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은퇴 자금은 얼마나 모아야 하나
글 : 신파람 / 공학박사, 객원교수 2025-08-26
은퇴 자금을 모으긴 모아야 하는데, 도대체 얼마를 모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10억원이면 된다', '아니다 100세 시대이니 그 보다 훨씬 더 많아야 한다' 등 의견이 분분합니다. 예전에 제가 읽은 어느 게시글에서는, 20억원대의 부동산과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노후가 너무 불안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여기에 일부 블로그에서는 금융 문맹 수준의 글을 퍼뜨려서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의하면 은퇴한 부부의 적정 생활비는 월 336만원으로 조사되었는데, 60세에 은퇴하여 90세까지 살려면 360개월의 생활비가 필요하므로 단순하게 336만원을 360개월에 곱하여 12억원의 돈이 필요하다는 내용입니다.
제가 이 글을 보고 정말 어이가 없었습니다. 돈을 금융상품에 투자하면 수익이 발생한다는 기본 개념조차 모르는 셈법입니다. 연 2%의 예금 이자이든 연 10%의 주가 상승이든 돈에서는 수익이 발생하고, 그 수익이 원금에 더해진 금액에 대해 또 수익이 발생하는 것이 복리의 원리인데 이를 전혀 모르는 것 같습니다. 마치 월급쟁이가 10억원을 모으려면 30년 동안 매달 278만원 씩 저축해야 된다는 초등학생 수준의 경제 개념입니다.
매달 336만원의 월급을 받아서 그 달에 전부 써 버리려면 360개월 동안 총 12억원이 필요한 것은 맞습니다. 자산이 0원이므로 자산이 창출하는 금융소득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산이 12억원이 있는데 360개월 후에는 그 자산이 0원이 되도록 인출을 설계하면, 월 336만원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인출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12억 원의 자산은 내가 가만히 있는 순간에도 계속 수익을 내기 때문입니다.
정말, 얼마가 필요한지 계산해보는 법
실제로 계산을 해 보겠는데, 12억 원의 자산이 있고 이 자산은 금융상품에 분산 투자되어 연 평균 5%의 수익을 낸다고 가정하겠습니다. 그리고 계산을 단순화하기 위해 매년 1월 1일에 1년치 생활비인 4,000만원을 은퇴자산에서 한꺼번에 인출한다고 가정하겠습니다. 그러면 인출 직후에는 은퇴자산이 11.6억원으로 줄어듭니다.
이 11.6억원은 한 해 동안 5%의 수익을 창출해서 다음해 1월 1일에 12.18억원으로 불어납니다. 최초 원금보다 많은 금액입니다. 여기서 생활비 4,000만원을 또 인출하여도 그 다음해 1월 1일에는 12.37억원으로 더 불어납니다. 그렇게 매년 4,000만원씩 계속 뽑아 써도 12억원의 은퇴 자산이 소진되기는 커녕 더욱 불어나서, 30년 후에는 원금의 2배인 24억원이 됩니다. 복리의 마법입니다.
30년 후에 자산이 정말로 0원이 되게끔 하려면 월 644만원씩 인출해야 합니다. 40년 후에 0원이 되게끔 하려면 월 578만원씩 인출해야 합니다. 적정 생활비라는 336만원보다 훨씬 많은 금액입니다.
그러면 월 336만원씩 30년에 걸쳐 인출하기 위한 자산의 금액은 얼마일까요? 6.3억원이면 됩니다. 단순하게 곱해서 계산한 12억원의 절반 정도입니다. 40년 동안 인출하기 위해서는 7억원 정도 있으면 됩니다.
엑셀 말고 쉬운 방법 없나요?
어떻게 이런 계산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해하시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엑셀 프로그램에서 수식을 만들어 계산할 수도 있지만, 이보다 더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대출계산기”를 검색하면 아래 화면과 같이 숫자를 입력하는 계산기가 나옵니다. 이름은 대출계산기이지만 대출금액에는 은퇴자산의 원금을, 대출기간에는 자산이 0원이 될 시점까지의 기간을, 대출금리에는 연 평균 수익률을 입력하면 됩니다. 상환방법은 “원리금균등”을 선택하고, “계산하기” 버튼을 누르면 매달 인출할 수 있는 금액이 계산되어 나옵니다.
대출의 상환과 자산의 인출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길래 대출계산기를 사용할까요? 대출은 은행이 나에게 목돈을 준 뒤, 매달 나에게서 원금의 일부와 이자를 회수해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원금과 이자를 회수해가면 갚아야 할 원금이 점점 줄어들어, 수 십년 후에는 0원이 됩니다.
이번에는 입장을 바꿔서 내가 은행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내가 자산 원금을 누군가에게 준 뒤, 매달 원금의 일부와 이자를 받는다고 하겠습니다. 매월 그렇게 원금과 이자를 받으면 원금이 점점 줄어들어, 약정 기간이 지나면 더 이상 받을 돈이 없어집니다.
즉 자산에서 원금과 이자를 인출하는 계산은 대출금을 상환하는 계산과 똑같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돈을 주는 지의 차이만 있습니다. 그래서 대출계산기의 대출금액, 대출기간, 대출금리를 바꿔가면서 계산해 보면, 은퇴 기간동안 매달 필요한 생활비를 받으려면 얼마의 자산을 모아야 할 지 그 금액을 찾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보다 복잡한 계산, 예를 들어 물가 상승에 연동하여 인출 금액을 늘린다던 지, 자산을 전부 쓰지 않고 어느 정도는 남겨두겠다는 계획을 세운다면 대출계산기로는 안 되고 엑셀 또는 수작업으로 계산해야 합니다.
미국에서 목격한 은퇴자의 풍요로운 모습
은퇴를 하면 갑자기 생활비가 대폭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는 아직 완전한 은퇴를 하지는 않았지만, 매일 출근해야 하는 직장에 더 이상 다니지 않는 반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예전 직장 생활 시절에 비해 생활비가 드라마틱하게 줄지는 않았습니다. 은퇴 전의 생활비가 은퇴 후에도 비슷하게 유지되면서, 70대 이후에 서서히 줄어든다고 예상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 같습니다.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지낼 시기는 은퇴 후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농경시대에서는 육체 노동을 할 수 없는 나이가 되면 퇴물 취급을 받아 자식에게 의존하면서 여생을 보냈지만, AI, 반도체, IT 기술 등으로 고도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신체적 나이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의학의 발전으로 기대 수명도 대폭 늘어났고, 의지만 있으면 은퇴 후에도 공부할 수 있는 자료가 도처에 널려 있고 사회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도 많이 있습니다.
30대에 제가 미국에서 본, 그래서 지금도 제 머리에 남아 있는 은퇴자의 모습은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인간적으로 넉넉한 부자였습니다. 은퇴를 하면 집을 줄여 이사를 가고 차를 팔아서 생활비를 줄이겠다는 우리의 고정 관념과는 다르게, 은퇴자 부부들이 제가 살던 동네에서 제일 좋은 집에 살고 제일 비싼 차를 타고 다녔습니다. 보트도 가지고 있었고 자주 여행도 가시는지 집을 비우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 분들과 이야기를 해 보면 유산을 물려 받은 금수저 또는 사업으로 크게 성공한 케이스가 아닌, 평생 성실하게 일해 오신 근로자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월급을 받아 꾸준히 연금계좌에 납입하여 자산을 불리고, 30년 모기지 (주택 담보) 대출을 꾸준히 갚아 빚 없이 집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것이 그 분들의 공통된 인생 스토리입니다.
은퇴 후 월 500만원 연금소득의 예시
그래서 생활비 수준을 더 높여서 월 500만원이 필요하다면 다른 수입원이 있어야 합니다. 다행히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등 공적연금으로 받는 수입이 있을 것입니다. 이 금액은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어느 정도의 직장 생활을 하였으면 월 100만원 이상은 받을 것입니다.
또한 직장인들은 퇴직금 또는 퇴직연금을 받습니다. 지금 퇴직하시는 분들은 DC형 퇴직연금에 가입할 수 있는 기회와 기간이 적었기에 DB형으로 계산해 보면, 30년 재직 후 최종 연봉 8,000만원으로 퇴직하는 경우 2억원의 법정 퇴직금 또는 퇴직연금을 받게 됩니다. 이 퇴직금을 연 5%의 금융상품으로 운용하면서 30년 후 잔고가 소진되게끔 설계하면 월 107만원을 인출할 수 있습니다. 40년 후 소진되게 하려면 월 96만원 씩 인출하면 됩니다.
그래서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에서 약 200만원을 받고 자산 7억원에서 나오는 336만원과 합치면 월 500만원 이상의 생활비를 쓸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주택연금에도 가입하면 자산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부동산을 현금화할 수 있기 때문에 은퇴에 필요한 금융자산을 대폭 줄일 수 있습니다. 주택연금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자세히 설명하려고 합니다.
예상치 못한 리스크도 고려해야
물론 수명이 길어져서 100세가 넘어서 생존할 수 있고, 연 평균 5%의 수익률이 보장된 것도 아니고, 자식들에게 어느 정도의 유산은 물려주고 싶은 마음도 있고, 예상치 못한 큰 지출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위의 계산은 이런 변수들을 반영하지 않은 계산이라 이대로 준비했다가 생각보다 일찍 은퇴자산이 소진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변수를 반영한 완벽한 계산을 할 수는 없는 것이고, 이런 원리로 은퇴에 필요한 자산 금액을 계산할 수 있으니 이를 각자의 상황과 예상에 맞게 적용하고, 어느 정도의 여유 자금까지 준비하면 큰 구도의 은퇴 계획은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신파람 공학박사, 객원교수
전자공학을 어릴 때부터 좋아하여 초등학교 때 디지털 시계를 제작하였고, 컴퓨터 설계와 기계어 프로그래밍을 독학으로 깨우쳤다.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시스템 반도체 전문가로 미국의 스타트업 회사 및 대기업인 마이크론, SK하이닉스에서 근무한 후, 현재는 국내 대학의 객원교수로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30년 가까이 미국과 국내 연금 계좌에 저축하고 투자하여 10억원의 연금을 달성하였다. 이 과정에서 직접 체득한 투자, 연금, 세금, 건강보험 관련 노하우와 지식 정보를 “신파람”이라는 필명으로 네이버 카페에 게재하여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은퇴 준비는 30년 전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취지의 "신파람의 은퇴준비 오지랖" 이라는 블로그와 카페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