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도 살던 곳을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아파도 살던 곳을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

글 : 이지희 / 전국노인주거복지시설협회 사무국장, 수원여대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 2026-04-10

2026년 3월 27일 보건복지부가 추진해 온 ‘지역사회 통합돌봄’ 제도가 전국적으로 시행되었다. 의료·요양·건강관리·일상생활 지원 서비스를 지역사회 중심으로 통합 제공하여, 살던 집과 지역에서 필요한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돌봄이 필요해도, 익숙한 삶의 공간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정책인 것이다. 



통합돌봄, 집에서 계속 살 수 있게 하는 정책의 시작


우리 사회는 지금 지역사회 통합돌봄(Community Care)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통합돌봄은 단순히 서비스를 확대하는 정책이 아니라 ‘돌봄이 필요해도, 살던 곳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이를 위해 정부와 지자체는 방문요양, 방문간호, 퇴원환자의 지역사회 복귀 지원, 사례관리뿐만 아니라 주거환경 개선(집수리)까지 포함한 통합적인 지원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문턱 제거, 안전손잡이 설치, 욕실 개조, 미끄럼 방지 바닥과 같은 주거환경 개선은 단순한 편의 제공을 넘어 노인이 살던 집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필수 조건이다.




노인들이 말하는 단 하나의 바람


필자의 부모님은 70대이시다. 한 곳에서 30년 넘게 사시다가 몇 년 전 인근으로 이사를 하셨다. 이사의 이유도 특별한 것이 아니라, 기존 아파트가 재개발에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멀리 떠난 것도 아니다. 살던 집에서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되는 가까운 곳이었다. 얼른 재개발이 끝나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이 동네가 좋아. 여기서 계속 살고 싶어.” 


이 말은 단순한 고집이 아니다. 오랜 시간 축적된 삶의 흔적이 담긴 공간을 떠나고 싶지 않다는 의미다. 익숙한 집, 매일 지나던 길, 얼굴을 아는 이웃들, 그리고 몸이 기억하는 생활의 동선까지. 이러한 요소들은 단순한 환경이 아니라 노인의 삶 그 자체를 구성하는 기반이다. 그래서 노인에게 ‘이사’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삶의 연속성이 단절되는 경험이 될 수 있다. 



시설에서도 나타나는 ‘이동 거부’


이러한 경향은 자택에 거주하는 노인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실버타운이나 요양시설에서도 건강상태의 변화에 따라 다른층으로 이동하거나, 케어동으로 옮겨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러나 이때 많은 노인들은 이동을 거부한다. 이미 그 공간 안에서 일정한 생활 리듬을 만들고, 익숙한 환경에 적응하며, 자신만의 생활 방식을 형성했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가 일본의 오래된 유료노인홈을 방문했을 때 시설 관계자에게 운영상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 물은 적이 있다. 그 중에서 인상 깊었던 답은 ‘입주자의 거주 공간 이동’이었다. 입주자의 건강상태가 변하면 현재 거주하는 방에서 개호동으로 이동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수개월에 걸쳐 설득을 반복한 끝에야 이동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자신이 익숙해진 공간을 쉽게 떠나지 않으려는 욕구는 나라가 달라도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사례다. 




더 좋은 곳’보다 ‘익숙한 곳’


우리는 흔히 더 나은 돌봄을 위해 더 좋은 시설이나 더 편리한 환경으로 이동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노인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시설의 물리적 수준보다 내가 익숙한 공간인지, 내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인지, 내가 일상을 지속할 수 있는지 이다. 


실버타운에 입주하는 입주자들이 본인이 익숙한 가구와 물건을 함께 가져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금 살던 곳에서, 지금처럼 살고 싶다’ 이 단순한 바람을 지켜주는 것이야말로 통합돌봄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다. 지역사회 통합돌봄의 시행은 이러한 변화를 향한 중요한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노인이 지역에서 생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버타운과 같은 시설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는 노인도 존재한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할 때, 시설에 입주한 노인 역시 ‘익숙해진 공간에서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노인장기요양보험과의 연계를 통해 시설 내에서도 지속적인 돌봄이 가능하도록 하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동’이 아닌 ‘머묾’을 가능하게 하는 것, 그것이 앞으로 노인주거와 돌봄 정책이 지향해야 할 방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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