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의 고민, "추석을 단촐하게 보내도 괜찮을까요?"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가장의 고민, "추석을 단촐하게 보내도 괜찮을까요?"

글 : 이제경 / 100세경영연구원 원장 2024-09-02



추석은 나에겐 부담으로 다가온다. 추석이 가까워질수록 주부들에게 찾아오는 부담감과는 약간 결을 달리한다. 차례상을 어느 정도 준비하고, 손윗분들께 어떻게 처신할까 등을 고민하는 것은 아니다. 나의 고민은 온전히 우리 가족만의 ‘단촐한 추석’에 대한 부담감이나, 자녀들에게 추석 관련 추억을 남겨줘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다. 


형제들이나 부모와 함께 차례를 지내는 추석이 아닌 내 가족만이 참석하는 ‘단촐한 추석’은 지난해가 처음이었다. 당시 준비가 되지 않은 탓에 종교를 핑계삼아 차례상 없는 추석을 보내고 말았다. 조상의 음덕에 보답하는 의미에서 성묘를 다녀오고 차례를 지내야 했는데 그런 의례(儀禮)를 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물며 송편 없는 추석을 보냈다. 특별한 추석놀이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자녀들에게 이렇다할 추억거리를 만들어 주지 못한 것 같아 못내 아쉬웠다. 마음 한 구석이 텅 빈 것 같은 허전함과 속상함을 털어내는 데 꽤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올해 또 이런 후회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의 고민은 추석에 걸맞은 의례를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형식은 내용을 낳고, 내용은 형식을 낳는다’란 신념을 가진 나로선 종교를 감안한 ‘단촐한 추석’에 어울리는 의례를 찾고 싶었다. 미국 코네티컷대학교 디미트리스 질갈라타스 교수가 쓴 ‘인간은 의례를 갈망한다(Ritual)’에 따르면 인간은 의례로 시작에서 의례로 끝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어떤 목표와 목적을 갖고 수행하는 의례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한다. 오래전부터 내려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의례의 기능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심리적 위안을  받고, 난관을 극복하는 힘을 얻기도 한다. 우리에게 추석 차례는 이런 의례에 속한다. 이런 점 때문에 추석 차례의 손익계산서를 따져보면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많을 것이다. 의례에도 수명이 있기에, 수천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의례라면 분명 그만한 존재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단촐한 추석’에 어울리는 의례를 찾기 위해 관련 정보를 찾아 나섰다. 다행히 추석 관련 학술대회를 개최했던 전문가들이 그들의 연구를 집대성한 ‘추석: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란 책을 접하게 됐다. 필자들은 명절로서의 추석을 시대(신라-고려-조선-근대)별로 집중 조명했다. 


송편을 추석 차례상에 올려 놓기 시작했던 시기는 조선시대였다. 신라시대엔 오늘날의 수제비와 같은 박탁(剝啄: 밀가루를 반죽하여 장국 따위에 적당한 크기로 떼어 넣어 익힌 음식)을 차례상에 올렸고, 고려시대엔 이렇다할 추석 대표 음식이 없었다. 조선시대엔 토란국이 송편을 대체할 때도 있었다고 한다. 반달 모양의 송편에 대해서도 여러 해석이 있다. 보름달에 대한 의미 부여도 시대에 따라 약간씩 차이를 보인다. 추석 민속놀이도 지역에 따라 다양했다. 시대별로 추석의 대표 음식이 변했고, 놀이문화도 상이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추석 의례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에 균열이 오기 시작했다. 농경사회와 산업사회를 거쳐 오면서 추석 문화가 시대 변화를 반영했음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판치는 요즘 사회에서 추석 의례를 과거 풍습에 얽매일 필요가 있을까. 의례 자체보다 추석의 의미를 잃지 않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추석을 맞이해서 조상의 음덕에 깊이 감사하고,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기고, 더불어 혈연과 지연의 연결고리를 더욱 견고하게 담금질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추석 의례를 놓고 더 이상 고민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조선시대 유학자인 퇴계 이황 종가(宗家)도 추석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고 한다. 햇곡식을 수확하기 어려운 추석 대신 10월에 바깥제사를 지낸다. 송편이 없던 시절에 밀가루 수제비로 추석을 지냈던 신라시대를 떠올려 보면, 송편 대신 피자로 추석을 지낸다 한들 무슨 흠이 되겠는가. 의례 없이도 가족이 하나로 뭉치고, 형제들이 우애를 나눌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을까. 정작 중요한 것은 의례 자체가 아니라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차례상을 놓고 갈등을 빚는다면 추석의 의미는 퇴색하게 마련이다. 


이번 추석엔 자녀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보름달을 보면서 남산 둘레길을 걸을 수 있으면 좋겠다. 또한 그동안 서운한 감정을 가졌던 형제나 친구들에게도 화해의 전화라도 꼭 하고 싶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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