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50대 직장인, 법적 정년까지 실상은?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일본의 50대 직장인, 법적 정년까지 실상은?

글 : 최인한 / 시사일본연구소장, 일본 전문 저널리스트 2023-12-11

샐러리맨 인생의 끝이 보이기 시작하는 연령대는 일본에서도 50대다. 법적 정년이 우리나라보다 길고, 정년을 지켜주는 사회 분위기이긴 하다. 그렇다고 직장에서 정년까지 자리를 지키기가 쉽지 않다. 대기업이나 금융업계에서는 관리직의 경우 50대부터 직급 정년을 두는 회사가 많다. 승진을 못하거나 보직을 받지 못하면 회사를 떠나거나 관계 회사, 거래처 등으로 옮겨야 하는 게 현실이다. 일본 경제 주간지 동양경제가 최근 다룬 장기 저성장 시대를 맞은 일본 기업의 관리직 샐러리맨 실태와 대응 방안을 소개한다. 


external_image


은행원, 관리직 정년으로 임금 줄어 생활고 


“지금까지의 경력을 되돌아 보면, 나는 간부가 될만한 인물은 아니다. 회사에서의 현재 상황을 인정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완수한 뒤 다른 길을 찾아갈 계획이다.” 대형 시중은행에서 영업부장을 맡고 있는 50대 전반 남성 K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다소 낙담한 표정으로 인생 재설계 계획을 털어놨다. 그는 현재 간부가 되기 위한 사내 연수를 받고 있다. 


이 은행의 경우 연수를 받는다고 전원이 간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의 경력이나 실적, 그리고 은행원으로서 실력을 인정받은 몇 명만 살아 남는다. A씨의 대학 동기로 다른 은행에 입사한 친구는 이미 간부가 되어 활발히 일하고 있다. 


일본에서 ‘은행원’은 사회적으로 신분을 보장받은 성공한 샐러리맨이다. 이들은 언젠가 간부를 거쳐 은행장이 될 날을 꿈꾸며 입사 이후 맹렬하게 일해왔다. 하지만, 1990년대 버블(거품) 경제 붕괴 이후 대형 은행끼리 합병되고, 은행 수가 줄었다. 결과적으로 은행에서 임원이 되는 인원이 크게 줄었다. 임원이 되지 못했어도 50대에 부장이 된 은행원들도 살아남은 ‘승자 집단’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간부로 올라가지 못하면 ‘관리직 정년’을 맞게 되고, 부장직에서 은퇴해야 한다. 직급 정년으로 일하면 임금이 기존보다 30% 가량 줄어든다. 거래처 등으로 떠나라는 무언의 압박도 들려온다. 임원 승진을 눈앞에 두고 연수 중인 A씨는 샐러리맨 인생의 벼랑 끝에 몰려 있는 셈이다. 


임원 앞두고 직급 정년에 몰린 50대 은행원


일본에서 일반적인 은행원의 출세 코스를 살펴 보자. 은행별로 다소 연령 차이가 있지만, 영업 지점을 경험한 뒤 30대 초반에 처음으로 승진 기회를 맞는다. 이어 30대 후반에 부장 대리를 시작으로 관리직에 올라 40대 전반에 차장이나 부지점장으로 부서 내 2인자 그룹에 합류한다. 연간 수입은 1500만~1800만 엔 정도로, 다른 업종과 비교해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그러다가, 40대 중반 큰 난관을 만나게 된다. 흔히 말하는 ‘황혼 연수’다. 표면적으로는 “인생 설계에 대한 연수”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퇴직까지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를 사전에 알려주고, ‘제2의 사회 생활’을 준비시키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해, 이제부터는 소수만 은행에 남을 수밖에 없으니, 은행을 그만두고 다른 곳에서 살아갈 준비를 하라는 연수다. 이런 연수를 거쳐 다수 직원들은 갈만한 곳을 소개받아 몇 년 뒤 은행을 떠난다. 


이런 난관을 통과한 5% 정도의 은행원이 40대 후반에 부장이나 지점장 등 주요 간부직에 오른다. 연봉은 2000만 엔 선으로 높아진다. 부장이 되지 못한 은행원은 은행을 떠나거나 임금 30% 삭감의 쓰라린 경험을 하게 된다. 임금 삭감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A부장 사례처럼 ‘관리직 정년’의 커다란 벽이 기다린다. 결국, 관리직에 오르지 못하면 회사를 나가거나 급료가 더 깎이는 현실과 부딪히게 된다. 


external_image


직장인, 관리직 정년제도 불만 커져 


당초 일본 기업들은 정년 연장에 대응하기 위해 관리직 정년을 도입했다. 1986년에 60세 정년이 기업의 노력 의무가 되고, 1994년에는 60세 미만의 정년이 금지됐다. 이로 인해 인건비가 증가하고, 한정된 관리직에 시니어 사원이 장기간 체류하는 사태를 불러왔다. 젊은 사원들이 의욕을 잃거나 이직하는 부작용도 생겨났다. 이런 환경에서 인건비 축소와 함께 조직의 신진대사를 꾀하기 위해 관리직 정년을 도입하는 움직임이 기업에 확산됐다.


은행뿐 아니라 다수 기업들이 관리직 정년제도를 도입했다. 상장회사의 40.5%가 관리직 정년제도를 운영 중이다. 특히 광업, 의약품, 전기 및 가스업, 은행업 등 이른바 전통 업계에서 도입률이 높다. 연령대가 높은 직원이 많기 때문이다.((표 참고))


관리직 정년제도에 대한 평판은 좋지 않다. 동양경제가 독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관리직 정년으로 인해 연간 수입이 30% 이상 감소한 사람이 30%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또한, 관리직 정년 후 일이나 대우에 대해 불만을 갖는 사람도 30%를 넘었다. 불만이라고 답변한 사람들은 “연 수입이 줄어들고, 일하는 보람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관리직에서 벗어나도 하는 일은 크게 달라지지 않지만, 임금이나 대우가 떨어져 업무 의욕이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났다.


기업에서 재고용의 경우 임금 감소 폭이 ‘관리직 정년’보다 더 큰 것으로 조사됐다. 임금이 50% 이상 급감한 사람이 40%를 넘었다. 이에 따라 “숙련도가 떨어진 것도 아니고, 연령만으로 수입이 감소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불만이 크다. “목표 관리나 평가가 사라지고 상여금도 고정이기 때문에 열심히 하려는 마음이 없어졌다”고 하는 사원들도 있다.


external_image


기업, 직급 정년제도 개선 나서 


일본에서 60세 정년이 도입된 지 30년이 지났다. ‘인생 100세 시대’를 맞아 2021년부터는 70세까지의 고용 확보 노력 의무가 기업에 부과되는 등 시니어 사원을 활용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1990년대 후반, 버블(거품) 경제 붕괴 이후 사원 채용을 크게 줄인 데다 저출생이 이어져 거의 모든 업종에서 노동력 부족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다수 은행들은 우수한 은행원을 내보내지 않고, 그대로 전문직으로 고용하는 코스를 신설하고 있다.


일본 업계에서 정년 후 일하는 방식으로 제일 먼저 선택지에 오른 것은 지금까지 일했던 기업에서의 ‘재고용’이다. 근무 환경이 친숙한 데다 업무 내용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업무 경험과 능력을 살리기도 쉽다. 하지만, 장기 불황 여파로 퇴직 후 재고용 제도를 통해 시니어 사원의 임금을 줄이는 기업이 많다. 중견 제조업체에 근무 중인 한 남성( 59세)은 “얼마 전 퇴직 후 재고용 설명회에 참가했는데, 임금을 절반으로 삭감한다고 했다” 며 “갑작스러운 통보여서 당분간은 재고용으로 일하지만, 서둘러 다른 일을 찾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50대 중반부터 가계 씀씀이 줄여야


“직급 정년으로 월급이 깎여 가계가 적자로 빠졌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대형 언론사에 근무하는 사이토 씨(57세)와 부인(54세)은 가계 적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각종 생활비 지출을 줄이고 있다. 직급 정년에 들어가기 전, 실 수령액은 월 50만 엔 정도고, 지출은 39만4000엔이어서 살림살이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57세에 직급 정년을 맞아 임금이 34만7000엔으로 이전보다 30% 감소했고, 가계는 적자 상태로 바뀌었다. 


그는 아내와 상의해서 가계의 씀씀이를 대폭 축소하기로 했다. 남편과 딸의 용돈을 줄였고, 꼭 필요하지 않은 생명보험은 해약하고, 휴대전화 통신료도 낮은 요금제로 바꿨다. 월 6만4000엔을 줄여 월별 지출액을 33만 엔으로 축소시켜 가계 적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50대 후반 이후 수입이 줄어드는 현실을 인정하고, 지출 구조를 재조정하는 게 좋은 방안이라고 제언한다. 


뉴스레터 구독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 뉴스레터를 신청하시면 주 1회 노후준비에 도움이 되는 유익한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 이름
  • 이메일
  • 개인정보 수집∙이용

    약관보기
  • 광고성 정보 수신

    약관보기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 뉴스레터를 구독한 이메일 조회로 정보변경이 가능합니다.

  • 신규 이메일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 뉴스레터를 구독한 이메일 조회로 구독취소가 가능합니다.

  •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