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생활 40년, 그 중 은퇴 준비 20년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직장 생활 40년, 그 중 은퇴 준비 20년

글 : 송양민 / 가천대학교 명예교수 2024-02-29



시간은 정말 화살과 같이 흐르는 듯하다. 1983년 5월 새 양복을 입고 첫 직장에 첫 출근을 했던 필자는, 2024년 2월 말 정년퇴직을 하여 ‘자유인’이 되었다. 거울에서 바라본 하얀 머리칼과, 주름진 피부에서 40년 고된 생활의 흔적을 느낀다. 그리고 ‘나는 지금 잘살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거울 속의 나에게 다시 한번 던져 본다.


아침에 휴대폰을 살펴보니 지난밤에 대학 동창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숨을 거뒀다는 부고가 문자메시지로 와있었다. 이 친구와는 1년에 2~3번 만나 밥을 먹으며 옛날이야기, 사업, 정치판 이야기를 하며 지냈었다. 대형교회 장로로 시무하고, 중소기업 오너로 재력도 꽤 쌓았고, 건강관리 투자도 더 많이 한 친구여서 나보다 훨씬 오래 살 줄 알았다. 60세가 넘으면 정말 누가 하늘에 먼저 불려갈지 모른다는 말을 실감한다.


필자는 경기도 양지면 시골집에서 살고 있다. 무릎 관절염에 치매 증상을 앓고 있는 장모님이 초겨울부터 우리 부부와 함께 지내고 있다. 지방 아파트에서 홀로 사셨는데 추운 겨울 지내기가 힘들 듯싶어 아내가 모셔왔다. 늘 환한 얼굴을 하고 말씀하시지만, 아픈 다리를 끄시며 걷는 모습과 옛이야기를 늘 새로운 얘기처럼 되풀이하시는 장모님 모습에서 나의 가까운 미래를 엿보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다시 젊어지고 싶은 마음은 현재로선 없다. 지난 40년 현역 생활이 녹녹하지 않았던 탓일지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베이비붐 세대에 속한 필자 세대는 항상 ‘경쟁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다. 고교 입시, 대학 입시, 취직시험 경쟁, 업적 경쟁, 승진 경쟁 등 온갖 생존경쟁에 시달렸던 듯하다. 그래서 ‘정년퇴직’ 통지서를 받고 나서, 나의 마음은 더 홀가분해지고 더 편해진 느낌이다.


그러나 이런 느낌은 사실이 아닌 듯하다. 필자는 한 달 전부터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잠자리에 누우면, 뇌의 밑바닥에 있던 옛 기억들이 스멀스멀 되살아나 유년시절, 학창시절, 직장생활 시절로 ‘순간 시간 이동’을 한다. 머리 속으로 ‘괜찮아, 정년 이후에도 달라질 건 없어!’ 라 되뇌지만, 속마음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옛 기억의 보따리가 잘 정리되어야 나의 은퇴 시간표도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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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글 쓰는 직업을 가졌던 필자는 20여 년 전부터 고령사회의 문제점, 정년과 은퇴 준비에 관한 책과 칼럼들을 많이 써 왔다. 이 덕분에 정년(은퇴) 후에 마주칠 후반 인생의 과제들에 대해 고민해왔고, 아내와 함께 20년 가까이 은퇴 준비를 해왔다. 지금에 와서 다시 한번 절실하게 느끼는 사실은 ‘은퇴 준비는 빠를수록 좋다’는 것이다. 


특히 은퇴 생활의 질(質)을 결정하는 은퇴자금의 마련은 20년 이상의 준비가 필요하다. 늦어도 40대 초에는 실천을 시작해야 하고, 가장 바람직한 것은 30대 초부터 하는 것이다. 늦으면 늦을수록 후반 인생이 고달파진다. ‘행복한 은퇴 생활’의 준비는 간단히 말해 아래의 4가지 질문에 답하는 것이라 하겠다. 필자가 아내와 합의한 은퇴생활 계획서의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어디서 살 것인가? 


필자의 아내는 오랫동안 살아왔던 아파트 생활을 선호했다, 반면 지방 시골에서 자랐던 필자는 옛 향수를 되살리는 전원생활을 원했다. 5년 전, 필자는 “내가 번 돈, 내가 다 쓰겠다”고 우기고, 수억 원의 저축을 깨서 경기도 용인에 전원주택을 지었다. 그런데 양심이 불량한 주택업자를 만나, ‘그림 같은 집’은 사라지고 ‘물 새는 집’을 떠안게 되었다. 이때 받은 정신적 충격을 수습하는데 무려 3년의 긴 시간이 들어갔다.


더욱 힘들었던 것은 재정적 타격이었다. 물새는 집을 고치기 위해 최초 투자금의 2배를 더 집어넣어야 했다. 만약 아내가 자영업을 운영해 돈을 벌지 않았으면, 필자의 은퇴 계획은 악몽(惡夢)이 되었을 것이다. 필자의 후반 인생을 구해준 아내에게 ‘남은 인생, 말 잘 듣는 남편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다행히 아내도 지난 3년간 시골 생활에 잘 적응했다.


우리는 전원주택에서 7~10년 정도 더 살다가, 아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서울로 다시 이사 가기로 합의해둔 상태다. 필자의 경험을 되돌아볼 때, 은퇴 자금이 넉넉하지 않은 분들은 절대 전원주택을 짓는 모험을 하지 마시기 바란다. 도시 아파트는 관리비가 다소 비싸기는 하지만, 겨울에 따듯하게 지낼 수 있고, 병원과 마트 등 생활 편의시설도 주변에 많다. 시골 생활에선 누리기 힘든 혜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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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와 어울려 살 것인가? 


필자의 전원주택은 23가구가 사는 은퇴자 마을에 있다. 마을주민 대부분이 집 안에 있는 듯한데, 강아지 산보를 시키거나 마당의 잔디 깎는 시간 이외엔 밖에 잘 나오질 않는다. 마을주민회를 조직해 2달에 한 번씩 식사모임을 갖긴 하지만, 주변 집에 불쑥 전화하거나 마실 가는 일은 불가능한 관계다. 결국엔 도시 아파트에 살든, 시골 전원주택에 살든 노년(老年)에는 새 친구를 사귀기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3년 전, 필자는 퇴직 이후에도 계속 만나 친교를 나눌 친구와 직장동료 그룹들을 선별(選別)하여 관계를 유지해나가고 있다. 그들이 전화를 주지 않아도 내가 먼저 전화를 하여 밥을 사고, 함께 놀다가 돌아온다. 이 친구들은 나중에 아무리 바빠도 나의 장례식에 찾아와줄 것이라 믿는다. 


가족은 언제든지 연락하여 부족한 것을 채워 받고 또 채워주는 관계가 아닌가 싶다. 필자에겐 30대 아이 두 명이 있는데, 두 명 다 결혼할 생각이 없는 듯하다. 나는 아내와 결혼하여 행복했지만, 두 아이는 ‘인연 있는 배우자’를 만나지 못하면 지금처럼 그냥 살겠다 한다. 아이들이 1~2주에 한 번씩 시골집에 찾아와 밥 먹고 자고 가는 것이 아내의 큰 기쁨이다. 


 무슨 일을 하며 살 것인가? 


은퇴생활비 마련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노후 소일거리이다. 필자는 젊어서부터 ‘글 쓰고 말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왔다. 그래서 은퇴 생활 방식도 비슷할 듯하다. 최근 출판사에서 사회비평 서적을 한 권 써달라는 요청을 받아 자료를 수집 중이고, 아는 후배들이 함께 기업경영 관련 책자를 내자고 하여 논의 중이다. 


노년은 아무래도 직장생활 시절에 많이 하지 못했던 여가취미 생활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시기다. 그간 읽고 싶었던 소설 10여 권을 구매해 틈틈이 읽기 시작했고, 바빠서 못 봤던 영화와 드라마, 유튜브도 즐기고 있다. 나중에 이런 은퇴 생활이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면, 방송통신대에 입학하여 새 공부를 해볼까 하는 마음도 있다. 해외여행을 하지 못했던 아내를 위해 함께 여행계획을 짜고 있는 것도 노년의 행복인 듯싶다.


사실 우리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즐길 수 있는 취미 생활이 넓어진다. 입(맛있는 음식)과 눈(영화와 소설)뿐만 아니라, 귀도 호사를 누릴 수 있다. 필자는 친구의 지도를 받아 10여 년 전부터 클래식 음악 공부를 시작했다. 유튜브로 좋은 음악을 언제든지 즐길 수 있지만, 필자는 조금 호사를 누리고 싶어 오디오를 한 세트 장만했다. 이젠 종일 음악을 들어도 지루하지 않은 상태가 된 게 새 친구를 한 명 사귄 것 같아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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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비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필자는 20년 전부터 아내와 함께 은퇴자금 마련 계획을 세워 꾸준히 실천했다. 국민연금, 사학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에 가입하여 20~30년간 불입한 결과, 도시근로자 평균소득 정도의 월(月) 소득을 확보하였다. 여기에 아내의 국민연금을 합치면 여가생활도 다소 즐길 수 있을 듯하다. 되돌아 생각해보면, 여건이 허용하는 한 여러 연금 상품에 최대한의 금액을 집어넣은 게 안전한 은퇴를 맞게 된 비결인 듯하다. 


은퇴자금 마련을 위해, 필자 부부는 30년 넘게 경제적 내핍생활을 해왔다. 교육비(특히 과외비) 지출을 최소한으로 억제하였고, 병원을 제외하곤 백화점과 영화관 등 편의시설은 거의 가지 않았다. 이런 삶이 행복한 삶이었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직장에서 생존경쟁에 밀리다 보니, 가족들과 여유 있게 지낼 시간이 늘 부족했던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은퇴 준비는 늘 ‘현실과 미래의 충돌’인 듯하다. 자녀(교육비)에 대한 투자를 늘릴 것인가, 부부의 미래를 준비할 것인가. 현재 풍요로운 생활을 할 것인가, 지금은 허리띠 졸라매고 미래에 여유롭게 살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둘 다 의미 있는 선택이기 때문에 어떤 것만이 옳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선택 결과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질 수밖에 없다. 돌이켜 보면, 필자 부부는 5대5의 투자를 선택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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