석가는 그 변화에서 중국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것으로 말한다. 중국의 시선 역시 ‘포스트 팍스 아메리카나’로 향한다. 이래저래 ‘이번 전쟁의 최고 승자는 중국’이라는 말은 설득력을 얻는다.



전쟁 후, 중국 제조업은 어떻게 될까


그렇다면 중국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까.  


중국이 휴머노이드 로봇, 전기차, 반도체 등 하이테크 제조업 발전에 국가 자원을 집중하고 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인공지능(AI) 분야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내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임금이 높아지고, 고부가가치 영역으로 산업이 발전하면 중국의 기존 제조업은 어떻게 될까? 주변 이웃으로 이전될까? 여전히 ‘세계 공장’으로서의 면모를 지켜낼 수 있을까?’


전통 제조업 분야에서 중국이 갖고 있던 경쟁력이 어찌 될 것이냐에 대한 의문이다. 중국 최고의 ‘소상품(일반 생활용품) 도시’라는 저장(浙江)성 이우(義烏)를 찾은 까닭이다. 이우는 ‘세계 공장’ 중국을 상징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20년 만에 찾은 이우. 시내 푸톈루(福田路)의 거대 소상품 쇼핑센터인 국제상무성(國際商貿城)은 여전했다. 축구장 990개의 면적, 예나 지금이나 상품은 다양했다. 약 210만 종의 소상품이 세계 각지에서 온 바이어를 기다리고 있다. “세계 산타클로스 10명 중 8명은 이우에서 온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중동·아프리카 등에서 왔을 듯한 외국인들이 상가를 분주히 돌고 있다.


‘조잡하지만, 싼 가격’이 이들의 전통 경쟁력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품질 우선이다. “값만 싸다고 팔리지 않아요. 이제는 공급 업체끼리 경쟁이 붙어 최상의 품질만 살아남아요.” 이우 상성그룹 장리(張利) 부총경리의 말이다. 단순 하청공장에 불과했던 세계 공장은 그렇게 기술을 축적해왔다. 공장에 ‘두뇌’가 생겼다는 얘기다.  


다각화와 디지털화로 활로를 만들다


‘일대일로(一帶一路)는 이우에서 시작된다!’.  


시내에서 본 표지판이다. 중국이 이우에서 스페인 마드리드까지 연결되는 화물 열차 노선을 개통한 건 2014년 11월이었다. 1만3000㎞의 여정, 열차는 화물을 가득 싣고 러시아·독일·폴란드·프랑스 등 유럽을 가로질러 스페인으로 이어진다. 이우 소상품은 ‘21세기 철의 실크로드’를 타고 유럽 전역에 뿌려진다. 트럼프가 대중 수입 상품에 관세를 부과하고, 기술 기업 제품 수입을 막는 동안 중국 기업들은 뒷 루트를 통해 제품을 팔고 있다.


미·중 무역 전쟁의 와중에서도 이우의 교역량은 흔들리지 않는다. 지난해 이우의 소상품 수출액은 약 825억 달러. 전년 대비 17.7%나 증가했다. 다각화의 힘이다. 중국은 그동안 중앙아시아·유럽·중동·아프리카까지 연결되는 ‘서향(西向) 물류 네트워크’ 구축에 총력을 기울여 왔다. 글로벌 사우스 전략이다. 이우는 그 정책의 최고 수혜자다. 이우-마드리드 화물 열차는 이를 상징한다. 트럼프가 알면 깜짝 놀랄 일이다.


전자상거래의 시대다. 소비자들은 상점에 가기보다는 인터넷에서 물품을 산다. 도매상으로 구성된 이우 상인들에게는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어떻게 대응할까.


시내 중심가 허름한 오피스 빌딩에 자리 잡은 메이롄후이(美聯荟) 라이브 커머스(전자상거래 라이브 방송)센터. 사무실에 들어가니 서너 개의 ‘쪽방 스튜디오’에서 젊은 남녀가 무엇인가를 손에 들고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틱톡 플랫폼 생방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생방송 하고, 또 재방송하고… 하루 24시간 방송됩니다.” 이 센터 CEO 장원(張汶)의 말이다. 이 회사 고객은 현재 20여 개. 주로 저장성 기업들이다. 4개 스튜디오에서 라방이 이어진다.


이우에서 전통 티베트 물품을 판매하는 단정스얼(丹增次爾) 사장은 “해외 바이어는 여전히 오프라인을 통해 대규모 거래가 이뤄지고, 국내(중국) 소비자 일부를 대상으로는 라이브 방송 등 디지털 유통 거래가 활용되고 있다”며 “전자상거래가 확산하면서 매출은 오히려 더 늘었다”고 말했다. 디지털 시대 젊은이들이 이우로 몰리는 이유다.


자립 3박자가 시작됐다 


이우의 움직임은 정부 정책과 연결된다.


오는 2030년까지의 경제 운용 계획을 담은 ‘15·5 규획’은 ‘완구·가구 등 전통산업의 도태란 있을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내륙으로의 이전, 디지털화를 통한 생산 효율 향상, 등 지원 방안을 제시했다. 한 나라의 경제가 발전하면 임금이 오르고, 저임 노동력에 의존하던 산업은 발전 수준이 한 단계 낮은 국가로 이동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원리가 중국에 이르러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중국 혼자 다 한다. 국내 분업이 국제 분업을 대체하는 형국이다.


지난 3월 5일 열린 중국 전인대에서 리창(李强) 총리가 발표한 ‘2026 정부 업무 보고’에는 ‘국내 대순환을 강화한다(做强国内大循环)'는 말이 나온다.


중국이 쌍순환(双循环)을 얘기한 건 2020년이었다. 국제 순환(수출)뿐만 아니라 국내 순화(내수)도 함께 중시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수출로 먹고사는 데서 벗어나, 국내 시장에서도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한다는 취지다. 결국 내수 시장을 육성하겠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시장 자립'이다. 트럼프의 관세 압박에 대한 중국의 대응책이기도 하다.


단순 임가공 제품은 해외로 가지 않고 국내 내륙으로 이전된다. 자국 생산 제품은 가급적 내수에서 소화한다. 제조 자립, 시장 자립이다. 그런 한편으로는 하이테크 육성을 통해 기술 자립을 시도하고 있다. ‘자립 3박자’다.


이번 이란 전쟁으로 글로벌 지정학은 더욱더 다극화 양상으로 발전할 것으로 예상한다. 글로벌 공급망 분절(分節)은 더 심화할 수밖에 없다. 중국의 전략은 ‘혼자 다 한다’라는 것이다. 하이테크 제조업은 정부가 나서 육성하고, 임가공 산업은 기술 부가하거나 내륙을 이전하고, 장기적으로는 내수만으로도 국내 제품 소화할 수 있게 경제 구조를 짜고 있다. 그게 ‘국내 대 순환’이다. 이우는 그걸 확인시켜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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