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화=금? 중국의 금 사랑을 만든 글로벌 화폐 전쟁
글 : 한우덕 / 중앙일보 차이나랩 2026-02-23
상하이는 시내 황푸(黃浦) 강을 경계로 포동(浦東)과 포서(浦西)로 나뉜다. 포서 쪽 강변에는 고색창연한 건물이 줄지어 서 있다.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와이탄(外灘)이다. 그곳 ‘와이탄 15번지’ 건물에는 두 기관이 입주하고 있다. 중국외환거래소(中國外汇交易中心)와 상하이황금거래소(上海黄金交易所)가 그들이다. 한 지붕 두 가족인 셈이다.

외환거래소와 황금거래소가 왜 같은 건물에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추적하면 중국의 위안화 국제화 전략과 만나게 된다.
중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 교역으로 얘기를 풀어보자.
중국은 작년 사우디로부터 약 8800만t의 원유를 수입했다. 전체 원유 수입의 약 15% 수준이다. 시세를 고려하면 대략 670억 달러(약 95조원). 사우디는 이 중 약 25%(167억 달러) 정도를 달러가 아닌 위안화로 결제한 것으로 추산된다. 중국이 구축한 CBDC(중앙은행 디지털 화폐) 기반 결제 플랫폼인 ‘mBridge(엠브리지)’를 통해 디지털위안화(e-CNY)로 결제가 진행됐다. ‘페트로 위안’ 거래다. 중국과 사우디의 원유 거래액 중 약 167억 달러가 달러망(SWIFT)을 거치지 않고 이동한 셈이다.
이 거래의 핵심은 위안화의 신용에 있다. 석유를 팔아 확보한 위안화를 쓸 곳이 없다면, ‘페트로 위안’은 거래 자체가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으로서는 사우디 당국에 ‘위안화가 있으면 다른 국제 결제에서도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다’는 걸 확신시켜줘야 한다.

위안화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전략
위안화 가치를 어떻게 보증할 것인가? 그 해답으로 나온 게 바로 금(金)이다. ‘석유 판매로 얻은 돈(위안화)을 바로 금으로 바꿔 지급해주겠다. 위안화는 못 믿어도, 금은 믿을 수 있을 것 아닌가’라는 논리다. 중국이 상하이에 금 거래소를 설립하면서 굳이 외환거래소 건물에 입주한 이유다(지금 금 거래의 실제 업무는 다른 건물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한 지붕 두 가족’은 상징성이 강하다).
지난 2002년 설립된 상하이황금거래소(SGE)는 중국 위안화 국제화 전략의 핵심 포스트. 2014년 외국인 투자가들에게도 개방되면서 국제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가장 큰 특징은 서방의 금 거래소가 장부상의 숫자로만 오가는 ‘종이 금(Paper Gold)’ 또는 선물 거래 위주라면, 상하이 금거래소는 실물 중심이라는 점이다.
중국은 외국인이 위안화만 가져오면 상하이에서 즉시 금으로 바꿔 나갈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지난해 실제 창고에서 찾아간 금은 1500~2000t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물 인도 기준 세계 최대 금 거래소다.
중국은 상하이 금 거래소를 통해 “위안화는 곧 금”이라는 공식을 각인시키려 한다. 위안화의 국제적 지위를 끌어올리겠다는 심산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전체 석유 판매의 약 25%를 위안화로 결제했다는 건 곧 중국의 셈법이 통하고 있다는 얘기다. 사우디는 석유 수출로 얻은 위안화로 중국 물품을 수입하고, 중국 내 사업에 투자도 한다. 나머지는 금으로 바꿔 사우디로 가져가거나 상하이에 보관하고 있다. UAE, 이란, 베네수엘라 등도 속속 ‘페트로 위안화’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달러없는 원유 거래가 늘고 있다는 얘기다.

기를 쓰고 금을 사 모으는 이유
자, 이제 금 얘기할 때가 됐다.
여전히 광풍(狂風)이다. 국제 금값은 온스당 5,000달러를 넘어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금은 언제나 글로벌 금융 패권 전쟁의 한가운데 있었다. 19세기 대영제국의 파운드화도, 20세기 ‘팍스 아메리카나’를 지탱한 달러화도 그 신뢰의 뿌리는 결국 금이었다. 지금도 다르지 않을 터, 국제 금 시장에서는 미국과 중국이 사활을 걸고 벌이는 ‘글로벌 화폐 전쟁’의 화약 냄새가 짙게 풍겨온다.
중국의 현재 공식 금 보유량은 약 2,306t. 미국의 8,133t에 비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증가 속도는 가히 ‘파죽지세(破竹之勢)’다. 지난 2022년 10월 이후 꾸준히 매입량을 늘려왔다. 현재 중국의 보유 외환 내 금 비중은 약 8.5% 수준. 유럽(60~70%)에 비하면 여전히 낮다. 이는 역설적으로 ‘앞으로 더 사들일 공간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중국은 이 비중을 조만간 3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미국 국채는 ‘헌신짝’이다. 한때 1조3,167억 달러(2013년)를 쥐고 미국의 뒷배를 자처했던 중국이다. 하지만 트럼프 1기 무역 전쟁이 발발한 2018년 이후 중국의 미 국채 보유량은 60%나 급감하며 현재 6,000억 달러 선까지 내려왔다. 달러를 포기하고 금을 선택했다는 얘기다.
금을 더 많이 모아야 할 이유는 또 있다. 치밀하게 위안화 국제화를 준비하고 있는 중국은 석유 등의 거래에 사용할 국제 결제 통화를 주도적으로 만들고 있다. 통화 이름 ‘유닛(UNIT)’이 그것. 유닛은 금을 기반으로 한 통화다. 가치의 40%를 실물 금에, 나머지 60%는 브릭스 회원국(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 통화 바스켓에 연동했다. 금 포지션이 많은 나라가 유닛 시스템 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마련. 중국과 브릭스 회원국들이 기를 쓰고 금을 사 모으는 이유다.
‘유닛’ 통화의 태동은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방이 러시아의 보유외환을 동결하는 ‘금융 핵 공격’을 가하자, 브릭스 국가들은 전율했다. “달러에 의존하다간 우리도 언제든 사냥감이 될 수 있다”는 공포가 대안 통화 시스템 구축 논의에 불을 지핀 것이다. 그 결과물이 바로 블록체인 기반의 ‘유닛’이다. 중국 언론은 현재 유닛이 이론 단계를 지나 ‘실전 테스트’ 국면에 진입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지금은 낯설지만, 언젠가 달러만큼이나 자주 접하게 될지도 모른다.
미국은 반격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24년 12월 “브릭스 국가가 달러를 대체하려 한다면 그들의 수출품에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미국 중심의 금융 질서에 도전하는 자는 시장에서 퇴출하겠다는 엄포다. 그는 달러 패권이 무너지면 미국의 부채 체제 자체가 붕괴할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중국이 굴복할 리 없다. 정상 거래뿐만 아니라 감춰진 거래망을 통해 금 모으기에 나선다. 서방 전문기관들은 중국의 실제 금 보유량이 5500t에서 1만t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랴오닝(遼寧)성과 후난(湖南)성 등지에서 잇달아 발견된 초대형 금광들은 중국 위안화 국제화 전선에 천군만마가 되고 있다.

글로벌 화폐 패권에 도전하다
중국인들의 '금 사랑'은 지독하다. 세계금위원회(WGC)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25년 중국인들은 약 432t의 금을 사들인 것으로 집계됐다. 전 세계 금 거래의 3분의 1 수준이다. 자국 정부가 금 매입에 나서는 것을 알기에, 중국 개인도 금 모으기에 동참하고 있다. WGC는 중국인들의 금 매입이 국제 금시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상하이 금 거래소를 통해 글로벌 화폐 패권에 도전하고 있다. 금 기반의 통화를 만들어 ‘위안화 국제 결제 시스템’을 완성하고자 한다. 그 의지가 통합되는 곳이 바로 금이다. 요동치고 있는 국제 금 시세는 이를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쉽게 끝나지 않을 전쟁이다.
한우덕 중앙일보 차이나랩
저널리즘과 아카데미즘의 경제를 자유롭게 오가는 중국 경제 전문가. 1989년 한국외국어대학 중국어과를 졸업했다. 한국경제신문에 입사하여 국제부 · 정치부 · 정보통신부를 거쳐 1999년부터 2006년까지 베이징과 상하이 특파원으로 근무했다. 상하이 화둥사범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중앙일보 차이나랩 선임기자로 두 눈 부릅뜨고 한국이 중국과 함께 살아갈 길을 모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중국의 13억 경제학', '세계 경제의 슈퍼엔진 중국', '상하이 리포트', '뉴차이나, 그들의 속도로 가라', '경제특파원의 신중국견문록', '차이나 인사이트 2021'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뉴차이나 리더 후진타오' 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