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최고의 냉면
글 : 이근후 /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2023-08-17
별미 하면 냉면을 빼놓을 수 없다. 냉면은 ‘차게 먹는 한국 전통 국수. 주로 평양·함 흥 등 북부지방에서 전래된 음식’이다. 내가 냉면과 인연을 맺은 것은 참 오래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냉면 맛을 보았으니 인연이 깊다고 하겠다. 내가 대구에서 자랐기 때문에 냉면과는 인연이 없을 것 같지만, 당시 대구에는 평양냉면집 이 한 군데 있었다. 그때만 해도 별난 음식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외식을 할 때 많이 찾은 곳 중 하나가 냉면집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그때 그 맛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 직장을 가지면서 냉면은 서울에서 주로 많이 먹었는데 가족이나 직장 동료들과 함께 유명 냉면집을 순회하고 돌아다녔다. 우래옥과 같은 평양냉면집, 오장동 함흥냉면집 등이었는데 내가 어릴 때 기억하고 있는 냉면 맛과는 달랐다. 어떻게 다르냐고 묻는다면 아쉽지만 자세히 답을 할 수 있을 만큼 내 미각적 표현력이 발달되 어 있지 않다. 그러나 어쨌든 내 입맛에는 다르다.
다시 만난 어릴 적 그 맛

1990년 중국 연변에서 고려인 의학자 학술대회가 처음 열렸다. 이 모임은 당시 중국 연변 의대 명예 교수였던, 이후 2014년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된 현봉학 선생님이 주관해 만들었다. 외국에서 의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동포들을 아울러 만든 학술 대회였다. 나는 그해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회장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공식적인 초청을 받아 그곳에 갔다.
학술대회를 마치고 냉면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 연변에 있는 정신과 의사의 안내를 받아 제일 유명하다는 냉면집에 들렀다. 연변 냉면집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연변에선 어릴 때 맛보았던 냉면 맛과 비슷한 냉면을 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연변의 냉면 맛은 내가 어릴 때 맛본 그 냉면과 유사했다. 그래서 연변에 있는 동안 그 냉면집을 자주 방문했다. 그 후 1998년 처음으로 금강산 관광길이 열리자 가족과 함께 배를 타고 금강산에 갔다.
금강산을 관광하는 도중 평양 옥류관에서 낸 금강산 분점을 방문했다. 북한의 평양냉면을 처음 먹어보게 된 것이다. 그 후 금강산에 육로로 두 번 더 여행을 갔는데 갈 때마다 옥류관을 들르는 일은 빼놓지 않았다. 그 이유는 금강산에서 먹은 냉면 역시 내 어릴 적 먹었던 냉면의 맛과 유사했기 때문이다.
내가 으뜸으로 꼽는 평양냉면
나와 냉면의 인연을 떠올리면 무엇보다 이화여자대학교 김옥길 총장님의 ‘옥길표’ 평양냉면을 빼놓을 수 없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평양냉면의 맛은 세 가지다. 하나는 어릴 때의 냉면 맛이고, 두 번째는 서울에서 맛본 냉면 맛이고, 마지막으로는 옥길표 평양냉면이다. 이 세가지 냉면의 맛 가운데 단연 인상에 남는 것은 옥길표 평양냉면이다.
옥길표 평양냉면이라고 하니 마치 김옥길 총장이 직접 평양냉면집을 차려 경영한 것처럼 들릴 수 있을 것 같다. 총장님이 외부 인사를 초청해 접대할 때 내놓는 메뉴가 평양냉면이었 기 때문에 옥길표 평양냉면으로 이름을 붙인 것이다. 나도 이화여대에 와서 여러번 총장님 초대를 받아 냉면을 즐겁게 먹어본 기억이 있다.
나의 냉면 맛 세 가지 중 으뜸인 맛이 어떤 냉면이냐고 물으신다면 서슴지 않고 옥길표 평양냉면이라고 답하며 엄지 척 하겠다. 그 이유는 이렇다. 총장님 사저에 가면 큰 식당 못지않은 거대한 가마솥이 있고 그 위에는 냉면을 뽑는 전통적인 냉면틀이 놓여있다. 거기에서 나오는 냉면 맛이 정말 일품이다. 냉면 맛도 냉면 맛이지만 냉면을 대접하는 총장님의 태도에 냉면 맛보다 진한 감동을 받았다.

총장님에게 받은 감동 하나는 직위나 신분에 관계없이 평등하게 대접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화여대 전 교직원을 초청해 냉면 파티가 열리면 교수나 일반직원, 미화원에 이르기까지 신 분의 차등은 없다. 그 초청에서는 모두가 총장 님의 초청을 받은 평등한 손님이다. 일반적인 식 당에도 일반 고객 따로 있고 VIP 고객이 따로 있어 차등을 둔 대접을 받곤 하는데 김옥길 총 장님의 사저에 초청돼 대접을 받게 되면 그 누구 도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평등하다는 뜻이다.
또 다른 하나는 합리적인 차별대우다. 여기서 말하는 차별대우는 누구는 냉면을 특별히 만들어주고 하는 그런 차별이 아니라 냉면을 대접받는 순서에서의 차별이다. 이곳에 초청받 아 방문하면 초청받은 손님을 모시고 온 운전기사들이 제일 먼저 냉면을 대접받는다. 내가 운전기사에게 냉면을 먼저 대접하는 순서를 합리적인 차별대우라고 말한 이유는 총장님의 설명 때문이다. 운전기사는 주인을 모시고 다니면서 식사 시간에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한단다. 주인이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언제 식사를 마치고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기다리다 보면 식사를 거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때문에 총장님은 이들부터 먼저 챙겨주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이는 보통 사람이라면 직접 이행하기는커녕 생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인데 총장님은 스스럼없이 실천하셨으니 진정 큰 배려가 아닐까 싶다.
나는 이 두 가지 손님 접대의 태도를 보고 ‘이 맛이야’ 하고 감탄했다. 냉면 맛 도 엄지 척이지만 냉면을 대접하는 이런 정성이 냉면 맛을 더욱 맛있게 느끼게 해주었던 것이다. 나는 일찍이 김옥길 총장님과의 첫 만남에서 ‘이분이 배려심 이 참 많은 분이구나’라는 것을 경험적 육감으로 느꼈다. 그 경험적 육감은 총장님에게 묻거나 확인한 것이 아니고 오로지 나 혼자만의 추측이었다. 직접 냉 면 대접을 받고 또 대접을 하는 모습을 보며 내 추측이 틀리지 않다는 확신을 얻었다.
배려심이 더해진 냉면의 맛

배려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마음 을 써서 보살피고 도와줌’이다. 선천적인 기질로 배려가 몸에 배어 태어나는 분도 있지만 그보 다는 태어나서 후천적으로 학습을 통해 배우고 익히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총장님 은 어떤 과정에서 어떤 부모를 만나 이런 배려심을 몸으로 익혔을까 궁금하다. 총장님의 배려 심은 인위적이거나 작위적인 허위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총장님의 자연스러운, 성격 그 자체의 일부가 아닌가 생각된다. 나는 정신과 의사로서 후학을 가르치면서 꼭 이런 말을 한다. 남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려면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측은지심이 겨자씨만큼이라도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겨자씨는 크 기가 원체 작아 무게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천칭에 올려놓고 보면 겨자씨가 놓인 쪽이 기울어진다.
이는 작지만 무게가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하다못해 측은지심이 겨자씨만큼이라도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에 비해 의사가 될 자격이 있다는 게 내 지론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측은지심이 바로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다. 배려하는 마음이 겨자씨만큼만 있어도 대단한 일인 데 총장님은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무게를 가지고 있으니 그 배려심에서 우러나오는 냉면의 맛에 내가 어찌 엄지 척을 하지 않을 수 있겠나. ‘배려’라는 말을 들으면 늘 김옥길 총장님이 생각난다. 나에게 몸소 배려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신 참스승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옥길 총장님에 대한 이야기를 지난 호에 이어 2회 에 걸쳐 실어본다.
출처: 투자와연금 11호
이근후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이화여자대학교 교수이자 정신과 전문의로 50년간 환자를 돌보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퇴임 후 아내와 함께 사단법인 가족아카데미아를 설립하여 청소년 성 상담, 부모 교육, 노년을 위한 생애 준비 교육 등의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76세의 나이에 고려사이버대학 문화학과를 최고령으로 수석 졸업하면서 세간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주요 저서로는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싶다』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