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만으로 살아본 썰 풉니다 (부제: 생활비와의 전쟁)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연금만으로 살아본 썰 풉니다 (부제: 생활비와의 전쟁)

글 : 조성환 / 산업정책연구원 연구교수, 경영학 박사 2026-04-10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출근 시간을 확인했지만, 지금은 통장 잔액은 물론 매월 들어오는 연금과 이번 달 지출을 먼저 떠올린다. 은퇴를 하고 나니 시간은 넉넉해졌지만, 돈은 오히려 더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30년 동안 개인재무설계 전문가로서 고객들에게 연금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강하게 강조해왔 던 나로서는, 언행일치라는 측면에서 나름 철저하게 연금을 준비해왔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금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예상보다 훨씬 더 현실적인 계산 위에 서 있는 삶이었다. 


나는 지금 퇴직연금과 IRP만으로 매월 일정한 금액을 연금으로 받고 있다. 개인연금과 연금보험도 따로 준비해두었지만, 아직 개시하지는 않았다. 당장은 퇴직연금과 IRP에서 나오는 연금으로 충분하다고 판단했고, 몇 년 후 국민연금까지 더해지면 생활비는 더욱 여유로워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족하다면 그때 가서 개인연금과 연금보험을 개시해 연금액을 늘릴 계획이었다. 



연금으로 생활비 지출하며 깨달은 사실 


하지만 실제로 살아보니 ‘충분하다’는 기준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결국 ‘생활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은퇴 후 처음 맞이한 한 달, 나는 지출을 꼼꼼히 기록해보기로 했다. 연금이 넉넉하지는 않더라도 부족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막상 하나하나 적어보니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주거비였다. 이미 집은 마련되어 있어 월세 부담은 없었지만, 전기료와 가스비, 관리비 등 각종 공과금은 매달 빠짐없이 나갔다. 예전에는 크게 의식하지 않았던 비용이었지만, 이제는 ‘고정비’라는 이름으로 가장 먼저 머릿속에 자리잡았다. 


다음은 식비였다. 재직 시절에는 바쁜 일정 탓에 외식이 잦았고, 비용에 대해 깊이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그러나 은퇴 후에는 집에서 식사하는 횟수가 늘고 장을 보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그럼에도 식비는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잘 먹어야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에 더 좋은 식재료를 고르게 되면서 식비는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아내는 쌀이 빨리 떨어진다며 웃으며 핀잔을 주곤 한다. 


가장 크게 체감된 항목은 의료비였다. 재직 중에는 회사의 복지제도를 통해 상당 부분 지원을 받았기에 체감하지 못했던 비용이다. 하지만 은퇴 후에는 정기검진, 약값, 병원 방문 비용을 온전히 스스로 부담해야 했다. 특별히 큰 병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 정도라면, 앞으로 나이가 더 들었을 때는 어떨지 은근한 불안이 밀려왔다. 


여기에 자녀 교육비도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했다. 두 자녀 중 둘째가 아직 대학에 재학 중이라 등록금과 생활비 지원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과거에는 회사에서 일정 부분 지원해주던 비용이 이제는 온전히 개인 부담이 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크게 느껴졌다. 


이외에도 통신비, 교통비, 경조사비, 부모님 생활비, 그리고 소소한 여가비용까지 더하면 한 달 생활비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연금 수령액과 비교해보면 더욱 그렇다. 몇 달을 이렇게 살아보니 한 가지 분명해졌다. 


연금은 ‘부족하지 않게 살아가는 돈’이 아니라, ‘조절하며 살아가야 하는 돈’이라는 사실이다. 재직 시절에는 돈이 남으면 저축하고, 부족하면 더 벌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추가 소득을 만들 수 있는 선택지는 제한적이고,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출을 이해하고 조절하는 것이다. 


생활 방식을 바꿀 결심


그래서 나는 생활 방식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다. 불필요한 지출 항목을 정리하고, 외식 횟수를 줄였으며, 충동적인 소비를 의식적으로 피했다. 대신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저렴하고 질 좋은 교육과 운동 프로그램을 찾아 참여하고, 등산과 독서를 일상으로 만들었다. 의미가 크지 않은 모임은 정리하고, 모임이 필요한 경우에는 비용 을 합리적으로 나누는 원칙도 세웠다. 


흥미로운 점은, 사회적 지출이 줄어든다고 해서 삶의 만족도가 반드시 낮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연금 생활을 하며 또 하나 깨달은 것은, 

“돈의 크기보다 흐름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큰 돈이 한 번에 들어오는 것보다, 매달 일정하게 들어오는 수입이 훨씬 큰 안정감을 준다. 연금은 단순한 소득이 아니라 삶의 리듬을 만들어주는 장치였다. 매달 같은 날 통장에 입금되는 금액을 보며, 나는 이 삶을 지속할 수 있겠다는 작지만 확실한 안도감을 느낀다. 


돌이켜보면, 은퇴 전의 나는 연금의 ‘총액’에만 집중했다. 얼마를 모을 것인가, 얼마를 받을 것인가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연금의 ‘사용 방식’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같은 금액이라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삶의 질은 전 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연금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핍의 삶도, 풍요의 삶도 아니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스스로 균형을 찾아가는 삶이다. 오늘도 나는 연금계좌를 한 번 더 들여다본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조용히 묻는다. 


“이번 달은, 잘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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