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없으면 난리나는 삶, 이대로 괜찮을까?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휴대폰 없으면 난리나는 삶, 이대로 괜찮을까?

글 : 이제경 / 100세경영연구원 원장 2024-05-17

얼마전 황당한 경험을 했다. 지방 나들이를 가면서 지인의 차에 동승할 목적으로 내 차를 지인의 아파트에 주차했다. 나들이를 마치고 지인의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뒀던 내 차를 운전하고 가는 도중에 내 휴대폰이 없어졌음을 알아차렸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휴대폰을 지인의 차에 두고 내렸던 것이다. 휴대폰을 돌려받기 위해 지인의 아파트 주차장을 다시 찾았다. 그때부터 초라한 내 기억력의 민낯이 드러났다. 휴대폰을 돌려받기 위해선 지인에게 연락을 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해야 했으나, 문제는 지인의 연락처를 기억하지 못했던 것이다. 휴대폰 번호는 물론이고 아파트 동호수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런 정보는 모두 내 휴대폰에 저장돼 있으나, 휴대폰이 없으니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내가 가진 정보는 지인 이름이 고작이었다. 아파트 경비원은 이름만 알아서는 연락을 취할 방법이 없다며 난색을 표했다. 내 집으로 연락해서 도움을 받을까도 생각했지만, 지인 정보를 알아내기가 쉽지 않겠다 싶어 포기했다. 내 컴퓨터에 들어가 주소록 파일을 찾아 이름을 검색하면 지인의 연락처를 알 수 있겠지만, 주소록 파일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여러 궁리를 하던 도중, 문득 지인의 차량 번호가 어렴풋이 떠올랐다. 지인의 차에 올라타면서 차량번호를 언뜻 봤고, 다행히 차량번호가 어렵지 않아 대충이라도 기억해낼 수 있었다. 기억해낸 지인 차량번호는 정확하지 않았으나, 아파트 경비원의 도움으로 우여곡절 끝에 지인에게 연락하게 됐고, 마침내 내 휴대폰을 돌려받았다. 


이날의 경험으로 나는 휴대폰 의존도를 줄이기로 마음먹었다. 평소에도 휴대폰을 분실하면 큰일 나겠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었던 터였다. 한 순간에 지인의 연락처가 몽땅 사라지고, 신용카드와 모바일 뱅킹도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걱정을 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내 기억력 상실에 대해서는 한번도 걱정해본 적이 없다. 또한 컴퓨터와 휴대폰에 대부분의 정보가 있기에 필요할 때 꺼내 쓰면 된다고 생각했을 뿐,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최소한의 정보를 기억해 둬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컴퓨터와 휴대폰의 등장으로 생활은 편리해졌지만, 우리의 기억력은 야금야금 쇠퇴하고 있었다. 그동안 우리가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다. 휴대폰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전화번호처럼 기본적인 정보를 기억하지 못하고 암기력도 떨어지는 현상을 ‘디지털 기억상실(Digital amnesia)’이라고 한다. 비슷한 개념으로 ‘구글 효과(Google effect)’가 있다. 인터넷 검색만 하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정보는 잘 기억하지 못하는 현상이다. 문화인류학자이자 인텔 경험연구소장인 제네비브 벨 박사는 ‘구글 효과’는 뇌의 기억 효율성 측면에서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모든 정보를 기억하는 대신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는 방법을 알면 된다는 논리다.  


그렇지만 이제는 ‘구글 효과’의 부정적인 면에 주목해야 하고, ‘디지털 기억상실’을 경계해야 한다. 요즘 우리 생활에 파고 드는 인공지능(AI)의 폐단을 떠올려보면 생활의 편리성과 기억 효율성만을 따질 때가 아닌 것이다. 우리의 기억력을 지켜내야만 치매와 같은 불치병을 미연에 차단할 수 있지 않겠는가.  

‘디지털 기억상실’을 막기 위해서는 컴퓨터와 휴대폰에 의존하는 생활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최소한의 정보는 암기하고, 온라인으로 정보를 얻는 데 그치지 않고 손으로 메모하고, 새로운 것을 배울 때 꼭 기억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좀 더 적극적으로 ‘디지털 기억상실’을 극복하고 싶다면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이 운영하는 일명 ‘수도승 프로그램(Monk Class)’에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저스틴 맥다니엘 교수가 이끄는 이 프로그램은 한달 동안 모든 전자기기 사용을 중단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침묵하면서 생활해야 한다. ‘수도승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한결같이 우울증세가 개선됐고, 매사에 조급함이 줄어들었으며, 수면 질이 좋아졌고, 집중력과 기억력이 향상됐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수도승 프로그램’에 직접 참여하지 않더라도 생활 속에서 컴퓨터와 휴대폰 의존도를 줄이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 최소한 가까운 사람의 휴대폰 번호는 암기하고, 밥 먹을 때라도 TV 시청을 하지 않고, 평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사용을 자제하기로 단단히 마음먹었다. 또한 내 주소록 파일을 가족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공용 컴퓨터 초기 바탕화면에 노출해 뒀다. 


세계 최고 부자인 워렌 버핏과 빌 게이츠는 “성공적인 삶을 살기 원한다면 지금 당장 SNS와 인터넷 서핑을 줄이라”고 충고한다. 빌 게이츠는 자녀들이 14세 될 때까지 휴대폰 사용을 금지했고, 버핏은 회사에서 직원들의 인터넷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설사 워렌 버핏과 빌 게이츠 같은 부자를 꿈꾸지 않더라도 치매에 걸리지 않고, 인공지능(AI)에 우리의 의사결정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기억능력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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