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사 현장, 무엇이 있고 무엇이 없는가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고독사 현장, 무엇이 있고 무엇이 없는가

글 : 이필재 / 인물 스토리텔러 2023-08-04




 고인의 손 끝에 놓인 휴대폰이 열려 있었다. 사망 직전까지 주변에 도움을 청하려 했던 듯 싶었다. 임대아파트 5층 자신의 집에 자는 듯이 누워 있던 노인의 나이는 80여 세. 사망한 지 15일은 넘은 것 같았다. 그는 악취로 자신이 죽음을 주변에 알렸다. 경비원의 연락을 받고 달려간 그의 집 거실 서랍엔 흰 손수건으로 싼 화랑무공훈장이 있었다. 망자가 된 이 ‘영웅’의 외아들은 아버지의 신분증을 담담하게 받은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 버렸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어떤 국가유공자는 “이대로 죽고 싶지 않다”라고 적은 메모를 남겼다.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다잉 메시지’다.  




 부산 영도경찰서 권종호 경위가 들려준 이야기다. 권 경위는 지난 2월 <고독사는 사회적 타살입니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책을 냈다. ‘현직 경찰관의 눈으로 바라본 고독사 현장’이라고 부제를 달았다. 이 책 프롤로그에서 그는 “고독사의 피의자는 대한민국 바로 우리 사회”라고 주장했다.


“변사 사건이 발생하면 저 같은 형사가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그런데 고독사 현장엔 패턴이 있어요. 많은 게 세 가지, 없는 것이 세 가지죠. 각각 술병, 외로움, 빈곤(3多)과 가족(보호자, 친구), 돈, 희망(3無)입니다. 또 몇백 번 현장을 찾은 후 내린 결론인데 고독사한 노인의 99%가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은 분들이에요. 구청 사회복지과에서는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와 차상위계층 위주로 관리를 하기 때문이죠. 어찌 보면 세금을 더 잘 내는 분들인데 국가가 보호를 못하는 겁니다. 초등학교 교장을 지낸 어느 분은 자식이 대학교수와 의사였지만 연을 끊고 살다 고독사를 했는데 재산도 있고 연금도 나왔어요. 경제력이 있다고 고독사에서 자유로운 게 아닙니다.”


 그는 “고독사는 복지사회의 그림자”라고 덧붙였다. 세금을 꼬박꼬박 내고도 사회복지에서 소외된 채 고독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고독사 고위험군 중엔 재산이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내가 죽으면 내 집을 팔아 치매에 걸린 아내가 시설에 들어가 생활할 수 있게 도와달라는 분도 있어요.”

 고독사는 독거 중에 가족·이웃과 단절된 채 세상을 등지는 죽음이다. 임종하는 사람이 없음은 물론이다. 대부분 병사이지만 자살하는 사람도 있다. 청년 고독사는 대부분 자살이다. 어쨌거나 이렇게 주변과 단절된 상태에서 사망한 후 72시간이 지나면 고독사로 본다고 그는 말했다.


“보건복지부의 고독사 기준도 사망 후 72시간입니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세상을 떠난 지 사흘이면 고인의 혼백이 떠난다고 생각했고, 삼일장을 지내는 오랜 관습도 있죠.”

 그가 근무하는 부산시는 그러나 고독사의 기준을 ‘사회적으로 고립돼 살다가 숨진 지 3일 이후에 발견된 1인 가구’라고 정했다. 과거에 없던 사회적 고립 여부를 고독사 기준에 추가한 것이다. 문제는 고인이 사회적으로 고립돼 있었다는 판단의 근거다. 이런 판단의 준거가 되는 명확한 업무 지침도 없다.


“구청의 담당 공무원이 고독사 현장에 직접 나와 보지도 않는데 어떻게 당사자가 고립돼 있었다고 판단을 합니까?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고독사 사례 자체는 늘어나는데 통계상으로는 오히려 고독사가 줄어들고 있어요. 의도를 떠나 지자체 입장에 맞는 쪽으로 통계가 왜곡되고 있는 거죠. 제대로 된 통계가 있어야 맞춤형 예방책을 마련할 수 있어요.”

 그는 자신의 책에 A시가 발표한 2017년~2021년 고독사 발생 건수와 같은 기간 복지부가 발표한 A시 고독사 건수를 제시했다. A시가 발표한 건수는 5년 동안 40건에서 14건으로 줄었다. 반면 복지부 집계 발생 건수는 219건에서 329건으로 늘어났다. 2021년 지자체 집계 발생 건수는 복지부 통계의 불과 4% 남짓이다.


“고독사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겁니다. 빨리 기준을 확립하고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대처해야 합니다. 지자체 담당자에 따라 고독사를 사후 5일, 심지어 7일로 보기도 해요. 공무원이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거죠. 집값 하락, 나쁜 소문 등을 우려해 집주인도, 가족도 신고하지 않아 아예 파악도 안 되는 고독사도 있어요.”

 복지부 고독사 통계에 따르면 남성 고독사 사망자가 여성보다 4배 이상 많다. 2021년엔 5.3배나 됐다. 50~60대 남성이 전체의 절반 이상이다. 




-고독사의 가장 큰 원인이 뭐라고 보나요?“가족의 붕괴로 인한 고립입니다. 이렇게 고립된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개인이 아니라 집단, 사회와 연결되도록 해야 돼요. 기술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로봇 도우미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어요.”


-왜 남성이 현저하게 많다고 보나요?

“남자는 나이가 들면서 상대적으로 생각의 폭이 좁아지고 사회 적응 속도도 느려지죠. 그래서 소외되고 고립되기 쉬워요. 혼자 살 경우 청소, 요리 등 일상적인 생활 능력도 떨어져요. 이들 가운덴 집에 틀어박혀 외부와의 접촉을 거부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고독사 대책, 어떤 게 있나요?

“고독사를 하기 전 시스템적으로 발견되도록 해야겠지만 당사자들이 외로운 삶을 살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해요. 홀로가구의 거주자로 하여금 다른 홀로가구 거주자의 친구가 되도록 하는 ‘고고 케어’ 제도 도입이 필요합니다. 지자체 담당자는 고독사 위험군 100명 이상을 맡는 경우가 많아요. 이래서는 당사자와 유대감을 쌓기 힘들어요. 비슷한 처지의 사람 몇몇이 전국에 널려 있는 빈집에 살게 하는 방안도 있습니다. 부산에만 빈집이 4000여 곳이에요.”


-고독사 위험군 당사자와 맺는 ‘생전 계약’을 정부 차원에서 시도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생전 계약을 맺어 장례 등 사후 뒤처리 서비스를 공공이 제공하도록 하자는 겁니다. 수요가 있고 민간에 위탁하면 서비스를 공급할 주체도 있는데 지방 조례를 만들어야 할 지자체가 나서질 않아요. 임의 후견인 제도를 활용하면 돼 법적인 문제도 없습니다.”


-고독사 이슈에서 누구도 예외일 수 없을 거 같군요. 잠재적인 당사자로서 고독사를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선 집 청소를 해야 합니다. 깨끗한 집에서는 고독사가 발생할 가능성이 작아요. 집을 정리하려는 마음 자체가 삶의 희망이고, 청소를 통해 최소한 단절을 막을 수 있죠. 지병·노화로 청소를 할 수 없으면 지자체에 도움을 청하면 됩니다. 둘째 이성과의 사랑을 해야 합니다. 노년의 연애는 면역력을 높여주고 질병을 막아줄뿐더러 내일의 희망을 품게 합니다. 동성과의 대화, 취미생활도 도움이 돼요. 설렘과 두근거림이 있는 한 고독사는 없어요. 저는 어르신들에게 ‘어른들의 놀이터’ 콜라텍에 가시라고 권합니다. 1500원의 행복이죠. 서로 안부를 묻고 함께 춤도 추고 즐겁게 어울리다 보면 고독사와는 멀어지게 되죠.”


 그는 자신의 책에서 관내 콜라텍의 단골인 트위스트 박 할아버지를 예로 들었다. 젊었을 때 공장에서 왼팔을 잃어 의수를 한 그는 임대 아파트에 혼자 산다. 기초수급비와 폐지를 모아 판 돈으로 생계를 꾸리는데 일주일에 한번 꼭 콜라텍을 찾는다. 그가 든 큰 가방엔 무대의상과 반짝반짝 광이 나는 구두가 들어 있다. 콜라텍 무대에 서면 좌중을 사로잡고 그와 춤추려 할머니들이 줄을 선다.




-청년 고독사는 대부분 자살이라고 했는데 일반적인 고독사와 어떻게 다릅니까?

“고독사하는 청년은 죽고 싶어서라기보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기에, 어떤 의미에선 쉬고 싶어서 떠나는 겁니다. 죽어서 다시 살고 싶다고 할까요? 힘들다고 젊은 사람이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그 힘듦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서 모든 걸 내려놓는 거예요. 주변에서 누군가 ‘너 힘들지? 너 잘하고 있어’ 하면 안 죽습니다.”

 스물아홉이었던 한 여성은 새벽 3시에 청소업체에 청소를 의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집에 사람이 죽었어요. 뒷정리를 부탁합니다.”


  사연을 접한 권 경위는 자살을 암시하는 것임을 직감했다. 울먹이는 의뢰인을 달래 주소를 받아적고 곧바로 출동했다. 창문 문틀을 떼어내고 들어가자 이미 약을 먹은 의뢰인이 누워 있었다. 119를 불러 병원으로 옮겼다. 깨어난 여성이, 졸지에 보호자가 된 그에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앳된 얼굴의 그녀에게 그가 말했다.

“살다 보니 어떻게든 살아지더라.”

 병원비도 그가 치렀다.


-고독사한 청년이 자살하는 동기가 뭔가요?

“실직, 취업의 어려움, 심리적·정신적 어려움, 인간관계를 맺는 것의 어려움 등이죠. 청년 1인 가구 증가도 배경이고요. 고립·은둔 청년은 고독사 예비군입니다. 지난 1월 현재 서울에만 13만 명 있습니다.”

 그는 지금도 어디선가 청년이 고독하게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가 이들 청년을 외면해선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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