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많으면 정말 뭐가 좋을까?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돈이 많으면 정말 뭐가 좋을까?

글 : 버들치 / 작가 2024-05-16

부자의 기준은 뭘까? 얼마나 재산을 가지고 있어야 부자라고 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은 30억이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50억이라고 한다. 물론 부의 속성이 욕망과 같아서 무한 증식 하기 때문에 10억이면 족하다고 한 사람도 10억이 모이면 바로 20억으로 목표를 바꾼다. 그리고 그 20억은 다시 40억, 80억으로 제곱으로 증식한다. 부란 원래 그런 모양이다.

사람들은 부자들을 미워하지만 역설적으로 돈을 갈망한다. 어떤 사람은 돈에 대한 욕심을 드러내놓고 살고 또 어떤 사람은 돈에 대한 욕망을 감추고 살 뿐이다. 유독 부자를 미워하는 사람일수록 더욱 부자를 갈망한다고 할 수 있다. 원래 그렇다. 미움은 결핍을 감추기 위한 페르소나(가면)이니까. 그리고 결핍이 생기면 마음이 삐뚤어지기 시작한다. 



암튼, 그래서 부자가 된(되려는) 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투정과 심술을 받아줄 생각을 하고 사는 것이 편하다. 설마 이런 것 때문에 부자가 되려는 것을 포기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 부자가 되면 무엇이 좋을까? 또 부자가 되면 어떤 장점이 있을까? 




1. 행복하다


잘 사니까 행복하겠지라고 하지만 아니다. 그냥 잘 사는 것보다 남보다 잘 산다는 것이 중요하다. 행복은 비교를 통해 가능하다. 저질의 행복이라고 폄하할 수 있지만 아무튼 그렇다. 우리 모두는 이기적인 인간이고 박애주의자가 아니다. 보통 사람들은 남들보다 잘 산다는 사실에 행복감을 느낀다. 이걸 부정하면 그분은 (소크라)테스형 버금가는 분이다.

이 저질(?)의 행복을 거쳐서 형이상학적인(본질적인) 행복으로 갈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까 구도자나 청빈한 지식인이 아니고서는 궁핍함 속에 행복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물론 경쟁이 없는 산속으로 들어가 혼자 살면 가능하다. 그렇다고 우리 모두가 산속으로 들어가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또 돈이 있으면 더 행복한지는 모르겠지만 덜 불행하다. 어느 책에 의하면 행복은 50%가 유전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타고난다는 것이다. 그런 유전자를 타고나지 않은 나와 같은 사람은 좀 실망스럽겠지만 어찌하겠는가? 행복을 연구한 학자가 그렇게 말했으니. 하지만 나머지 50%는 개선의 여지가 있지 않은가? 그 개선의 여지가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지만 나는 돈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즉, 돈이 불행의 하방 압력을 막아주는 느낌이랄까?

나는 행복은 성취감이라 생각한다. 무언가를 이룬 것(돈이든 아니면 목표든)에 대한 자기만족이 아닐까? 또 자기가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 또한 성취감의 일종이다. 물론 물질적인 성장 못지않게 정신적인 성장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정신 일변도의 성장은 본인은 행복할 수 있지만 가족의 지지까지는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사실 가족의 지지 기반이 행복의 요소 중 50% 이상 되지 않을까?

2. 좀 더 관대해진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다. 등 따습고 배부르면 조금 더 관대해진다. 비로소 주변을 돌아 볼 여유가 생긴다. 주변을 돌아보며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풍경들이 보이고 이웃도 보인다. 그러면서 이룬 것에 비해 과도하게 누리며 사는 운 좋은 놈이란 생각도 해 본다. 누가 짜증을 내도 사는 게 팍팍한가 보다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 세상에 가난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나? 다들 떵떵거리고 살고 싶은 데 그러지 못할 사정이 있음을 알면 누구를 향해 이러쿵저러쿵 바른 소릴 할 입장이 아니다. 그걸 진작에 알고 있었으면 지금 저렇게 살겠는가? 다들 어쩔 수 없어서 그렇게 사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상대방이 원하지 않은 충고나 조언은 공허한 것이고 그 사람을 두 번 죽이는 거다. 그러니 남에게 입바른 소리 하지 말고 그냥 내 현실에 고마워하면 된다. 나보다 못한 누군가에 대해 그냥 연민을 가지고 보자. 그러나 상대방에게 충고나 조언이 유효한 경우도 있다. 바로 당사자 본인이 원하는 경우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단순한 기쁨'이라는 책을 쓰신 프랑스의 피에르 신부님(우리나라의 최일도 목사라고 이해하면 될 같다)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고통받는 사람들은 멋진 충고나 바른 소리로 위로받거나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이해받고 있다는 따뜻한 감정이 전달될 때 기꺼이 마음을 바꾼다"


독설과 뼈 때리는 말은 고개를 끄덕이게 할 수는 있어도 행동으로까지 발전하기는 힘들다.




3. 좀 검소하게 살아도 떳떳(?) 하다


남의 이목에 덜 신경 쓰게 된다. 명품이 없어도, 후진 차를 몰고 다녀도 별로 쪽팔리지 않다. 난 명품 의류도, 구두도, 가방도 없다. 체질적으로 그런 걸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원래 옷걸이가 안 좋아서 명품을 둘러도 티가 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주변의 사람들은 나 정도 되면 다들 제네시스나 외제차를 타고 다니지만 난 아직도 16년 동안 준중형차를 탄다. 남들은 궁상이라고 하지만 난 솔직히 차 사는 돈이 아깝다. 그 정도의 값어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에게 보여주려고 사는 삶이 아니니까.

​그러나 이런 떳떳(?) 함도 어느 정도 가진 후부터였다. 그전에는 남들 앞에 내 차를 보여주기가 싫었다. "여태까지 뭐 하셨어요?"란 소리를 들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보면 없는 사람들이 남의 이목에 더 신경 쓰는 것 같다. 대부분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렇게 말하지만 인정받고 싶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인정받지 못하면 버림을 받았다는 이분법적인 사고다. 그만큼 멘탈이 약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없을 때 무시당하는 것과 있을 때 무시당하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었다. 없을 때 무시당하면 기분이 나쁘고 불쾌했지만 지금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자발적 가난과 그냥 가난은 살아가는 모습은 비슷하지만 그 질은 하늘과 땅 차이다.

4. 체면을 차리고 살 수 있다

일단 배고프고 가난하면 체면이고 뭐고 없다. 이건 내가 겪어봐서 안다. 가난하면 시야가 좁아지고 당장의 유불리만 가지고 모든 일을 판단한다. 생각이 짧으니 타인을 배려할 여유가 없다. 당장 끼니가 걱정인 사람에게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릴 시간이 없다. 항상 배고팠던 사람에게 마시멜로 하나를 주면서 내일까지 안 먹고 기다리면 마시멜로 하나를 더 주겠다는 제안은 잔인한 실험이다. 기다리면 더 큰 대가가 있다는 걸 학습한 사람과 기다면 배고품 뿐이라는 사람은 같은 조건이 아니다. 체면이란 놈은 등 따습고 배불러야 가질 수 있는 고약함 놈이다. 배고픈 사람은 이런 DNA가 없다.


역설적이지만 등 따습고 배부른 사람들에게 좌파적인 사상가가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춥고 배고픈 사람들이 인류와 사회를 위한 거대한 담론을 만들기는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당장 춥고 배고픈데 그런 형이상학적인 일에 몰두할 에너지가 없다. 이런 일들은 체면치레 정도는 할 수 있는 사람들에 의해 발전해 온 것이다. 그러니 체면치레할 수 있다는 것이 인류를 위해 또는 사회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야 한다. 으음... 좀 비약한 느낌은 있지만 아무튼 체면을 차리고 살 수 있어야 개인은 물론 사회에도 좋다는 얘기다.




5.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많다

배움은 중요하다. 내가 보기엔 많이 배운 사람이 더 행복하고, 더 부자로 살고, 더 관대하다. 그런데 배움을 위해서는 3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시간이 많아야 한다.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다. 대부분 부자가 시간이 더 많다. 예외도 있지만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뺄 수 있는 시간을 말한다. 가난한 사람은 생계 때문에 필요한 시간이라고 하더라도 시간을 쪼개서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제한적이다. 둘째, 습관이 되어야 한다. 습관은 제2의 천성이다는 말도 있듯이 배움은 꾸준해야 그 효과를 볼 수 있다. 어쩌다 하는 공부가 아닌 꾸준한 공부 또한 부자가 유리하다. 쪼들리는 살림을 팽개치고 꾸준히 공부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셋째, 공부도 마음이 평화로워야 집중할 수 있다. 주변에 소음이 많고 불화가 많은 조건에서 공부에 집중하기 힘들다. 인생을 사는 데 문제가 없는 사람이 있겠는가만은 확률적으로 가난한 사람이 더 많을 것임은 분명하다. 주변을 보라. 이유는 다 다르지만 불화의 본질은 돈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부자가 유리함은 불문가지다.

6. 남의 눈치를 살필 필요가 없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가장 굴욕스러웠던 것은 자의반 타의 반으로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을 되뇔 때였다. 또 생사여탈권을 남의 손에 줘버린 나약함도 굴욕스러웠다. 태어날 때부터 그리된 걸 어떻게 하겠느냐만은 그래도 답답했다. 인사철만 되면 진급과 이동 소식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삼삼오오 모여 누구 라인을 운운하고 누구와의 인맥 학맥을 들먹일 때마다 그 둘 모두가 없는 나는 비 오는 날 혼자 서 있는 초라함을 경험하곤 했다.

밥벌이가 힘든 건 누군가의 눈치와 안색을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알랑방귀도 뀌어야 하고 입에 발린 소리도 해야 한다. 내가 사회 초년생일 때는 내 윗분들은 명절 때 선물을 사들고 상사의 집을 방문하기도 했다. 지금이야 많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윗분들의 심기를 알아차리고 기분을 맞추어야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이런 걸 잘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 훨씬 더 많다. 말과 얼굴 표정이 다른 어정쩡한 상태에서 어설픈 멘트를 날릴 때의 자괴지심은 두고두고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처세에 능하지 않은 사람들이 조직 내에서의 스트레스는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이런 스트레스 때문에 조기에 퇴직한 사람도 있고 또 지금도 조기 퇴직을 생각하고 있지만 여건(연금 수령 등의 생계 수단)이 맞지 않아 고민하고 있다. 일단 먹고살 만하면 남에게 아쉬운 소릴 안 해도 된다. 그러니까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교양이나 양심, 도덕보다도 돈이 더 앞서는 셈이다. 돈이면 어느 정도 해결될 문제이니까.




7. 훌륭한 남편(아빠)이 된 듯한 착각?


언제부턴가 아내와 아이들에게 내 말이 먹히는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 전에는 내가 한 말이 튕겨 나왔는데 언제부턴가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속된 말로 가족들이 고분고분해진(?) 느낌이다. 아마 그 시점이 강남으로 이사 온 직후인 것 같다. 그때부터 아내와 아이들 모두 우리집이 부자라는 생각을 한 것 같다. 그 생각을 스스로 한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로부터 오는 반응으로 느낀 것이다. 즉, 강남에 살면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지고 관심을 받게 된다. 그러니까 강남에 살면 일단 하나를 먹고 들어간다. 주변에서 먼저 반응하니까. 으음... 이런 주변의 반응 때문에 다들 과소비를 하고 외제차를 뽑는지 모르겠다.

사실 우리는 자존감을 운운하지만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더 민감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자존감의 80%는 타인의 평가에서 오는 타존감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주변의 평가가 박한 사람이 자존감이 높을리 없다. 그렇다고 나와 우리 가족 모두 자존감이 높다는 것이 아니다. 내가 느낀 것은 자존감 보다 질이 한참 낮은 우월감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튼 이런 가족들의 반응은 나에게도 선순환으로 작동한다. 가족들의 신뢰와 존경을 받고 있다는 생각(또는 착각)은 더 좋은 남편과 가장이 돼야겠다는 다짐(?)으로 승화되는 것 같다. 그러니까 가족들로부터 지지와 응원이 책임감을 더 배가시켜 주고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이른바, 피그말리온 효과다.

※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잘났어 정말..., 그래서 부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하지만 이렇게 묻는 분이라면 도돌이표 인생이다.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님을 본인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손쉬운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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