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수록 친구가 있어야 건강해지고 행복하다
글 : 한소원 /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2026-04-09
노후에 꼭 필요한 것 세 가지를 꼽으라고 한다면 건강, 돈, 친구를 이야기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필요한 것은 친구다. 건강이 있어야 사람도 만날 수 있고 친구도 사귈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지만 심리학과 뇌과학의 연구에서는 그 방향이 반대로 나온다. 친구가 있어야 건강해지고 행복하다는 것이다. 널리 알려진 하버드대학교의 연구(하버드 성인 발달 연구, 2022)에 따르면 80대의 건강과 행복을 예측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유전자도 아니고 물질적 성공도 아니고 50대 인간관계의 질이다.
“노후 준비=돈”이라고 생각해 왔던 공식도 바뀌고 있다. 우리나라는 수명이 급격히 늘었고 부모 부양의 유교 전통이 현대사회에 들어서 퇴색된 가운데 노후 빈곤 OECD 1위라는 불명예를 가지게 되었다. 효를 강조하고 노인을 공경하는 문화라고 자랑하던 것이 전혀 실속 없는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사회의 안전망이 갖추어지기 시작하고 노후에 대한 의식도 바뀌면서 은퇴를 준비하는 중장년층은 단순히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고 있다.
WHO에서 ‘외로움’을 세계 보건 위협으로 규정할 만큼 외로움이 사회적 문제로 부각하고 있다. 2025년 6월 WHO는 전 세계 인구 6명 중 1명이 외로움을 경험하고 있으며, 특히 10대 청소년과 노인층이 고립 상태에 있는 경우가 많다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외로움은 고혈압·심장병·뇌졸중·당뇨 등 신체질환과 우울증·불안증 등의 정신적 질환을 높인다. 영국과 일본에서는 외로움·고독 담당 장관을 임명해 국가 보건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

아직 인생에서 사랑할 사람들을 다 만나지 않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사람인 것이다. 친구가 있어야 한다. 절친이 아니라도 같이 밥도 먹고 수다도 떨 동네 친구, 운동이나 취미활동을 같이 할 동호회 친구도 좋다. 나이가 같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가족, 친지도 친구가 될 수 있다. 오래된 친구만 고집할 필요도 없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우리는 변화하고 예전에 친한 친구였다고 해도 이제는 상황이 다를 수도 있다. 새로운 친구도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움직임이 많지 않은 정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농경사회였고 대가족이 같은 지역에 사는 경우도 많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상황이 다르다. 새로운 직장을 위해 다른 나라로 갈 수도 있고 국내에서도 새로운 기회를 찾아 옮기는 경우가 많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흐려진 지 오래다. 나이가 들어서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친구를 사귀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나이 들어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이 마냥 쉽지만은 않다. 어릴 때는 친구 사귀기가 쉬웠던 것 같다. 학교에서 같은 반에 있기만 해도, 점심만 같이 먹어도, 나가서 축구만 같이 해도 친구가 되었다. 어떻게 나이가 들어가면서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바로 나 스스로가 남이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남을 알아주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애덤 그랜트 펜실베이니아 경영대(와튼 스쿨) 교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 사상가 중 한 명이며 <기브앤테이크> <싱크 어게인> 등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그런 애덤 그랜트도 젊은 시절 첫 번째 강연에서 혹평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미국 국무부에서 장성들을 상대로 한 강연이었다.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열심히 발표했으나 장성들은 “우리가 배울 것보다 여기에 앉아 있는 장성들에게서 이 젊은 강사가 배울 게 더 많다”는 평을 했다. 두 번째 강의를 할 때 그가 바꾼 것이 한 가지 있었다. 가르친다기보다 그 장성들의 경륜과 지혜에서 배운다는 태도로 그들에게 이야기할 기회를 준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남이 내 이야기를 듣고 남이 내 이야기를 해주는 것도 좋아한다. 나를 알아주고 인정해 주면 그 사람까지 높이 평가한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패션 업계 거물인 미란다 프리슬리가 주최한 파티 장면이 있다. 그녀의 비서 역할은 파티에 초대되어 온 사람들의 얼굴, 이름과 관심사를 외우는 것이다. 누군가 저쪽에서 다가오면 보스인 미란다의 귓가에 그 사람의 이름과 기본정보를 알려줘 손님을 아주 친근하게 맞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비서의 중요한 업무다. 그만큼 그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고 알아주는 것이 관계에서 중요한 것이다.
긍정적이고 재미있는 사람 되기
친구들 중에 맛집을 간다거나 여행을 간다거나 할 때 솔선수범해서 총대를 메는 사람이 있다. 새로운 걸 찾아내고 재미있는 공연, 즐거운 활동을 계획한다. 그 친구만 있으면 모임이 즐겁다. 또 그런 계획은 하지 않더라도 분위기를 맞추고 긍정적인 사람이 있다. 남이 수고하는 것을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만나서 즐거운 사람은 일단 긍정적인 사람이다. 내가 그 사람과 있으면 나까지 더 멋진 사람이 되는 것 같은 사람이 있다.
그런가 하면 끊임없이 불평불만을 이야기하는 사람, 만나면 나도 힘이 빠지고 기분이 나빠지는 사람은 만나고 싶지 않다. 정서는 전염된다. 나를 비난하지 않더라도 계속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은 나를 부정적으로 만든다. 나이가 들면서 자기 생각이 점점 더 확고해지고 고집이 생기기도 한다. 상대가 불편해하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지적을 하고 비난하는 것이 자기의 공헌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애써 계획한 활동에 뭔가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만 그럴 때 문제를 지적하고 비판하는 사람은 만나고 싶지 않다.
나타나는 사람 되기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특성이 점점 귀해진다. 온다고 하면 나타나는 사람이다. 예전에 약속시간을 잡아 놓고 그 장소에 나타나지 않으면 바람맞았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표현을 이제는 듣지 못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약속시간이 가까워져도 문자 하나로 급한 일이 생겨서 못 간다고 하면 바람맞힌 것이 아닌 것이다.
오지 않는 사람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은 80년대 드라마에나 나오는 일이다. 하지만 이제는 약속시간 1분 전에 통보하고 나타나지 않는 것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너무나 당연한 성향이지만 나타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관계의 가장 기본이다.

세상에 먼저 관심을 보이기
가끔씩 나에게 숙제를 내주는 친구가 있다. 외롭고 울적할 때 이야기를 했더니 그 친구는 위로를 하지도 않고 생각을 바꾸라고 지적하지도 않고 숙제를 내주었다. 2주 후에 영상통화를 하기로 하고 그때까지 매일 하라는 숙제였다. 하루에 한 명씩 새로운 사람에게 말을 걸라는 것이다. 그래서 좋다, 해보자 마음먹고 매일 누군가 새로운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이 나의 목표가 되었다.
그럼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 안 되었다. 숙제를 해야 하기 때문에 어디로든 나가야 했다. 직장에는 이미 아는 얼굴들만 있기 때문에 직장에 가는 것만 가지고는 숙제를 할 수 없었다.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말을 붙이는 것이 이상해 보이지 않는 상황이어야 했다. 그 낯선 사람이 관심이 있을 만한 이야기를 찾아야 했다. 동네 텃밭에 나가서 일하고 계신 이웃에게 말을 붙였다.
“이건 모종을 심으신 건가요? 씨를 뿌리신 건가요?”
“엄청 잘 자라네요. 물을 얼마나 자주 주세요?”
매일 텃밭에만 갈 수는 없어서 다른 곳도 찾아야 했다. 커피숍 사장님은 이미 잘 알기 때문에 숙제에 포함이 안 되었다. 체육관에 가서 말을 붙이면 열심히 운동하고 있는 사람들은 싫어한다. 숙제를 하기 위해 장을 보러 재래시장에 갔다. 미나리를 사면서 조리법까지 물어보았다가 사장님이 그것도 모르냐고 짜증을 내셔서 기가 죽어 나오기도 했다.
2주 동안 숙제를 하느라 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을 배웠다. 말할 기회를 찾아야 했기 때문에 걸어가면서도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저 사람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짜증을 내신 분도 계셨지만 숙제를 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상처받을 필요도 없었다.
평생지기 벗이 있다면 행복한 일이다. 그러나 인생이 길어지고 사회가 역동적으로 변하면서 항상 곁에 있고 나를 언제나 이해하는 친구만을 찾을 수는 없다. 사회적인 연결은 한번 만들어진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느슨한 관계, 약한 사회적 연결도 충분히 우리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 준다.
그때 친구가 내준 기간인 2주는 지났지만 나는 가끔 스스로 그 숙제를 한다. 마음이 지나치게 가라앉고 외롭다는 생각이 들면 밖으로 나간다. 내가 세상에 관심을 갖고 있으면 사람들이 궁금해진다. 그러다가 오래된 친구에게 전화를 하기도 하고 외국에 있는 친구에게 안부 문자를 보내기도 한다. 여럿이 있는 톡방에 오늘 왜 이렇게 외롭니 하고 한 줄 글을 남길 때도 있다. 작은 관심과 사회적 연결은 내가 먼저 손을 뻗는 것에서 시작한다.
한소원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주립대학에서 인지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오클라호마주립대학 심리학과 교수로 10여 년간 연구하며 학생들을 지도한 뒤, 현재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인지과학과 인간공학심리학, 정서과학 등을 강의하고 있으며, 특히 뇌 가소성, 심리학과 인공지능, 인간-로봇 상호작용, 스마트 에이징 등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나이를 이기는 심리학>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