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아프고 오래 사는 데에 도움되는 의외의 조건
글 : 한혜경 / 작가, 前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2025-12-12
“나이 들면 돈도 돈이지만, 친구가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어떤 모임에서 만난 40대 회사원 A씨가 말했다. 그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최근에 일을 그만두신 아버지 때문이라고 한다.
A씨의 아버지는 지방 도시에서 조그만 회사를 운영하다가 최근에 사업 부진을 겪으면서 사업 체를 완전히 정리했다. 자녀들은 평생 애쓰신 아버지를 위해 ‘은퇴식’도 열어드리고 이제부터는 돈 걱정하지 말고 친 구들하고 놀러 다니면서 마음 편히 지내시라는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다행히 아버지가 건강도 좋은 편이라 평소에 좋아하는 친구들 만나면서 노년을 활기차게 보낼 수 있을 거라고 낙관했다.

친구와 교류가 없는 노후의 삶, 대책이 필요하다
하지만 퇴직 직후 A씨 아버지의 일상은 기대와 달랐다. 무엇보다 외출을 거의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동안 많이 피곤하셨나보다,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건 친구 만나는 걸 그렇게 좋아하던 아버지가 친구들을 통 만나지 않는 것 이었다. 친구들이 ‘점심 먹자’는 전화를 해와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거절하기 일쑤였다. 가족들은 ‘아버지가 우울증에 걸리셨나, 혹시 치매 초기?’ 라며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보다 못한 A씨의 어머니가 ‘왜 친구들을 만나지 않나? 아침에도 점심 같이 먹자는 전화가 오 지 않았나? 왜 나가지 않나?’라고 따져 물었다. 묵묵부답이던 아버지가 힘들게 한마디 했다. “이제는 친구들한테 점심 살 형편도 못 되니까 나가고 싶지 않다... 친구들한테 이런 모습 보 이기 싫다.”
A씨의 어머니가 ‘그동안 당신이 점심을 샀으니까 이제는 친구들이 살 수도 있고, 아니면 ‘n분 의 1’을 해도 되지 않나? 요즘엔 다 그렇게 한다.’고 아무리 설득을 해도 A씨 아버지는 꿈쩍 도 하지 않았다. A씨의 어머니는 당신까지 우울증에 걸릴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결국 어머니와 자녀들이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마련했다. 삼남매가 돌아가면서 아버지에게 ‘친구들과 식사하세요.’라며 용돈을 보내드리고, 어머니가 계 속 설득하고, 때마침 아버지 친구분들도 ‘점심 간단히 먹고, 산책하자.’라며 집까지 찾아와 채 근하면서 최근에야 아버지가 친구들을 만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참 다행이네요. 아버지가 많이 좋아지셨겠네요?” 나의 물음에 A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네. 다시 젊어지셨어요. 무엇보다 한동안 웃지도 않고 무표정하던 아버지가 잘 웃으시는 걸 보면서 신기했어요... 사람이 혼자서는 웃을 수가 없구나, 친구를 만나야 웃게 되는구나, 새삼 느꼈죠. 친구가 정말 중요하더라고요.”

친구가 많아야 덜 아프고 오래 산다
그렇다. 맞는 말이다. 젊었을 때는 우정도 사치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돈과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데, 당장 나 살기 바쁘니 친구에게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던 것 이다. 하지만 나이 들고 보니 친구는 정말 소중하다. 가족도 중요하지만, 가족이 줄 수 있는 기쁨과 친구가 줄 수 있는 기쁨의 종류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
최근에는 뇌 과학이 발전하면서 친구가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많이 나오고 있다. 즉 친구가 많을수록 덜 아프고 오래 산다는 것이다. 친구가 스트레스를 줄이고 면역력을 높여주며, 암, 심장병, 치매 발병률을 낮춰준다는 연구 결 과도 많이 있다. 의 저자 로빈 던바는 마음 터놓을 가까운 친구가 있으면 자살이 크게 줄어들 수 있 으며, 새벽 4시에 전화할 수 있는 친구만 있어도 자살은 줄어들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친구는 행복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하버드대에서 85년간 2500여명의 삶을 추적하여 인간의 행복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게 무엇인가? 돈인가, 직업인가, 명예인가, 학벌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책, 의 결론은 이것이다. ‘인간 행복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좋은 관계‘이다. 힘들 때 손잡아줄 사람이 있 는가? 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면 당신은 행복하다.’
이 점에서 요즘 ‘이런 친구 손절하라’ ‘나이 들면 이런 사람 멀리 하라’는 유튜브를 볼 때마다 안타깝다. 전에는 손절하고 싶은 사람도 몇 있었으나 퇴직과 함께 그런 사람들이 사라졌다. ‘혹시 그들이 나를 손절한 건가?’ 싶을 정도다.
어쨌든 1인 가구가 늘어나는 현실에서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하나 친구와 손절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손절은 커녕 어떻게 하면 좋은 친구를 더 많이, 더 자주 만날 수 있을까 궁리한다. ‘좋은 어른’으로 늙어가고 있는 친구나 선배들, 나를 웃게 하는 후배들에게 나는 어떤 친구가 되어야 할까, 고심한다.

좋은 친구 만나려면?
지난달에 만난 후배 J는 직장동료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던 어느 날, 문득 자신이 어떤 경우 에 처하더라도 자기를 믿어줄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그들의 이름을 모두 적어본 결과, 자신을 믿어줄 사람이 60명이나 된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 때부터 직장 동료 때문에 속상하던 마음이 한결 가라앉았다고 했다.
내가 진심으로 감탄하면서 “와, 60명이나? 대단한데?... 그런데 혹시 그런 경우가 생기면 나도 J를 믿을거야.”라고 말했을 때, J는 이렇게 대답했다. “네 알아요. 선배님 이름도 적어놓았는 걸요.”
그때 깨달았다.
J가 어떤 경우가 닥쳐도 자신을 믿어줄 사람이 60명이라고 믿는 건 자기 자신이 60명에 대해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는 것을. 자신이 60명이나 되는 사람들에게 깊은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도 그럴 거라고 믿는 것이다. J를 통해 배웠다. 좋은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힘들 때 손잡아줄 사람을 가지려면 나 자신이 먼저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어야 한다는 것을. 나를 웃게 하는 친구를 가지려면 내가 먼저 그들에게 웃음을 줘야 한다는 것을.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도 말했다고 한다.
“친구들의 도움이 우리를 돕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이 도와줄 것이다’라는 믿음이 우리를 돕는다.”
한혜경 작가, 前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책임 연구원과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나는 매일 은퇴를 꿈꾼다> <남자가 은퇴할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의 저서를 통해 베이비붐 세대 은퇴자가 겪는 다양한 이야기를 써온 작가이기도 하다 최근의 저서로는 본 사이트에 연재하고 있는 ‘나의 은퇴일기’ 내용을 토대로 한 <은퇴의 맛>, 저자가 진행하고 있는 ‘자기 역사 쓰기 프로그램’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기꺼이 오십, 나를 다시 배워야 할 시간>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