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간병, 사랑한다고 케어(돌봄)를 잘 하는 것은 아니다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가족 간병, 사랑한다고 케어(돌봄)를 잘 하는 것은 아니다

글 : 한혜경 / 작가, 前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2024-03-13

“사랑일 줄 알았는데 부정맥”


남편이 단톡방에서 본 내용을 공유해주었다. 일본 노인들의 촌철살인 단시(短詩) 중 하나인데, 어떤 모임에서 소개했더니 반응이 뜨거웠다. 이런 것도 있다.


“종이랑 펜 찾는 사이에 쓸 말 까먹네”


“세 시간이나 기다렸다 들은 병명, “노환입니다”


“무농약에 집착하면서 내복약에 절어 산다”


“손을 잡는다. 옛날에는 데이트, 지금은 부축”




어쨌든 오랫만에 ‘사랑’이란 단어를 접하고 보니 2012년 제65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프랑스 영화 <아무르(사랑)>가 떠올랐다. 꽤 긴 기간 동안 상영을 하며, ‘다양성 영화’ 흥행 기록을 세웠던 영화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주인공인 안느는 경동맥이 막혀서 반신불수가 되자 남편 조르주에게 부탁한다.


“다시는 나를 병원에 입원시키지 말아줘.”


그리고 남편은 아내의 부탁을 철석같이 지킨다. 하지만 아내의 병세는 점점 악화되고 회복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절망에 빠진 남편은 결국, 아내를 살해하고 만다.


이 영화는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이야기로 읽히고, 또 여러 측면에서 해석될 수 있다. 내게는 ‘남자들이 얼마나 고지식한가’를 다시 한번 확인케 하는 영화이기도 했다. 나처럼 생각한 여자들이 한둘이 아닌 것 같다. 영화관을 나올 때 뒤편의 중년 여자들이 소곤소곤 나누는 대화 내용이 내 귀에도 꽂혔던 기억이 난다.


“프랑스 남자나 우리나라 남자들이나 똑같네... 병원에 입원시키지 말라는 아내의 말을 그렇게 철썩같이 지키는 걸 보면 말이야.”


“그러게. 난 저 정도가 되기 전에 얼른 요양시설에 보내달라고 미리 말해둬야겠어.”


또 하나, 나의 관심을 끈 건 병든 부모를 대하는 딸의 태도였다. ‘프랑스적’인 부모 자식 관계라고 보기엔 이미 우리에게도 너무 낯익은 모습이었다. 어느새 ‘손님’처럼 되어버린 자식들, 가끔 찾아와 간병하는 아버지를 야단치듯이 공격하기만 하는 자식들 말이다. 영화의 한 장면을 소개해 본다.




- 딸: 제가 도울 일은 없을까요?


- 조르주: 없어. 안 그래도 힘들 텐데 와준 것만으로도 고맙구나. 정말이야. 신경 쓰지 마. 우리끼리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안느의 증세가 더 나빠지자 부부는 딸 내외가 방문하는 것 자체를 반기지 않는다.


- 안느: 난 싫은데. 사위까지 올 필요는 없잖아. 내 상태 보면 또 참견할 텐데.


어머니의 상태가 더 나빠지자 딸은 아버지를 공격한다.


- 딸: 저렇게 눕혀만 두면 안 되잖아요. 왜 어머니를 병원에 입원시키지 않으세요?


조르주는 침착하게 아내의 상황과 의사 소견에 대해 설명하고, 딸이 그래도 흥분하자 묻는다.


- 조르주: 더 좋은 생각 있어?


혼수상태에 이른 아내의 모습을 딸에게 보이기 싫어하는 조르주. 결국 그는 아내를 살해한 후 방문에 테이프를 붙인다. 그 행동은 하나뿐인 딸을 포함하여 그 어느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자신들만의 공간을 지키려는 눈물겨운 노력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 영화의 제목을 왜 ‘사랑(아무르)’으로 붙였는지 짐작하게 하는 장면이기도 했다.




사실 이 영화가 세간의 주목을 끌었던 데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아내 살해, 혹은 가족 살해사건과 너무도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중병이나 치매에 걸린 아내를 둔 배우자, 혹은 장애인 자녀를 가진 부모나 가족 등이 ‘내 가족이니 내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명목으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걸 볼 때마다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다.


수명이 길어지다 보니 요즘 내 주변에도 간병과 케어(care) 문제로 가족과 갈등을 겪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얼마 전에는 80대 후반의 J 어르신이 상담을 요청해 왔다. 이분은 최근까지도 큰 병 하나 없이 건강했고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자녀들에게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이었으며, 뭔가를 끊임없이 배우고 공부하고, 지역사회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넘어지는 일이 두 번 있었고, 그때마다 구급차에 실려 대학병원 응급실에 입원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꼼짝없이 딸의 케어를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문제는 딸의 태도였다. 딸이 영양이나 청결 등에 신경을 쓰고 잘해주는 건 고마우나 “한 번만 더 넘어지면 큰일 날 줄 알어, 화장실도 가지 말고 누워 있어.”라고 윽박지른다는 것이었다. J 어르신은 딸이 자신을 위하고 고생하는 건 알지만 용기를 주는 따뜻한 말 한마디나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차갑게 대하는 게 너무나 섭섭하다고 했다. 

스스로 요양보호사 교육을 받을 정도로 아는 게 많은 J 어르신은 이렇게 말했다.


“케어의 ‘케’자도 모르면서 하루종일 누워있으라며 야단만 치는 딸에게 나를 맡겨뒀다가는 남아 있는 기능마저 모두 사라질 지경이에요. 이렇게 사느니 요양시설에 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딸은 ‘사랑’이라고 믿고 행하는 것들이 똑똑한 J 어르신에게는 ‘부정맥’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모처럼 사랑 이야기로 밝고 유쾌하게 끌어나가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부정맥’의 이야기가 왜 이리 많은가 싶다. 부디 부정맥보다는 사랑이 넘치는 그런 세상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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