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넘어서 석박사 학위 따는 게 무슨 소용이냐고요?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마흔 넘어서 석박사 학위 따는 게 무슨 소용이냐고요?

글 : 김동선 / 조인케어 대표/숙명여대 실버비즈니스학과 초빙대우교수 2023-05-23

100세 인생에서 늘 따라붙는 수식어중에 하나가 ‘평생교육’이다. 수 십 년 전에 학교에서 배운 지식으로는 밥벌이는 고사하고, 밥 사먹기도 힘든 세상이다. 그래서인지, 내 주위에는 뒤늦게 공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동네 도서관에 흰머리에 돋보기 쓴 할아버지와 손주뻘 학생이 나란히 앉아 책을 읽는가 하면, 유튜브와 각종 시민강좌를 쫓아다니며 배움을 넓혀가는 아줌마 부대들도 있다. 세상이 배움의 장이라지만, 그래도 제대로 공부하겠다며 학교의 문을 두드리는 만학도들도 늘어나고 있다. 내가 맡은 대학원 수업에만도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거나 정년퇴직을 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50대에 대학원에 도전하는 사람들 


P씨는 50세가 되던 해 자신에게 주는 상으로 대학원 진학을 선택했다. 그 동안 엄마로, 아내로, 직장인으로 쉼 없이 달려왔다. 몸이 아파도 끙끙대며 출근을 했고, 남편의 반찬투정, 살림타박을 한 귀로 흘리며 굳세게 살아오면서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제대로 시간과 돈을 써보지 못했던 그녀. 이번 만은 제대로 사치를 부려보고 싶었다. 그래서, 50세가 되기 몇 년 전부터 자신에게 줄 큰 상을 고르고 골라봤다. 해외여행을 갈까? 명품 시계를 하나 장만할까? 자동차를 바꿀까? 몇 년 동안 고민한 끝에 그녀가 선택한 것이 대학원 진학이었다. 학위를 따기 위해서는 돈도, 시간도, 노력도 필요하다. 하지만 몇 년 뒤 ‘학위’라는 더 큰 보상을 얻을 수 있다. 


일을 하다가 갑갑해서 공부를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50대 후반에 박사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A씨. 시작은 외아들이 지방대학으로 진학을 하게 돼 함께 지방으로 내려오면서이다. 몸이 불편한 아들이 혼자 외지에서 대학 생활을 하기 어렵겠다 싶어 옆에 있어 주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낯선 도시에서 아들 식사 준비하고 나면 할 일이 별로 없었다. 마침 요양보호사 자격이 있었던 그녀는 적적하지 않도록 요양원에 취업을 했다. 공립이고 신설기관이어 근무조건이 좋았다. 결혼하기 전 잠깐 작은 회사에 다녔을 뿐인 그녀가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것은 낯설고 주위의 시선도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몸이 아픈 아들이 힘을 내서 학교를 다니니, 엄마도 함께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치매노인들을 돌보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생계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마음을 다해서 일을 했고 그 만큼 보람을 더 크게 느끼게 됐다. 일을 하다 보니, 치매에 대해 관심이 커졌다. 치매노인의 이상한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이리 저리 궁리하기도 하고, 치매노인들을 어린애 취급하거나 사물 취급하는 동료들의 모습에 속상해 하기도 했다.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면서 그녀는 사회복지학 석사과정에 지원했다. 50대 초반이었다. 그녀는 치매케어에 대한 연구로 석사논문을 완성시켰고 내친 김에 박사학위에 도전했다. 




배움을 멈추는 사람은 '늙은이'


공부가 왜 좋은가? 몰두할 대상이 있어서? 어려우니까? 하나 하나 힘든 문제를 풀어가다 보면 어느 새 성장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공부를 하는 것은 가족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자식에게 공부하라고 다그치다가, 아예 모범을 보이겠다며 시작한 경우도 있다. 확실히 나이들어서 하는 공부는 동기도 다르고, 공부하는 즐거움도 다르다. 

내가 묻고 내가 답하는 과정을 통해서 점점 더 높이 오르고 점점 더 넓게 바라보게 된다. 더 많이 읽을수록 더 많이 알게 될 것이고, 더 많이 알수록 더 많은 곳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헨리 포드는 ‘누구든지 배움을 멈추는 사람은 늙은이’라고 말했다. 그 사람이 스무 살이든, 여든이든 중단없이 배우고 익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젊다. 


그래도, 석사, 박사학위에 도전하는 것은 쉬운 결정은 아니다. 평생 일하고 평생 공부해야 하는 100세 시대에 학위를 받기에 좋은 나이란 없다. 그렇다고 쉬운 일은 아니다. 눈이 침침해서 오래 책을 읽기 힘들다, 집중력이 떨어져 읽은 부분을 읽고 또 읽는다. 젊은 사람들처럼 컴퓨터를 잘 하지 못하니, 무엇을 하더라도 비교되고 어렵다. 나보다 나이 어린 교수들에게 배우면서 민망하거나 자괴감을 느끼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고생을 왜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진다. 

박사학위를 땄다고 지금 일하는 직장에서 월급을 올려줄 것도 아니고, 늦은 박사학위를 받는다고 강의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학위를 시작했다가 중간에 그만두는 경우도 적지 않고, 수료만 하고 논문을 쓰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칼을 뽑았으면 두부라도 잘라야 하는 터. 끝장을 볼 수 있도록 시작하기 전에 시간과 돈, 공부할 체력, 인내심 등을 확인해봐야 한다. 


석박사학위, 전문성 인정 or 경력전환의 계기


또 아무리 공부하는 즐거움이 크다고 해도, 투자한 만큼 무엇을 얻을 것인지 따져볼 필요도 있다. 늦게 공부를 시작할수록 목표와 진로 설계가 더 필요하다. 


우선, 일하는 분야에서 전문성을 획득하기 위해 학위를 따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새로 만들어지는 일자리의 경우 지원 자격에 석박사 학위를 요구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내가 현장에서 오래 일해 실전경험이 많다 하더라도, 인간문화재급 전문가라고 하더라도 학위가 없으면 그 만큼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학위가 있어서 큰 득을 못 볼지는 몰라도 학위가 없어서 감점이 되는 경우는 확실히 있는 것 같다. 


나는 논문심사를 받으면서 학위라는 것은 업계에서 인정해주는 라이센스라는 사실을 거듭 실감했다. 쉽게 따는 것이라면 라이센스의 가치가 떨어진다. 수 백 편의 논문을 읽고, 정리하면서 이론의 체계를 잡을 수 있어야 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세월 속에 갇혀 있는 이론의 먼지를 털어내야 한다. 내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글과 말로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100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글을 쓰는 것도 어려운데, 오자와 마침표에까지 목숨 걸어야 하는 이유도 배워야 한다. 누가 나에게 물어본다면, 자기 실력을 증명하기 위해 학위를 따는 경우라면, 되도록 논문까지 작성할 것을 권한다. 




지식이 많다고 해서 체계적인 학습을 하는 것은 아니다. 윌리엄 예이츠는 배움이란 양동이에 물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불을 피우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진정한 앎이란 지식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는 것이란 표현인데, 논문을 작성한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점화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사내 정치 못하고 윗사람들에게 어필 못 하는 사람들은 자기 실력을 성실하게 증명하는 방법으로 학위를 따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겠다. 


두 번째는 대학에서 새로운 학문을 배워 경력 전환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이다. 

최근에는 예전에는 없던 새로운 학문이 등장하고 있다. AI, 헬쓰케어융합, 실버비즈니스처럼 최신 기술과 사회변화를 반영한 코스가 등장하고 있다. 반대로 오래 됐지만 갈수록 수요가 늘어나는 분야도 있다. 간호학이나 사회복지학을 들 수 있겠다. 


40대 중반인 S씨는 싱글이다. 지난 해 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직장을 잃었다. 구직보다는 앞으로 더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 위해 자신에게 과감한 투자를 하기로 했다. 그녀가 선택한 것은 미국의 간호대학 입학이다. 간호사는 헬쓰케어전문인력이라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넘친다. 물론 국내 간호사로 일하는 방법도 있지만 태움문화가 강한 국내 간호사보다 좀 더 큰 기회를 얻기 위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미국 취업을 선택한 것이다. 40대에 시작하지만 미국의 경우 따로 정년이 없고 건강만 허용된다면 계속 일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다행히, 영어가 가능한 그녀는 국내 에이전스를 통하여 국내에서 선수 과목을 듣고 고용비자 전망도 있는 미국의 2년 코스 대학으로 진학하기로 했다. 


나이에 따라서, 자신의 경력 목표에 따라서 학위를 할 것인지, 어떤 공부를 할 것인지 달라질 것이다. 굳이 대학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학점은행제를 통해서 자격증을 따는 길이 있다면 그 편이 더 나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36세에 석사학위를 시작했고 46세에 박사학위를 시작했던 만학도였다. 학위를 받아서 뭐에 써먹겠다는 뚜렷한 목표는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대충 했던 것 같다. 지금 다시 시작한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더 신중하게 진로를 설계하고 더 열심히 공부했을 것 같다. 이왕 하는 거, 마흐트마 간디의 말처럼,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고 영원히 살 것처럼 공부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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