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 정치인... 이젠 생전장례식 플래너 될 차례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기업인, 정치인... 이젠 생전장례식 플래너 될 차례

글 : 이필재 / 인물 스토리텔러 2023-05-16



“‘생전 장례식’ 플래너가 되는 게 저의 버킷 리스트 1호입니다. 살아 생전에 치르는 장례식에 대해 식순 등을 컨설팅 해 주고 사전 장례식 사회도 보는 거죠.”

 원혜영 웰다잉문화운동 공동대표는 “죽어서 치르는 일반적인 장례식은 사실 당사자와는 별 상관없는 산 사람들의 일”이라고 말했다. 조문객으로서도 대부분 상가에서 육개장 먹은 기억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생전 장례식은 건강이 점점 악화돼갈 때 사랑하는 사람, 고마운 사람, 미안한 사람들을 초대해 치르는 고별식입니다. 웨딩플래너가 결혼식을 돕듯이, 플래너로서 이 사전 장례식을 돕는 겁니다. 사후에 장례식을 한다면 참석할 사람보다는 인원을 더 적게 잡고 부조금도 받지 않아야겠죠. 살 날이 많지 않은 사람이 병상에서 보고 싶은 사람을 불러 만나는 것도 일종의 생전 장례식으로 볼 수 있어요.”


 스스로도 생전 장례식을 하겠다는 원 대표는 단순히 연명만을 위한 무의미한 의료 서비스를 받지 않겠다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유언장, 장례방식 등을 기록한 사전장례의향서를 작성했고 장기기증 서약도 했다. 


원 대표는 경기도 부천에서 5선 의원을 지낸 정치인이었다. 국회의원 5선보다 연임해 부천시장 두 번 지낸 걸 더 자랑스러워한다. 본래 풀무원식품을 창업한 기업인이다. 고희를 앞두고 2019년 정계를 은퇴했고, 인생 3막을 사회운동가로 살고 있다. 


“기업 경영과 정치도 재미있게 했지만 부천시장으로서 한 행정 일이 가장 잘 맞았어요. 몇 분 뒤 버스가 오는지 알려주는 버스 도착 안내 시스템을 2001년 제가 시장 할 때 전 세계에서 최초로 부천이 도입했습니다. 지금도 시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하죠.”

 국회의원으로서는 연명 치료에 대한 당사자의 결정권을 보장하는 연명의료결정법 제정을 주도했다. 


“세브스란스병원 김 할머니 사건으로 존엄사를 둘러싼 논쟁이 치열했을 때였죠. 이 법 제정 후 약 160만 명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어요. 이때 국회의원으로서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는 우리 사회가 의료 서비스를 과신 심지어 맹종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의 경우 응급실에 간 노인의 10%가 중환자실로 이송됩니다. 우리는 70%가 중환자실로 가요. ‘끝까지 다 해 보자 주의’랄까요? 연명치료는 병원의 핵심적인 수익원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죽음에 대해서도 공부해야 합니다. 생로병사, 늙으면 병이 들어 죽는 건 당연한 이치입니다.”



-웰다잉에 대해 나름대로는 어떻게 정의합니까?


“삶의 마지막 단계가 죽음인데, 죽음을 잘 준비해 맞는 게 삶의 완성 어쩌면 웰빙의 연장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죽음에 대한 준비가 미흡한 사회입니다. 나의 삶을 내가 결정하듯이 삶의 마무리도 내 뜻대로 준비해야죠.”

 그러지 않으면 남이 결정권이 행사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연명치료는 병원이, 장례 절차는 장의사가 결정하고 되고, 유산 집행엔 법원이 개입한다. 



-웰다잉의 조건은 뭔가요?


“자기 결정권 행사, 품위, 책임입니다.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에 호스 주렁주렁 달고 있다 떠나는 건 품위 있는 죽음이 아닙니다. 연명 치료 받을 생각이 없으니 내 뜻을 존중해 달라고 평소 배우자와 자식들에게 분명히 얘기해야 해요. 차분하게 삶을 정리하고 남은 소중한 시간을 가족들과 보내야죠.”




-유언장은 어떻게 쓰나요? 몇 살에 쓰는 게 좋은가요?


“이렇다 할 기준은 없지만, 부담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써야 합니다. 재산 정리, 관계 정리뿐 아니라 내 삶을 한번 중간 결산해 보는 거죠. 그랬을 때 내 삶의 의미가 더 분명해 지고 남은 삶에 대한 태도가 더 진지하고 깊어질 수 있어요. 사실 나를 둘러싼 환경도, 생각도 바뀔 수 있어요. 그래서 저처럼 해마다 유언장을 다시 쓸 수도 있죠. 또 누구나 쉽게 쓰고 보관도 쉽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이 50이나, 늦어도 은퇴 시점엔 쓰는 게 좋습니다. 유언장이든, 사전연명의료의향서든 일찍 작성한다고 문제 될 건 없어요.”


 그는 유언장을 작성하는 문화가 뿌리내리려면 공공기관이 실비로 유언장을 보관해 주는 서비스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문보’, ‘생애보’도 작성해 볼 것을 권했다. 조문을 받을 때 가족이 고인에 대해 소개하는 글이 조문보이고, 살아 있을 때 소개하게 되면 생애보이다. 영상으로 만들어 상영할 수도 있다. 



-묘비명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나요?


"만일 쓰게 된다면 ‘게을렀지만 호기심을 잃지 않았던 사람’이라고 적고 싶군요. 너무 바쁘게 살면 호기심도 발동하지 않아요. 발밑만 보지 말고 땅을 단단히 딛고 서서 멀리 내다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그는 호기심과 도전적인 자세는 노년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생명력을 강화해 주기 때문이다. 피터 드러커는 사람은 호기심이 없어지면서 늙는다고 말했다. 

 원 대표는 정계 은퇴 후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자연히 하루 몇 천 보씩 걷는다. 계단을 내려갈 땐 평소 안 쓰는 근육을 쓰려 발꿈치를 들고 걷는다. 

<혁신하라>란 책을 쓴 그는 시니어도 삶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골목길을 걷더라도 가던 길로만 가지 않고 다른 길로 가 보는 거예요. 변화를 추구하는 생활습관을 들이는 겁니다. 정신적으로 늙었느냐 아니냐를 판정하는 기준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에요. 유언장이나 생애보 작성을 시도해 보는 것도 일종의 혁신이죠.”




-생전 장례식 플래너가 되는 거 말고 다른 버킷 리스트가 뭔가요?


“친구들과 부부동반으로 1~2박 국내 여행을 자주 하려 합니다. 국내인 만큼 기차나 승용차로 움직이면 되죠. 국내에도 걸을 만한 곳이 많아요. 소소한 목표와 계획이 삶에 활기를 불어넣죠.”



-동시대의 시니어들에게 무엇을 권하고 싶나요?


“전국의 모든 시군구에 있는 노인복지관에 가면 다양한 공부를 하고 참여도 할 수 있습니다. 봉사활동은 기술과 지식이 없어도 할 수 있죠. 봉사는 책임성을 높여 삶을 의미와 깊이가 있게 만들어요. 은퇴 후 삶도 제대로 준비해야 잘 살아낼 수 있습니다. 20~30년 살아야 하는데 준비를 잘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죠. 고령화로 은퇴 후에 설 무대가 너무 넓고 큰 무대가 돼버렸어요.”


 현역 정치인 시절 그는 기부정치인의 원조 소리를 들었다. 



-기부를 하면 뭐가 좋은가요?


"기부나 봉사를 하면 돈이나 체력이 소모되지만 그 이상의 만족을 맛볼 수 있습니다. 유치환 시인이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라고 읊었지만, 사랑을 하면 행복해지듯이 기부·봉사를 통해 만족감이 커지고 나의 존재감을 만끽할 수 있어요."




-유산기부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베이비부머 세대는 우리나라 역사상 풍요를 맛본 첫 세대, 신노년의 본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평생 집 한 칸 장만한 것이 십억 원 안팎에 이르죠. 먹고사느라 못했던 일, 좋은 일에 10%만 기부하면 국가가 세금으로 못하는 일들을 할 수 있어요. 가령 문화·예술·과학·기술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어요. 어려서 하고 싶었는데 못한 축구선수를 키울 수도 있고 재능 있는 음악가를 도울 수도 있죠. 십일조에서 보듯이, 10%는 인간이 신과 타협해 찾은 황금률입니다.”



-만일 ‘원혜영의 인생 사용설명서’ 같은 게 있다면, 거기에 뭐라고 적혀 있을까요? 


“평생 실천가로 살았습니다. 지적 능력이 뛰어난 건 아니지만, 필요한 일, 의미 있는 일이다 싶으면 곧바로 행동으로 옮겼죠.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돼요.’(프랑스 소설가 폴 푸르제)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인 피터 드러커는 은퇴 후에 자원봉사를 하고 싶으면 40대부터 바쁜 시간을 쪼개 시작하라고 말했어요.”



-1000만 노인 시대가 코앞입니다. 이들 노인이 우리 사회의 새로운 동력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노인도 충분히 진취적이고 미래지향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저마다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을 져야 합니다. 내후년이면 우리나라가 사상 최단기간인 8년 만에 초고령사회에 진입합니다. 24년 걸린 일본의 3분의 1이죠. 노인들이 무기력한 사회와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사회는 활력 면에서 격차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우선 내 삶을 품위 있게 마무리해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수 있어요. 저출생 문제 해결은 고차 방정식이지만 고령화 사회는 당사자인 노인들이 잘 늙어가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은퇴 후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나름대로 방향을 제시한다면…. 


"중요한 일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 거창하기보다 쉽게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실천 가능성이 큰 일을 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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