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에게 유언장 써보기를 권하는 이유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3040에게 유언장 써보기를 권하는 이유

글 : 이필재 / 인물 스토리텔러 2024-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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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어디서, 어떻게 죽을 건지, 남겨질 사람들을 위해서는 어떤 결정을 할 건지 미리 생각해 둬야 합니다. 그래야 삶이 더 풍요로워져요.”


2020년 <죽음을 배우는 시간>을 낸 김현아 한림대 성심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는 “죽음을, 삶의 연장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죽음은 언젠간 닥치게 마련이고, 피할 수 있는 일도 아니죠. 그런데 점점 더 죽음에 대해 사람들이 생각을 안 하는 거 같아요.”


김 교수는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경쟁사회에서 죽을 때도 남과 경쟁을 하는 세상이 됐다”고 주장했다.


“‘우리 아파트의 아무개 할아버지는 아흔까지 잘 살았는데 나라고 그만큼 못 살 게 뭐야’ 하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런가 하면 장례지도사를 하는 한 젊은 친구가 ‘명대로 살다 죽자’가 자신의 모토라고 하던데, 저는 ‘제 명만큼만 살자’는 이런 메시지가 널리 퍼지면 좋겠어요. 아모르 파티(Amor fati). 자신의 운명을 사랑해야죠.”




김 교수는 학력고사 전국 수석을 했고 서울 의대에 진학해 최우등으로 졸업했다. 국내 류머티즘 연구계를 대표하는 의학자로서 대한의학회 분쉬의학상, 일본류마티스학회 젊은의학자상을 받았다. 지난해 가을엔 양극성 장애를 진단 받은 둘째 딸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기록한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의사 엄마가 기록한 정신질환자의 가족으로 살아가는 법>을 냈다.


그는 부처님의 두 화살 이야기를 들려줬다. 첫 화살은 병이다. 누구나 때가 되면 병에 걸린다. 두 번째 화살은 병으로 인한 슬픔과 분노이다.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이다.


“내가 왜 이 병에 걸렸느냐고 꼬치꼬치 묻는 환자들이 있습니다. 병에 걸린 책임을 가까이 있는 누군가에게 전가하고 싶은 거죠. 이분들에게 첫 화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치료를 잘해 그 화살을 뽑아 버리자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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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배우는 시간>엔 ‘병원에서 알려주지 않는 슬기롭게 죽는 법’이라는 부제가 달렸다.

그는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으면 죽음은 무섭고 우울한 일이 된다고 덧붙였다.

“반면 이 문제를 나름대로 정리한 사람들은 마음이 가볍다고 합니다.”


Q. 자신의 죽음을 언제,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요?


“젊었을 때 준비하는 게 좋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유언장을 작성하는데 보통 큰 돈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재산이라고 할 만한 돈이 생겼을 때 또는 자신의 사후에 남겨질 중요한 사람이 생겼을 때 유언장을 써요. 그러니까 30~40대에도 작성합니다. 백세시대라지만, 죽음은 생각보다 갑자기, 예측할 수 없게 닥치죠.”


Q. 유언장 작성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그밖에 어떤 서류를 작성하는 게 좋습니까?


“유언장 작성은 남은 가족들이 유산 문제로 서로 싸우지 않게 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예요.다음으로 연명의료의향서가 중요합니다. 미리 작성해 두면 불의의 사고로 잃은 의식이 돌아 올 가망이 없을 때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받지 않아도 됩니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데 이것들을 현대 의학은 일종의 질병으로 치부합니다. 죽음이 치료해야 할 질병으로 왜곡되는 거죠. 죽음의 왜곡입니다. 단적으로 어르신들이 폐렴에 걸려 돌아가시는 게 아니라 돌아가실 때가 되어 폐렴이 생기는 거예요. 이물질이 기도로 넘어갈 때 뱉는 기능이 노화로 약해지면 잠잘 때 넘어갑니다.”


현대 의학이 죽음의 전 단계인 노화의 전형적인 증상들을 치료할 대상으로만 접근한다는 것이다. 진료의 파편화다.


“많은 어르신들이 큰 병원의 네 다섯 개 진료과를 다니시는데 정작 이분들을 총체적으로 보는 의사는 없어요. 결국 마침내 가실 때가 됐다고 판단할 사람이 없으니 증상이 생기면 응급실로 향하고, 응급실 의사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환자의 해당 증상만을 치료하죠.”


그래서 마침내 때가 되면 병원을 찾지 말든지 오랫동안 환자를 본 동네 병원 의사에게 가라고 권한다고 그는 말했다. 때가 되면 병원에 더 이상 가지 않겠다는 결정을 당사자가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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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선생님이 죽음의 당사자가 되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저는, 혼자서는 침대를 못 벗어나게 되면 스스로 먹지 않을 거 같아요. 몹시 쇠약해지면 먹는 것조차 고통스러워지죠. 스님들을 비롯해 옛날 어른들은 때가 되면 곡기를 끊으셨어요. 그게 죽음의 정석 같습니다.”


Q. 쓰신 책에서, 사망 상태로 발견된 환자도 병원에서는 법적 책임을 피하려 심폐소생술(CPR)을 하는 게 관례처럼 돼 있다는 대목을 봤습니다. ‘쇼피알’ 즉 이렇게 주변에 보여주기 위한 CPR의 생존율은 당연히 0인데, 현대 의료는 0을 0이라고 못하고 “매우 희박하다”는 식으로 말해 사실상 환자와 가족을 기만한다고요? 단도직입적으로 “심장이 멈춰도 소생시키지 말라”는 DNR(Do Not Resuscitate)을 어떻게 결정해야 하나요?


“당사자로서, 나는 최후의 순간에 중환자실에 가지 않고 CPR도 하지 않겠다고 명시적으로 의사표시를 해야 합니다. 병원에 갈 경우엔 연명치료계획서에 서명하면 됩니다. 이중의 안전장치 같은 거죠. 저는 이 단계가 되면 아예 병원에 발을 들여놓지 않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해요. 어쩌다 소송이 난무하는 사회에서 죽음은 자칫 사건이 돼 버리기 십상이죠.”


김 교수는 자신의 책에 CPR을 해도 열의 아홉은 사망한다고 썼다. 심지어 죽음을 준비하지 않은 결과는 때로 참혹하다고 적었다.


“연명치료의향서를 쓰신 분이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하는데 가족이 반대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 저는 환자를 위해 가족을 설득해요. 병원 수익을 위해서는 중환자실로 보내드리는 게 더 낫지만.”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세상을 떠나면 이번엔 시스템 문제가 있다. 단적으로 검안해 줄 의사가 없다. 결국 응급실로 옮겨 간단한 검안에 이어 CPR을 하고 심장이 뛰지 않는 걸 확인한 후 사망이 확정된다. 사망진단서를 받기 위한 절차인 셈이다. 왕진하듯, 의사가 방문해 사망진단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하는 까닭이다.


Q. 중환자실이, 노인이 삶을 마감하는 장소로 급속히 바뀌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중환자실 환자의 평균 연령이 80세가 넘습니다. 중환자실은 중상 환자들을 사회에 복귀시키는 시스템인데 어쩌다 노인들의 연명치료실이 돼 버렸어요. 결국 당사자들에게 달렸어요. 죽음의 과정에서 겪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병으로 간주하지 않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그는 서울에서 중증 외상을 입으면 사망할 확률이 경기도의 두 배라고 했다. 중증 외상은 응급 중 응급이지만 서울의 응급실과 중환자실은 암 환자 등으로 이미 포화상태이기 때문이다.


“암 환자의 우선순위가 낮다는 게 아니라 의료라는 공공재를 어떻게 배분할 건지 공론화를 통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그는 말했다.


Q. 현대인의 삶, 뭐가 문젭니까?


“흔히 과거와 미래만 있고 현재가 없는 삶을 삽니다. 과거가 대단했을수록 현재가 불만이고 미래를 생각하면 현재가 불안하죠. 그런데 정작 중요한 건 현재이고, 현재를 즐기면서 잘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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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요?


“의료는 교육과 더불어 공적인 자원입니다. 미국 같은 나라도 부인할 수 없는 명제죠. 그런데 한국은 어쩌다 의료의 90% 이상을 사적인 주체들이 운영하는 나라가 됐어요. 공공 의료는 10%가 채 안 돼요. 사적 주체들이 병원을 운영하면 이윤을 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의료기기 업체, 제약 기업들과도 연결돼 있죠. 이런 현실에서 환자들은 숱한 비급여 진료와 각종 검사 탓에 바가지 쓰는 게 아닌가 불신을 합니다. 그래서도 큰 병원을 찾죠.”


Q. 우리 건강보험도 좀 이 망가지지 않았습니까?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본래 공적인 보험입니다. 그런데 보험료를 적게 내다 보니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이 자꾸 생기고, 그 결과 개인 부담이 커져 국민들은 불만이죠. 이 틈을 실손보험이 파고들었습니다. 필요한 급여화를 제때 못해 실손보험 시장이 커진 겁니다. 이런 급성장은 실손보험 업계도 아마 예측 못했을 거예요. 지금 가성비가 떨어지는 문제로 비급여 시장이 혼란스러운데 꼭 필요한 필수 의료의 수가는 또 원가 이하예요. 의료인 인건비 중 어떤 항목은 최저임금도 안 됩니다. 어쨌거나 GDP 대비 의료비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실손보험이 비급여 항목을 커버해 주기 때문이죠. 이렇다 보니 의료 수요가 또 늘어나고. 국민들의 의료 수요는 결코 찍어 누를 수 없습니다. 결국 정책 당국이 국민들을 설득해 보험료를 더 걷어 공공보험을 더 튼튼하게 만드는 게 대안이죠.”


Q. 만일 의료 정책 당국자 자리에 앉는다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1차 의료 기능이 살아나도록 의료 전달 체계를 고치고, 1차 진료시 15분 진료를 정착시키겠습니다.”


Q. 버킷 리스트가 뭡니까?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소설은 여태 쓴 책들과는 완전히 다른 장르고, 그래서 소설가들이 위대해 보입니다.”


Q. 어떤 세상이 되기를 바라나요?


“인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회입니다. 정작 세상은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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