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40만원으로 은퇴 자금 10억을 만든다고?
글 : 신파람 / 공학박사, 객원교수 2024-11-09
누구나 은퇴가 가까워지면 무슨 돈으로 노후를 보낼 지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대부분 50세 정도가 되어야 그 생각이 듭니다. 빠르면 40대에 그 생각을 시작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나이에 노후 준비의 고민을 시작하면, 이미 늦은 겁니다. 노후 준비가 가능은 하지만, 투입해야 할 돈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서 계산을 해 보겠습니다. 매달 40만원 씩 30년 동안 적립하면서 연 10%의 수익을 올리면, 30년 후에는 약 9억원이 만들어집니다. 물론 수익은 복리로 재투자되고, 연금 계좌처럼 세금을 안 내는 계좌에서 적립한다는 가정입니다.
그런데 은퇴 자금 적립의 시작이 10년 늦어서 20년만 적립할 수 있다면, 같은 9억 원을 만들기 위해서는 매달 120만원을 적립해야 합니다. 더 늦어서 10년만 적립할 수 있다면, 매달 440만원을 적립해야 합니다.
30년을 적립할 때는 내가 납입한 원금은 1억4천만원 뿐이고 수익금이 7억6천만 원이 넘습니다. 이 둘을 합쳐서 9억 원이 되는 겁니다. 이것이 복리의 마법입니다. 그런데 10년만 적립한다면 내 돈 5억3천만 원을 넣어야 하고, 수익금은 3억8천만 원에 불과합니다. 남이 만들어주는 수익금을 많이 가져가지 못하고, 내가 번 돈을 그냥 내가 쓰는 셈입니다.
그래서 노후 자금의 준비는 일찍 시작해야 합니다. 큰 돈을 적립하는 것보다, 적은 금액이라고 일찍 적립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우리나라의 정년이 60세이니, 30년을 적립하려면 은퇴 준비는 늦어도 30세 이전에 시작해야 합니다.
미국은 왜 퇴직연금 중도인출을 강력하게 규제하나
저는 33세이던 1997년부터 매달 약 30만원 씩 미국의 연금 계좌인 401(k) 계좌에 납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연봉이 오르면서 납입금도 늘었습니다. 입사 6년 차인 2001년에 연봉이 11만달러로 올랐고, 월 급여의 5%인 450달러, 당시 환율로 60만원 정도를 매달 납입할 수 있었습니다.
2002년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월드컵이 끝나고 얼마 후 저는 이 회사를 퇴사하였습니다. 그 때까지 5년 반 정도를 401(k)에 납입한 것이었는데, 원금과 수익금을 합치니 계좌 잔고가 3만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는 3천4백만 원 정도 되었습니다. 미국에는 법정 퇴직금 제도가 없다 보니, 이 돈이 제가 회사를 6년 다니면서 모은 은퇴 준비의 전부였습니다.
사실 제가 퇴사한 이유는, 당시 불던 닷컴 붐 분위기에 휩쓸려서 창업을 해 보자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투자를 해 주겠다는 사람들이 제 주위에 있었고, 그 사람들이 부추기는 바람에 아무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원대한 꿈을 가지고 퇴사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창업의 결과는 참패였고, 저는 많은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회사 운영비는 투자 받은 돈으로 해결하였지만, 저는 집에 가져가는 돈이 없다 보니 대출을 받아서 생활비를 썼습니다. 집을 담보로 추가 대출을 받았고, 나중에는 고금리의 신용카드 대출도 받았습니다. 이 대출을 다 갚느라 10년은 걸린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힘든 시절에도 건드리지 않았던 것이 401(k)계좌입니다. 건드릴 수가 없던 것이, 59.5세가 되기 전에 401(k) 계좌에서 인출을 하면 손해가 막심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는 중도 인출을 하면 401(k)에 납입할 때 받았던 세금 혜택을 다 물어내야 하고, 거기에 추가하여 인출액의 10%를 벌금으로 내야 합니다. 그러면 인출액의 1/3 정도가 세금과 벌금으로 나가니, 손에 쥘 수 있는 금액은 얼마 안 됩니다.
이렇게 미국은 연금 계좌에서의 중도 인출을 강력하게 규제합니다. 거의 강제적으로 59.5세까지 401k 계좌를 유지하게 합니다. 이것이 많은 미국 사람들을 백만장자로 은퇴하게 하는 비결입니다. 추가 납입을 안 하더라도, 납입한 원금이 복리로 수익을 내면 그 계좌는 계속 자라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 원금에 비해 훨씬 더 큰 수익이 더해집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연금 계좌의 중도 인출 규제가 약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사유로 중도 인출이 가능합니다. IRP 계좌조차도 중도 인출은 안 되지만, 계좌 자체를 해지하고 전액을 인출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니 많은 가입자들이 이런 저런 사유로 은퇴 자금을 중도에 써 버립니다. 그러면 다시 원점에서 시작해야 하니, 그 동안의 시간을 다 잃어버리는 겁니다. 연금 계좌는 절대로 중도 인출, 또는 중도 해지를 하면 안 됩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닥치더라도, 연금 계좌에는 손을 대면 안 됩니다.
두 번째 401(k) 에서 만난 목표 은퇴 펀드
다시 제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 때만 해도 저는 401(k)에 들어 있는 돈을 어느 상품에 투자해야 할 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냥 예금에 넣어 두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직장인 대부분과 비슷한 심정이었습니다. 회사에서 가입할 때 엄청난 분량의 투자 상품 카탈로그와 자료를 주지만, 주식이 무엇인지 채권이 무엇인지 펀드가 무엇인지 전혀 감이 안 와서, 그냥 안전하다는 예금에 넣어 두었습니다.
그래서 제 계좌는 한 동안 큰 수익을 내지 않았습니다. 아쉽지만 그래도 닷컴 버블 붕괴와 서브프라임 금융위기로 인한 손해를 피해갈 수 있었으니 그 점은 위안이 됩니다.
제가 본격적으로 401(k)를 운용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으로 기억합니다. 창업의 실패 후, 새로운 회사에 입사하여 새로운 401(k) 계좌에 납입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창업 이전에 다니던 회사의 401(k) 계좌와 새 회사의 401(k) 계좌를 따로 운용하였고, 지금도 두 개의 계좌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전 회사에서 퇴직 시 $30,000 였던 계좌 평가액은, 한 동안 납입을 하지 않았지만 2010년 초에는 $38,000 정도로 불어나 있었습니다. 연 수익률을 계산해 보면 약 3% 정도입니다. 원금이 보장되는 투자로는 나쁘지 않은 수익률이었지만, 이 보다 더 높은 수익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401(k)계좌에서 투자할 수 있는 상품 중에, 목표 은퇴 펀드 (Target Retirement Fund, TRF) 라는 상품을 발견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목표 날짜 펀드 (Target Date Fund, TDF)와 같은 상품입니다. TRF*와 TDF는 상품 이름 뒤에 연도가 붙는데, 이 연도에 은퇴하는 것을 목표로 주식과 채권의 투자 비중을 펀드 운용사가 점진적으로 변경해 주는 상품입니다. 은퇴까지 기간이 많이 남은 시점에는 주식에 더 많이 투자하여 수익률을 높이고, 은퇴가 다가올수록 주식 비중은 낮추고 채권에 더 투자하여 변동성을 줄이는 방식입니다.
(*편집자 주 : 우리나라에서는 TRF를 Target Risk Fund, 특정 위험 수준을 목표로 운용하는 펀드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으며, TDF 만 이름 뒤에 연도가 붙습니다.)
저는 2035년을 은퇴 목표로 운용하는 TRF 2035 상품에 제 계좌의 돈 전부를 투자하였습니다. 이 상품 저 상품에 나눠서 투자하지 않고, 그냥 이 상품 하나에 다 넣었습니다. 개별 종목의 선정과 포트폴리오의 구성은 펀드를 운용하는 펀드매니저가 알아서 하고, 저는 제 회사 업무에 집중하겠다는 생각에 그렇게 하였습니다.
가입 후 13년 흐른 지금, 성과는?
아래는 2011년부터 제 투자의 실적을 보여주는 그래프입니다.
첫 번째 그래프에는 2011년부터 2015년까지의 실적이, 두 번째 그래프에는 2014년부터 현재까지의 실적이 나와 있습니다. 제 계좌가 있는 증권사 사이트에 로그인하여, 직접 조회한 실제 데이터입니다.
이 두 그래프를 보면, 빠르게 성장하던 시기도 있었고, 급격하게 하락하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격 변동에 흔들리지 않고 가만히 두면, 펀드의 평가액은 완만하게 성장합니다. 이것이 미국 주식 시장의 특징이고, 다양한 산업 분야의 많은 종목을 골라서 분산 투자하는 펀드의 실적입니다.
그저 펀드에 넣어두고 회사일에 집중했을 뿐
저는 이 때 이 후 한 번도 이 펀드 상품을 매도하지 않고 지금까지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2024년 9월 30일 현재 제 계좌의 평가액은 13만 달러입니다. 오른쪽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최근 10년 동안 정확히 2배가 된 것이고, 제가 회사를 퇴사했던 2002년의 3만달러를 기준으로 하면 4.3배가 된 것입니다.
저는 월 30만원을 시작으로 1997년부터 2002년까지 6년 동안만 제 급여의 5%를 납입한 것뿐인데, 납입을 시작한지 27년이 지난 오늘 1.7억원의 은퇴 자금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저는 주식 투자를 한다고 시간을 쓴 적이 없고, 그냥 TRF 라는 상품에 넣어 두기만 한 것뿐입니다. 오히려 그 시간에 회사 업무에 집중하여, 회사로부터 제 능력을 인정받아 저는 승진을 하고 연봉이 인상되어 나중에는 더 많은 금액을 401(k)에 납입할 수 있었습니다.
이 TRF 2035 펀드가 들어 있는 계좌가 제가 가지고 있는 연금 계좌 중에서 가장 실적이 저조한 계좌입니다. TRF 2035는 잘 오르지도 않고, 잘 떨어지지도 않는 상품입니다. 하지만 가만히 두었더니 꾸준히 성장한 것입니다. 시장이 폭락한다고 팔면 안 됩니다. 그냥 가만히 두면 시장은 회복하고 내 계좌는 더 불어납니다. 어쩌다 계좌를 들여다보면 돈이 불어나 있습니다.
다른 계좌에서는 어떤 성과가 나와서 총 10억원의 은퇴 자금을 만들었는지는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신파람 공학박사, 객원교수
전자공학을 어릴 때부터 좋아하여 초등학교 때 디지털 시계를 제작하였고, 컴퓨터 설계와 기계어 프로그래밍을 독학으로 깨우쳤다.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시스템 반도체 전문가로 미국의 스타트업 회사 및 대기업인 마이크론, SK하이닉스에서 근무한 후, 현재는 국내 대학의 객원교수로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30년 가까이 미국과 국내 연금 계좌에 저축하고 투자하여 10억원의 연금을 달성하였다. 이 과정에서 직접 체득한 투자, 연금, 세금, 건강보험 관련 노하우와 지식 정보를 “신파람”이라는 필명으로 네이버 카페에 게재하여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은퇴 준비는 30년 전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취지의 "신파람의 은퇴준비 오지랖" 이라는 블로그와 카페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