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방문한 일본에서 마주한 '패러사이트 싱글'들의 노후 |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5년 만에 방문한 일본에서 마주한 '패러사이트 싱글'들의 노후

글 : 김동선 / 조인케어 대표/숙명여대 실버비즈니스학과 초빙대우교수 2023-03-14


지난 달에 일본을 다녀왔다. 코로나로 닫혔던 국경이 열린 데다 엔화 약세까지 가세해 내 주위에서는 유례없는 일본행렬이 시작됐다. 주변 사람 대부분이 일본을 다녀왔다고 하니 나 역시 그 대열에 합류하기로 했다. 일본을 마지막으로 간 것이 2018년이니 거의 5년 만이다.

우선, 물가가 싼 것에 놀랐다. 20년 전, 처음 일본에서 생활했을 때, 한국에서 150원이었던 자판기 커피 한 잔이 110엔(1100원)이었다. 커피자판기는 사라졌으니 비교가 힘들지만, 도심 어느 카페를 가더라도, 한국보다 커피 값이 저렴하다. 월급봉투가 얇은 직장인을 위한 역근처 식당에서는 350엔짜리 라면, 우동을 팔고 있다. 예전이라면 망설였을 회전스시를 일행이 실컷 먹고 나오는데 영수증을 잘못 받았나 눈을 의심했다.

두 번째, 아직도 지하철에서 종이티켓을 발급하고 종이영수증을 꼬박꼬박 발급하고 보관한다는 점이다. 디지털화는 한국에 비해 한참 뒤처지는 모양이다. 변화에 느린 사회여서 나라 자체가 박물관이 되는 게 아니냐는 농담을 일행들과 주고 받았다.

세 번째는 만나는 일본인들마다 ‘이제 한국이 우리보다 더 잘 산다고 하니...’ 식의 자조적인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었다. 한국이 일본보다 더 잘 나가는 데 대한 우리쪽 실감은 없지만, 그쪽은 확연히 다르다. 한일역전은 통계를 살펴봐도 알 수 있다.

일본의 빈곤율은 2018년을 즈음해서 한국보다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으며 국가 재정적자도 심각하다. 1인당 GDP를 기준으로 하면 한국이 28위, 일본은 36위로 밀려나 있다. IMF수치를 보나, 월드뱅크 기준을 보나 한국이 일본을 앞질렀다는 데에는 이의가 없다.




그런데 일본의 추락에 기뻐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한때 일본은 세계2대 경제강국이었으며, 미국의 록펠러센터, 콜롬비아영화사들을 사들이던 글로벌투자자였다. 일본의 영화, 음악, 패션이 전 세계 사람들을 매료시켰고 많은 사람들이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한류가 있기 전에 일류(日流)가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 자신감이 남아 있었으니, 2001년 내가 인터뷰했던 일본의 경제학자들은 ‘고령화가 일본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물론, 일본의 현재 어려움을 고령화에만 돌리기는 어렵지만, 줄어드는 인구, 연금과 의료보험 재정 증가, 사회복지비용 급증 등 수입은 줄어들고 지출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으니 경제성장은 요원한 일이다.




문제는 일본이라는 국가가 처한 위기가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떠넘겨진다는 점이다.

그 중에 하나가 불평등과 빈곤의 문제이다. 한국에 ‘오징어게임’이 있다면 일본에는 ‘Plan75’가 있다. 독립영화로 만들어진 ‘Plan75’에서는 일본 후생성 인구관리과의 주도로 경제력이 없는 75세 이상 노인에게 Plan75가 권유된다. Plan을 받아들이면 10만 엔의 포상금이 주어지며 그 돈을 다 쓰고 나면, 안락사와 비슷한 형태로 죽음을 맞게 된다. 상상만으로도 소름끼치는 설정이다. 현실에서는 ‘가치구미’(승자그룹)과 ‘마케구미’(패자그룹)가 반목하며, 건강격차, 관계빈곤, 마일드(mild)빈곤등 새로운 신조어가 등장하고 있다.

우리 일행은 모두 대학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 일본 대학교수들의 박봉에 화제가 돌아갔다. 아는 대학교수들이 퇴직하고 난 뒤 ‘근근히’ 살아간다는 정보를 주고 받았다. 대학교수들이 그러니, 일반 서민들은 퇴직후 ‘마지 못해 산다’고도 한다.

이번 일본 방문에서 만난 일본닛세이기초연구소의 김명중박사에 따르면 노후 빈곤문제가 심각한 계층으로 제대로 된 연금을 준비하지 못하는 비정규직, 영세자영업자들을 꼽았다. 이들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설계된 국민연금 하나에 달랑 의존할 뿐이어 노후불안이 심각한 형편이다. 


그런데, 빈곤은 남자세대주의 문제로 인식되고, 고용지원정책 역시 남자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요코하마에서 젊은 사람들을 위한 구직상담 및 경력지원센터(support station)을 운영하고 있는 Inclusion NET의 스즈키 세이코이사는 “구직상담을 하러 센터를 찾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이 남자들”이라고 말한다. 여성들이 비정규직에 근무하는 비율이 훨씬 높으며 빈곤율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센터에 구직활동을 하거나 경력지원 도움을 청하러 오는 숫자가 매우 적은 아이러니에 대해 주목했다.

그녀는 여성들은 ‘결혼하기만 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여자에게 일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등의 이유를 대며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거나 취활보다 혼활에 더 열심이라고 설명한다. 센터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자신의 일과 관련해 정체성 고민도 큰 데, 특히 젊은 여성일수록 더 큰 정체성혼란을 경험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결혼하면 만사 해결’이라는 생각이 어느새 ‘어쩌면 영영 결혼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자각으로 바뀌어 있다. 그 사이 제대로 된 경력도, 저축도 없이 나이만 먹어버리는 것이다.




결혼하지 않고 부모 집에 살면서 집세, 식비 등을 여행이나 명품에 소비하는 젊은 세대를 가리키는 용어 ‘패러사이트싱글’이라는 말이 처음 사용됐던 것이 1997년이다. 사회학자 마사히로 야마다씨는 그의 책에서 패러사이트싱글이 1천3백만 명에 이르며, 이들의 노후가 사회에 큰 부담을 안길 수 있음을 우려했다. 원래 패러사이트싱글은 남녀를 모두 지칭하는 말이지만 언론등을 통해 사용되면서 분수에 맞지 않는 소비를 하는 젊은 여성을 지칭하는 단어로 둔갑을 했다.


점점 침몰하는 일본경제를 배경으로 패러사이트싱글이 만혼화, 저출산의 원인이라는 비난의 구조가 만들어졌다. 또는 이들에게 안락한 삶을 제공하며 자립하지 못하게 한 부모에게 비난이 돌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요코하마대학의 오다치 오누구교수는 당시 여성들의 선택은 일본사회의 남성중심, 이원화된 노동시장에 대한 불가피한 적응이었음을 지적했다. 젊은 여성들은 회사에서 커피나 나르는 오피스갸르(girl의 일본식 발음)로 여겨지며 툭하면 세쿠하라(일본어로 성희롱을 뜻함)에 시달릴 뿐, 직업에 대한 사명이나 비젼을 찾기 힘들었다. 일본사회가 경제침체에 들어서면서 장래 남편감들의 월급은 오를 전망이 보이지 않으니, 일단, 부모 집에서(자녀가 한 둘인 부모들은 자녀들이 함께 사는 것을 오히려 기뻐하니까) 경제력이 있는 남편 후보감이 나타날 때까지 버텨보는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남녀간 임금격차, 여성의 자립심을 저해하는 사회문화, 비싼 주거비용 등 사회적 요인이 ‘패러사이트싱글’이라는 결과를 낳았을 뿐인데 여기에 비난의 화살을 쏘아댄다는 것이다.


패러사이트 싱글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것이 1997년이니 이미 25년이 지났다. 당시 30~40대였던 여성들이 아직까지 독신이라면 이제는 55~65세의 중고령나이에 접어들고 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패러사이트싱글은 300만 명 규모라고 한다. 이들에게 우산이 되어주었던 부모(부모의 연금, 저축)는 이제 점점 사라질 운명이거나 돌봄이 필요한 처지가 되고 있다.

노후빈곤은 독신자들에게 더욱 심각하며 남자보다 여자들에게 더 심각하다. 남성 노인의 10%가 빈곤선 이하인 반면, 여성노인은 4명 가운데 한 명이 빈곤선 이하이다. 빈곤한 여성 노인의 절반이 평생 독신이거나 이혼한 여성이다.


Inclusion NET의 스즈키 세이코이사는 구직자보다 구인기업이 더 많은 현재 일본 노동시장에서 구직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유형으로 미혼이며, 부모와 동거생활을 하며, 생활은 그다지 곤궁하지 않지만, 멘탈의 문제가 있는 경우, 과거 등교거부, 히키고모리 등의 경험이 있어 직장생활이나 인간관계에 불안을 갖고 미래에 대한 전망을 세우지 못하는 경우를 꼽는다.


특히 여자들은 일에 대한 확고한 비전을 갖지 못한 채 주위에서 ‘언제까지 일할래?’, ‘결혼을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등의 얘기를 반복적으로 듣다 보니, 스스로도 ‘일과 저축을 통해 자신의 노후를 준비하자’는 생각이 희박해지게 된다. 반대로 남자에게는 ‘결혼을 하려면, 가족을 부양하려면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절박감이 있다.


‘언젠가는 결혼할 지 모른다’는 희망이 오히려 패러사이트싱글의 노후를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물론, 패러사이트싱글이라도 부모의 재력이 다르고, 소득 수준이 각자 다르기 때문에 노후 전망이 다 같을 수는 없다. 또한 이들은 늘어나는 빈 집을 지키며, 늙어가는 부모의 수발을 도맡아 하는 긍정적인 기능을 담당하기도 한다.




일본 패러사이트싱글의 현재가 한국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한국 역시 일본과 마찬가지로 초고령사회를 향해 빠르게 달려가고 있다. 더 이상 방향을 바꾸기는 어려워 보인다. 사회의 궤도를 바꿀 수 없다면, 그 안에 살고 있는 개개인이 변화하는 수 밖에 없다.

결혼적령기는 없어지고 있다. 50대, 60대에도 결혼을 할 수 있다. 요즘의 글로벌대기업들은 젊은 직원들을 위해 사내복지 차원에서 ‘정자, 난자은행’을 운영한다고 한다. 원하는 시기에 결혼하여 출산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있다.

하지만, 결혼을 하든 안 하든, 여성들은 경제적으로 자립을 해야 하며, 자신의 노후는 자신의 책임이라는 생각이 필요하다.


패러사이트가 아닌, 당당한 싱글이 되기 위해서는 일에 대한 각오가 필요하며, 적극적으로 경력관리를 해야 한다. 그리고 품위있는 노후를 위해서는 저축과 투자에도 힘을 쏟아야 할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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